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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원 Oct 04. 2022

46분만에 빚어낸,

신카이 마코토, <언어의 정원>

남자주인공 아키즈키 다카오는 '추월 효웅秋月 孝雄', 여자주인공 유키노 유카리는 '설야 백향리雪野 百香里'.

다카오와 유카리의 나이차이는 12세. 엄마 레이미와 띠동갑 연하 남자친구 간의 나이와도 같다. 사랑이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나이차.

하지만 엄마 레이미의 경우 12세 연하라고 한들 어른인 이상 다카오와 유카리의 관계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영화는 이 심한 나이차를 최대한 '아무것도 아닌 양' 그려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이를테면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다카오를 굉장히 어른스럽게 작화한다거나, 혹은 n과 n+12가 곱절 이상 차이나지 않게끔 15세와 27세라는 적절한 나이를 설정한다거나 하는, 그런 것들이다.

다카오는 매우 부지런한 사람. 학교도 다니고 아르바이트도 하며 자신의 미래를 향한 노력 역시 멈추질 않는다. 아무리 성적이 나쁘다 한들 다카오를 향해 어찌 게으르다 할 수 있겠는가? 다카오는 자신보다 공부를 잘하는 수많은 맹목적 범생이들보다 훨씬 철든 학생이다.

다카오의 형은 다카오에 비하면 훨씬 어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카오는 형보다 더 어른같아 보인다. 이는 절대 형이 철들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형이 평범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다카오는 아이라면 마땅히 곧장이라도 울어버려야만 할 것 같은 상황들 속에서도 눈물 한 방울 없이 오늘내일을 부지런히 살아간다. 즉, 형이 불우한 현실에 무뎌진 인물이라면, 다카오는 여전히 예민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다카오가 어른스러울 수 있었던 것은 가정환경의 영향이 클 터이다. 밝혀지지 않는 이유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갈라서게 되었다. <날씨의 아이>에서의 스가, <너의 이름은>의 미츠하가 그렇듯 불우한 가족관계를 가지고 있는 상황은 알게 모르게 그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가 어린 남자아이임에도 수준급인 요리실력을 가진 것은 그 애달함이 깃든 독립적 성숙함을 내비치는 것이다. 요리를 못하는 유카리가 홀로 설 힘이 없었던 여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의미가 확실히 두드러진다.

그가 '구두 장인'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는 것에도 그런 기억이 결부돼 있다. 어린 시절 형에 아버지까지 셋이 함께 엄마에게 드린 선물이 보라색 구두이고, 그 기억은 그닥 유쾌하지 않은 가정환경 내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자신이 직접 신고 다니는 다소 엉성한 이음질의 신발과, 여전히 투박하지만 훨씬 발전된 기술로 쁘띠하게 빚어낸 유카리의 선물용 구두는 모두 그 추억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다카오는 비를 좋아한다. 비는 하늘의 눈물과도 같은 형상을 한다. 흐린 날씨는 다카오의 인생과도 같다. 하지만 상쾌함만이 존재하는 맑은 날과는 달리, 오히려 그런 가랑비 사이에서 되려 감상이 피어나는 법이다. 다카오는 좋든 싫든 자신에게 부여된 비오는 하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비를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그 감상을 즐기며, 비오는 날엔 지하철 환승을 하는 대신 야외를 걸어가는 것을 택할 줄 아는 그런 남자다.

다카오와 유카리가 비 오는 날이면 만났던 공원 의자에서, 그가 그녀의 구두를 재단하기 위해 치수를 쟤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참 묘하다. 발이라는 신체부위는, 특유의 악취가 나기 때문에 선뜻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부위다. 더러움 탓에 은밀함을 갖추게 된 것인데, 이 은밀함 탓에 되려 섹슈얼한 의미가 형성된다. 따라서 15세와 27세가 가질 수 없는 성적 관계의 제약 속에서, 그 장면은 영화 중에서 묘한 분위기를 지어낸다. 둘은 손조차 잡아본 적 없는 사이지만 다카오의 '구두'를 구실로 손과 발이 맞닿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범죄 수사'를 빌미로 사랑에 빠지게 된 <헤어질 결심>의 서사가 생각났다.

다카오를 처음 마주한, 유카리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수업을 가지 않는 자기네 학교 학생으로부터, 무언의 동질감 따위를 느꼈을까? 하지만 보면 볼수록 다카오는 대단할 정도로 강인한 어른이었으며, 그 모습은 유카리의 '홀로 서기'를 차근차근 가능케 한 영감이 되었다.

7월과 8월, 다카오와 유카리는 운명처럼 만나지 못한다. 다카오는 유카리가 보고 싶었음에도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당신을 만나러 왔다'라는 용기를 낼 수 없어 비가 오기만을 기도했고, 유카리는 절망에 빠진 나날동안 공원에 향하며 다카오를 기다렸으나 그는 공원에 오지 않는다. 뻔하고도 애달픈, 엇갈림의 미학.

다카오는 유카리에 대한 악소문을 퍼트린, 딱봐도 불량한 선배들의 교실에 도전적으로 찾아가 몸빵 형님한테 얻어터진다. 그 장면에서 선배들은 순수한 절대악으로 그려지는데, 결말부에서 유카리를 향해 거칠게 쏘아붙이는 다카오의 마음에도 그러한 형태의 나쁜 기운이 스며든 것을 엿볼 수 있다.

유카리가 사귀었던 문제의 남성은 가식적인 사람이다. 문학을 가르치고, 순수한 여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여린 마음씨의 소유자가, 나쁜 사람들에 의해 상처받는 것은 매우 전형적인 구도이다.

유카리는 왜 다카오의 고백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다카오는 '사귀자'는 도전적인 제안을 한 것이 아니다. 그저, '유키노 씨를 좋아한다'는 내면의 고백을 했을 뿐이다. 7월을 생각해보면 다카오는 유카리가 매일 보고 싶었음에도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핑곗거리로 삼을 것이 없어 공원에 향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자 했던 다카오의 고백은 따라서 매우 용감했다. 그의 진솔한 심경 토로는 당연히 유카리에게 전달되었지만, 열두 살의 나이차이와 일주일 뒤 떠나야만 하는 그녀의 상황이라는 피상적 이유와, 그 어떤 사랑도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심층적 이유가 더해져 그녀는 그 사랑에 응답할 수 없었다.

다카오는 그녀의 철벽에 그의 세상이 무너져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젠틀함을 지켰다. 하지만 계단을 건너 쫓아온 유카리를 마주했을 때는 그만 참지 못했다. 이때 상술한 절대악의 마음이 그를 휘감는다. 다카오는 단순히 그녀를 나쁜 년으로 만드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그녀를 향했던 자신의 사랑 역시 '사기꾼에게 속은 것' 정도로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 속사포같은 악마의 언어들이 그녀에 의해 반증되기를 원한다. 그런 상황에서 유카리의 포옹은 다카오를 녹아내리게 만들고 말았다.

다카오가 떠나고 유카리가 잠깐의 고민 끝에 맨션 계단을 내달렸던 상황에서 그녀는 맨발이었다. 그녀는 영화에서 의자나 소파 등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고, 이는 상처의 기억 탓에 '홀로 서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 그 질주는 그녀의 절박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은연중 그녀의 독립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는 다카오의 영향이다.

<초속 5cm>,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는 주인공들이 모두 근본적으로 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나 그 장애의 극복을 다루는 방식이 모두 제각각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이야말로 진정 완벽한 수준의 '협연과 변주'를 다루는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역시 작화가 굉장히 예쁜데, 앞서 언급한 신카이 마코토의 다른 작품들과 오버랩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참 반가운 기분이 든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특히나 소금쟁이 따위의 곤충들을 참 아름답게 그려내는 것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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