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원 Sep 13. 2022

「이상李箱론 - 순수의식의 뇌성과 그 파벽」, 이어령

(6) 환월(Parasélène)

 이 글은  "「이상李箱론 - 순수의식의 뇌성과 그 파벽」, 이어령" 5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글에 대한 설명은 1편 서두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4

 이상以上의 Situation 에서 이상箱李의 모든 예술작품속에 흐르고 있는 이데와 의지는 분열되어 버린 두세계의 상극대립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투쟁이었음을 알수있다. 일상생활에의 「재귀」일상생활의 아우푸헤에벤 혹은 그에 대한 끊임없는 레지스트등의 다양적 시도로써 의식의 성안에 감금당해 버린 자기 liberation의 작업을 수행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소극적인 것이었으며 비행동적인 것이었고 보다 심오하고 줄기찬 작업이 아니었던 까닭에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어떠한 완성된 세계와 통일을 기대할수 없는 것이다. 일상생활적인 것과 엄청난 거리를 가지고 있는 자기의 의식세계를 끝내 일상적 현실성과 중화하지도 융합하지도 타협시키지도못한 것이다. 그는 초월자로서의 과감성을 가지고 일상적 인생을 지배하지도 못하였고 모든 것을 현실속에 완전히 재귀시키지도 못하였다. 또는 무의 절대심연앞에서 자비로운 무한의 대상도 발견하지 못하고 혹은 현실을 굽어보고 고고한 Elevation도 하지 못했다. 그저 현실과 자기와의 숨막히는 대결로써 꾸준히 무엇인가 얻으려고 그 생명에서 흐르는 *임리淋漓한 유혈의 흔적을 무늬좋고 있었을 다름이었다.

*임리: (물이나 피가)흠뻑 젖어 뚝뚝 떨어지거나 흥건한 모양.


 그는 오로지 「이것이 내생生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 미지의 경지를 향하여 묵묵히 접근해 갔었을 뿐이다.


-


 그렇지만 결코 이상이가 하나의 완성된 자기세계를 그리지 못하였다는 것이 그의 흉과 결함은 되지않는다 애석한 마음을 줄지언정 그것을 탓하거나 무시할수는 없다. 도리어 자기 기만과 경솔로 얻어진 어설픈 결론에서 부터 박빙의 세계를 조형하고 이것을 위하여 대담하게도 무수한 언어와 수사학을 안배한 어느 작가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그의 예술이 완성되기는 아직 현대라는 것이 혼돈 그것이었고 무질서한채 그대로 였으며 또한 그의 27세라는 생명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단지 우리가 그의 예술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차디찬 지성의 작업으로 이루고 간 *교교皎皎한 반월半月이다. 그러나 채 완성 되지못한 반월의 *고훈孤暈에는 그 여백을 메꾸는 희미하게 서린 어두운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그 그림자아 말로 그예술의 반월을 기약하는 부분이며 그가 정작 말하고 싶어하는 그의 예술의 세계인 것이다. 

*교교: 흰 빛깔이 깨끗함.

*고훈孤暈: '고독할 고', '달무리 훈'.


 그 어두운 또하나의 *암월暗月이 완전한 빛을 띄우고 Fool moon으로서 나타나게 될때 비로소 무지개와 같이 빛날 *Parasélène가 있는 것이다. 그 Parasélène가 사실은 그의 원 예술의 빛갈이 될 것이며 「이상」이의 진정한 생명이 될 것이다.

*암월: 으슴푸레하게 비치는 달.

*Parasélène: 불어로 '환월'. '환월'이란 달의 좌우에 생기는 두 개의 점광원.

환월 현상 (출처: Sebastian Searloos, NASA Astronomy Picture of the Day)


 우리는 그 Parasélène가 어떠한 것이었을런지 잘 모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희구希求하던 현실과 그 생활과의 「은혼식銀婚式」을 조명하는 *축등祝鐙이었음에 틀림없다. 모든 것을 체험하고 「나」와 「너」와의 모든 간극을 의식하고 생활을 체념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다시 올리는 「은혼식」— 격정도 후회도 번민도 분열도 이제 그 의식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희구: 바라고 요구함.

*은혼식: 결혼 25주년의 기념식 혹은 잔치.

*축등祝鐙: '축하할 축', '등잔 등'.


 새로 차림차린 어색한 예식복을 입고 재차 등장한 늙은 「은혼식」의 부부이미 서로의 매력도 신비도 사라지고 또한 증오와 경멸도 지나가고 서로의 간격도 사라진 이 두 부부는 거칠게 균열한 손들을 부여 잡고 「새로운 생」을 함께 기획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생활에의 행동과 육체를 찾은 이 「은혼식」에 높이 든 축배는 그전의 신혼식장에서 있었든 그것처럼 사치하지는 못할지언정 거기에는 허영과 흥분과 덧없는 희망에 빛나던 수포水泡의 기쁨이 아니라, 성실한 생에의 충족으로 넘친 희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어쨌던 현실속에 뛰어들어가고, 그 곳에서 그 현실을 *영도領導하는 진정한 「생」에의 사회에의 인간에의 예술이었을것을 의심할 수는 없다. (차호계속)

*영도: 거느리고 지도함. 앞장서서 거느리고 이끔.

*「루쉰론」, 「Balzac론」과는 달리 이어령의  「이상론」은 그 내용이 너무 길어 다음 호로 이어지게 된다.


(주註) 이 글 가운데 < >표로 구분된 부분은 이상의 원작품에서 인용해 온 것이다. 지면상 일일이 그출전 작품명을 밝히지 않었음을 말해둔다. (필자국문학과4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