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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Sep 13. 2022

「이상李箱론 - 순수의식의 뇌성과 그 파벽」, 이어령

(1) 서설

 1955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내 학술지인 『문리대학보』 제 3권 2호에는 호기로운 한 청년의 글이 실려 있었다. 얼마 전 작고하신, 시대의 지성 故 이어령 선생이 이상李箱 문학에 대한 평론을 남긴 것이다. 겨우 대학교 2학년생에 불과한 학생의 글에는 엄청난 통찰이 담겨 있었고, 그 결과 이어령 선생은 세간의 이목을 끌어 문학평론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평론은 이어령 선생의 일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글이라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다양한 언론들이 선생의 타계 소식을 전할 때도 그의 일생을 되짚어보며 『문리대학보』의 글을 언급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본문을 제시하는 자료는 찾기 매우 어려웠다.  나는 고생 끝에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마구잡이로 정리된 20세기 『문리대학보』디지털 자료를 찾는데 성공하여, 이어령 선생의 「이상李箱론 - 순수의식의 뇌성과 그 파벽」의 원문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번 포스팅을 통해 이 명문名文을 디지털화함으로써,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어령 선생의 글을 음미하는 동시에 이상이라는 작가를 이해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1950년대 글 답게 원문 국한문 혼용으로 쓰였다. 본 글에서는 가독성을 고려하여 한자 어휘를 한글로 변환하였다. 이를 제외하면 띄어쓰기를 포함한 어떠한 원문의 수정도 가하지 않았다. (어려운 낱말을 풀이하기 위한 별*표시는 제외. 풀이는 네이버 국어사전을 참조하였음)




1955년 9월 『문리대학보』제 3권 제 2호. 141p


작가론 (『문리대학보』 편집자의 전문, 이어령 선생의 글이 아님)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이상'이나 중국문학에 있어서의 '루쉰'이나 서양문학에 있어서의 'Balzac'이나...... 오늘의 현대문학을 운운하는데 있어 모두가 잊을 수 없는 작가들이다. 그들의 면모를 이제 새삼스럽게 살피고 논한다는 것이 어쩐지 구태연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다시 그들이 남기고 간 정신을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해 봄이 현대문학의 발자취를 더듬는데 보다 *종요로운 의의가 된다는 것은 또한 어찌할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지난 날의 한 시대와 문학예술의 방향을 시사한 획기적인 한 작가에서 풍기는 하나의 체취와 생명의 유동은 언제나 당면한 현대문학의 정신에 대하여 보다 나은 반성과 비평의 확고한 *지점支點이 되어주는 것이다. 여기 우선 조그만 시도로서 세 작가의 작가론을 일괄하였고 거기에서 현대적인 의의를 발굴하려 하였다. 또한 제한된 지면에 담은 광범한 문학론이 하나의 피상성과 산만성을 벗어날수 없다는 상례적 결함에 비해서도 이번 작가론의 의의는 이중으로 새로운 면목을 가지리라 믿는다.


*종요롭다: 없어서는 안될만큼 몹시 긴요하다.

*지점支點: 지렛대의 목, 구조물을 받치고 있는 부분.

*상례적: 어떤 일이 일상적으로 있는.


-이상론: 「순수의식의 *뇌성牢城과 그 *파벽破壁」, 이어령

-루쉰론: 「*온양기醞釀期의 문학」, 김용섭

-Balzac론: 「절대탐구의 관념」, 민희식


*뇌성: 죄인을 가두어 두는 곳.

*파벽: 무너진 벽.

*온양기: 술을 담그는 시기.



이상론

순수의식의 뇌성과 그 파벽 - 이어령


목차

서설

    A.상箱의 죽음

    B. 선악과의 신화

1. 이상李箱의 예술

    A. Situation과 Parasélène

    B. Form과 Style

    C. 결론을 위한 종래의 이상평李箱評에 대한 재고再考

2. 배경론

    A. 1930년대의 분위기

    B. *구인회九人會

    C. 사생활

3. 문학사적 의의

    A. 전통과 Modernité

    B. 영향론


*구인회: 1933년 8월에 결성된 대한의 문학 문인 단체


서설

 

A.상箱의 죽음


 레몽을 달라고 하여 그 냄새를 맡아가며 죽어 간 「상箱」의 최후는 1937년 3월 17일 오후, *이역異域(일본)의 조그만 병실의 한구석 어둠속에서 였다. 우리는 짧은 그의 생애와 작가로서의 생활*종막終幕에서 우연히도 하나의 상징적인 뜻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역: 외국의 땅, 본고장이나 고향이 아닌 딴 곳.

*종막: 여러 막으로 된 연극에서, 맨 마지막의 장면 끝막.


 우선 그 계절이 그러하였다.


 3월이면 아직도 철 늦은 겨울 눈(雪)이 녹고 있는 계절이다. 겨울도 봄도 아닌 그러한 불안한 환절기가 바로 」이 이 세상에서 머물다간 *비창悲愴의 계절이었다. 그는 구세대의 서정적 요소와 세기말적인 허무의 잔재물 (눈)이 *휘황輝煌한 현대의 주지적이며 산문적인 정신의 태양아래 소멸되어 가고 있는 계절 속에서 서식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비창: 마음이 슬프고 서운함.

*휘황: 광채가 눈부시게 빛남.


 그 지역과 장소가 또한 그러하였다.


 정치적인 의미에서 일본이 완전한 이국異國도, 그렇다고 모국도 아닌 애매한 지역이었던 거와 같이  」이 발을 디디고 살아간 의식세계라는 것도 남의 땅도 그렇다고 자기땅도 아닌 그런 반반의 이역지대地帶였다. 평생을 그는 이렇게 수수꺼기 같은 나라에서 살어간 반신의 *에뜨랑제였다. 더욱이 무수한 성격의 파편과 *적빈赤貧과 오물의 생활을 내어던지고(?)온 서울을 <기갈飢渴의 향수鄕愁>라고 불으긴하였으나 끝내 돌아가지 못한채 동경에서 여생을 마친 역설적 행동이 바로 그가 현실에 대한 정신적 자세와 태도의 일면을 심볼하는 것이다.

*에뜨랑제: 'étranger'. 불어로 '외국인'.

*적빈: 아주 가난하여 아무 것도 없음.

*기갈: 굶주림과 목마름.


  」이 식어가는 체온과 고갈한 육체를 겨우 딱딱한 베뜨위에 의지하고 의식을 잃어간 병실의 그것이 또한 그대로 그의 전全생활을 외워 싸고 있던 애트모스피어이었다. 」에게 있어 인간들의 군상과 그 생활들이란 질식할 것 같이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병실의 흰벽이었으며 무늬없는 커어틴처럼 쳐있는 공백 그것이었다. 」의 피로할 대로 피로한 육신에서 은화처럼 맑아진 그의 정신을 상징하는 도아의 핸들위에는 무수한 인간의 손때로 *마멸磨滅되어 빛나는 영롱한 광택과 윤이 흐르고 있었을 것이다.

*마멸: 갈리어서 닳아 없어짐


 이렇게 그의 정신적 풍토를 그대로 축소해 놓은 애트모스피어속에서  」은 하나의 향긋한 레몽을 맡아가며   현대」가 판결한 처형을 묵묵히 수행한 *수인囚人으로서의 일생을 마친 것이다.

*수인: 옥에 갇힌 사람


 레몽의 향기를 맡으며 죽어 간 것은 확실히 불우한 *도형수徒形囚의 사치한 마지막 의지에서 였다. 인생을 아름다운 베에르 밖에서 내다 보고 있는 순박純泊한 어느 소녀의 죽음과도 방불한 그의 최후에선 평시에 품기고있던 처참한 아이로니도 씨니크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도형수: 도형徒形에 처해진 죄수


 <남들이 생각하는 」은 나와는 다른 존재이다 나는 그러한 」의 세계에서 도망쳐나오고 싶은 것이다>라는 그 *서한문書翰文의 비장한 고백과 같이 숨막히는 역사의식과 현대의식의 원체인 선악과의 냄새가 아니라 사실은 레몽에서 품기는 향내에 취해보고싶었던 것이다.

*서한문: 편지에 쓰이는 특수한 형식의 문체. 받는 사람에게는 경어를 쓰고, 보내는 사람 자신은 겸양투의 말을 씀.


 그러나 불행히도 그가 평생을 두고 맡아온 냄새는 의식」이라는 선악과의 냄새였을 뿐이며 끝내 화려한 레몽의 홍수같은 향기란 마음에 간직한 영원한 동경이었다. 죽음에 이르러 레몽의 냄새를 맡았다는 것은 끝내 완수하지 못한 그 의욕의 조고만 모형적 실험을 의미할 뿐이다.


-


 이와 같이 」은 죽었다. 많은 사람들의 애도와 혹은 무관심속에서 그의 죽음은 벌써 *입년전의 일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의 슬픈 죽음은 오히려 *왜경의 혹독한 학대와, 음산한 감방의 공기와, 병균의 잠식에서 입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오, 「오해받은 예술과 인격」으로 인한 정신적인 죽음이었던 것이다. *홍진紅塵의 상식과 낡은 관습에 그대로 추종하는 *아나크로니스트들의 독소적 분비물이 그의 정신을 무참히도 매몰시키고말었다. 혹자는 그를 난해시를 쓰는 짖궂은 장난꾸레기의 악동이라 하였고 혹자는 특수한 인간—호평이면 천재, *불연不然이면 병적인간—만이 느끼고 필요로 하는 기형작가라 하였고 혹자는 무턱대고 천재적 작가라고 갈채만을 보내기도 했다.

*입년: 스무 해.

*왜경: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을 낮추어 이르던 말.

*홍진: 바람이 불어 햇빛에 벌겋게 일어나는 티끌.

*아나크로니스트: 'anachronist'. 시대를 역행하는 자.

*불연: 그렇지 아니함


 어쨌던 」은 현실에 앞슨 선각자로써 고독하였고 그의 예술은 오해당한 채 모독받기가 일 수였다.


 이런 점에서 」은 그의 육체와 작품에 나타난 정신까지 멸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존하는 어느 작가보다도 도리어 입년전의 」으로 부터 더 참신하고 친근한 호흡을 느끼게 되는 것이 내 일개인의 독단이 아니라면 현대라는 시공적인 의미에서 결코 」의 고독한 오해당한 정신만이라도 부활될 것을 의심하지 않겠다.


 그러나 여기 이 소론小論은 죽은 」의 정신을 부활시키려는 어마어마한 작업이라기보다 그의 죽음을 애석히 여기고 그의 세계와 예술을 이해하기 까지의 조그만 길잡이로서의 구실만 하면 그로써 족할 것이다.


B. 선악과의 신화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의 인간은 자기자신이 신의 맹목적 취미에서 제작된 습작물習作物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없었다. 다른 신의 습작물(생물)들과 마찬 가지로 의식을 의식할줄아는 재능이 없었던 것이다.

 

 신은(생물) 다른 습작물들의 경우와 똑같이 인간을 창조해 놓고서도 역시 그것에 대하여 일정한 목적도 모랄도 부여하지 않었다.


 이 서투른 창조사업의 동기자체가 거이 무목적이며 우연한 것이 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신은 그대신 이 불행한 습작물들이 그들 생명의 영속과 행동성을 지탱해낼수 있도록 『생식生殖하라. 먹어라. 그리고 죽어라.』라는 허망한 명제에 대한 절대 의지를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신이 가장 두려워 한 것은 에덴 동산의 선악과」이었다. 이 선악과란 」의 달변한 매혹적 언사와 같이 신의 전능한 의식과 예지와 창조의 재능을 생성케 하는 영특한 열매이었다.


 만약 이렇게 무한한 의식이 담겨있는 선악과를 그의 습작물중의 어느 하나라도 따먹게 된다면 풀롯트가 무참하게도 폭로될 것이며 그와 부수되어 그의 잔인과 무지無智를 향해 무수한 조소嘲笑와 원성이 던져지리라는 것을 예상한 것이다. 


 어떻던 습작품들이 영원히 그의 창조정신과 그 의도를 느낄줄 몰라야하며 『생식하라 먹어라 그리고 죽어라』라는 허망한 명제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없어야지만 신으로써의 자기전능과 오소리티이를 지킬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의 염려는 신 자신에 대한 *타산打算이 아니라 그 서글픈 습작품들 자체에 대한 동정에서 울어 나온 성스러운 자비심(?)에서 였다. 유한한 존재에게 무한한 의식을 갖게 한다는것은 너무나 큰모순이며 자기분열을 의미하는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것은 철책에 감금당한 동물원의 짐승들에 밀림의 향수를 이르키게 하는것과 같은 것이다. 신과 같은 절대자 이하의 것이 그러한 선악과의 의식을 갖게 된다면 마침내 그들은 그의식 과잉으로 인하여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자멸행위를 초래할 것이며 항상 비절대자인 자기를 절대자화하려는 무의미한 노력속에서 그들의 육체와 정신을 탕진하고 말것이다. 

*타산: 이해관계를 셈쳐 봄.


 모랄을 부여해 준일이 없는 그 습작물(생물)들에게 창조의 재능과 예지를 갖게 한다는 것은 면허증없는 이발사에게 서슬이 푸른 면도칼을 내맡기는 것이나 다름없어 위태로운 짓임을 알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은 자기 자신의 절대적인 위신을 위해서나 그들(생물)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도선악과」는 불완전한 그의 습작품들이 범해서는 아니될 금단의 과果라는 철칙을 내린것이다. 


 이렇게 신의 비장한 금단의 열매에 대한 철칙은 다름아닌 그의 모순과 무책임과 무지로서의 실패에 대한 합리화이었다.


-


 그러나 그 많은 신의 졸작품들 중에서 인간만이 그 같은 절대의 철칙을 범하고 선악과를 따 먹고 말었다. 신보다 더 교활한 뱀은 그의 얄미운 합리화에 대하여 울분을 느끼고 능숙한 달변으로 화사한 이브의 숨결에 모든것을 밀고해 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신이 예상한 대로 신을 배반하고 무의미한 그 숙명적인 습작물로서의 자기조건을 의식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에게 선악과의 힘이 제일 먼저 발현한 것은 자기의 추한 육체에 대한 수치감이었으며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의상의 창제였다. 이 수치에 대한 의식과 의상의 창제야 말로 인간 독자獨自의 막막한 여정에 오른 첫 출발이었으며 그 비극의 첫 단계였던 것이다. 신도 아니고 그에 부수된 습작물만도 아닌 인간의 존재는 설사 신이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지 않었더래도 이미 그 치욕적이며 굴욕적인 그의 영토에서 간사한 신의 섭리를 기대하여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때부터 에덴에서 하락한 인간은 신이 준 우연적이며 무의미한 이미 존재하고있는 자기」와, 선악과에서 얻은 절대와 전능의 의식자로서의 자기」와를 동시에 *향수享受하지 않으면 아니될 비극을 꾸며나가기 시작하였다. 유한의 조건을 가진 채 느껴야 되는 무한의 세계와 무의미와 맹목에 대한 하나의 의미와 모랄의 설정과 즉 본래적인 것에 대한 비본래적인 것과......이러한 두가지 상극대립한 두조건을 한꺼번에 수행하여야할 휴매니티는 그야말로 낭자한 유혈극의 참상을 자아냈다.

*향수: 예술적인 아름다움이나 감동 따위를 음미하고 즐김.


 몇천각千却을 두고 무한히 되푸리될 생기하라, 먹어라. 그리고 죽어라」라는 *허실虛實의 목적에 대한 묵묵한 이수와 이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점차적으로 심각해짐에 따라 휴우매니티는 다양성의 면모로 변질해 갔다.

*허실: 허함과 실함.


 현대에 이르러 가속도적인 선악과의 효능이 최대한도로 완숙해 짐에 따라 그 비극도 그 절정에 달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인이 느끼는 의식의 비극은 필연성을 띠운 절대의 사실이므로 그들의 「의식」 작업을 중단하거나 *허식虛飾과 기만의 안일성으로 모면冒免되는 그러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허식: 실상 없는 겉치레.


 이것은 하나의 신화라기 보다 너무나 절실하고, 숙명적인 인간비극의 이야기다.


 이상은 이런 신화의 가장 전형적 희생물의 표본이다. 그러므로 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무의미하고 무질서하고 맹목적인 「일상성으로써의 현실과 그를 의식하고 그공백가운데  「자기생自己生」을 설정하려는 선악과의  「의식세계」와...... 이런 부단의 모순으로 찬 인간조건을 한몸에 향수享受하며 살아가지 않으면 아니될 고민苦憫과 그 비극이 곧  「상」의 예술이되었으며 거기에서 자기를 해방시키고자한 의지가 그 예술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이상의 예술이 개인의 병적성격에서 표출된 분비물이 아니라 전인류의 현대인의 고민이며 그 비극앞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은 선악과에서 온 자의식의 숙명만 생각하여도 알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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