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주회시」
이 글은 "「이상李箱론 - 순수의식의 뇌성과 그 파벽」, 이어령" 4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글에 대한 설명은 1편 서두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기반: 굴레에 얽매여 살아감.
*권화: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하여 다른 모습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타남. 또는 그 화신.
*여급: 다방 등에서 손님의 시중을 드는 여자.
*'모욕侮辱'의 오탈자로 추정.
그날 밤에 그의 아내가 층계에서 굴러 떨어지고 ― 공연히 내일 일을 글탄말라고 어느 눈치 빠른 어른이 타일러 놓셨다. 옳고 말고다. 그는 하루치씩만 잔뜩 산(生)다. 이런 복음에 곱신히 그는 벙어리(속지 말라)처럼 말(言)이 없다. 잔뜩 산다. 아내에게 무엇을 물어 보리요? 그러니까 아내는 대답할 일이 생기지 않고 따라서 부부는 식물처럼 조용하다. 그러나 식물은 아니다. 아닐 뿐 아니라 여간 동물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귤궤짝 만한 방안에 무슨 연줄로 언제부터 이렇게 있게 되었는지 도무지 기억에 없다. 오늘 다음에 오늘이 있는 것. 내일 조금 전에 오늘이 있는 것. 이런 것은 영 따지지 않기로 하고 그저 얼마든지 오늘 오늘 오늘 오늘 하릴없이 눈 가린 마차 말의 동강난 시(視)야다. 눈을 뜬다. 이번에는 생시가 보인다. 꿈에는 생시를 꿈꾸고 생시에는 꿈을 꿈꾸고 어느 것이나 재미있다. 오후 네 시. 옮겨 앉은 아침 ― 여기가 아침이냐. 날마다다. 그러나 물론 그는 한 번 씩 한 번 씩이다. (어떤 거대한 모체가 나를 여기다 갖다 버렸나) ― 그저 한없이 게으른 것 ― 사람노릇을 하는 체 대체 어디 얼마나 기껏 게으를 수 있나 좀 해보자 ― 게으르자 ― 그저 한없이 게으르자 ― 시끄러워도 그저 모른 체하고 게으르기만 하면 다 된다. 살고 게으르고 죽고 ― 가로대 사는 것이라면 떡먹기다. 오후 네 시. 다른 시간은 다 어디 갔나. 대수냐. 하루가 한 시간도 없는 것이라기로서니 무슨 성화가 생기나.
또 거미. 아내는 꼭 거미. 라고 그는 믿는다. 저것이 어서 도로 환투를 하여서 거미 형상을 나타내었으면 ― 그러나 거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는 이야기는 들은 일이 없다. 보통 발로 밟아 죽이는데 신발 신기커녕 일어나기도 싫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다. 이 방에 그 외에 또 생각하여 보면 ― 맥이 뼈를 디디는 것이 빤히 보이고, 요 밖으로 내어놓는 팔뚝이 밴댕이처럼 꼬스르하다 ― 이 방이 그냥 거민게다. 그는 거미 속에 가 넓적하게 드러누워 있는게다. 거미 냄새다. 이 후덥지근한 냄새는 아하 거미 냄새다. 이 방안이 거미 노릇을 하느라고 풍기는 흉악한 냄새에 틀림없다. 그래도 그는 아내가 거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가만 둔다. 그리고 기껏 게을러서 아내 ― 인(人)거미 ― 로 하여금 육체의 자리 ― (혹, 틈)를 주지 않게 한다.
방 밖에서 아내는 부시럭거린다. 내일 아침보다는 너무 이르고 그렇다고 오늘 아침보다는 너무 늦은 아침밥을 짓는다. 예이 덧문을 닫는다. (민활하게) 방안에 색종이로 바른 반닫이가 없어진다. 반닫이는 참 보기 싫다. 대체 세간이 싫다. 세간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왜 오늘은 있나. 오늘이 있어서 반닫이를 보아야 되느냐. 어둬졌다. 계속하여 게으른다. 오늘과 반닫이가 없어져라고. 그러나 아내는 깜짝 놀란다. 덧문을 닫는 ― 남편 ― 잠이나 자는 남편이 덧문을 닫았더니 생각이 많다. 오줌이 마려운가 ― 가려운가 ― 아니 저 인물이 왜 잠을 깨었나. 참 신통한 일은 ― 어쩌다가 저렇게 사(生)는지 사는 것이 신통한 일이라면 또 생각하여 보면 자는 것은 더 신통한 일이다. 어떻게 저렇게 자나? 저렇게도 많이 자나? 모든 일이 희한한 일이었다. 남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부부람 ― 남편 ― 아내가 아니라도 그만 아내이고 마는고야. 그러나 남편은 아내에게 무엇을 하였느냐 ― 담벼락이라고 외풍이나 가려 주었더냐. 아내는 생각하다 보니까 참 무섭다는 듯이 ― 또 정말이지 무서웠겠지만 ― 이 닫은 덧문을 얼른 열고 늘 들어도 처음 듣는 것 같은 목소리로 어디 말을 건네본다. 여보 ― 오늘은 크리스마스요 ― 봄날같이 따뜻(이것이 원체 틀린 화근이다)하니 수염좀 깎소.
도무지 그의 머리에서 그 거미의 어렵디 어려운 발들이 사라지지 않는데 들은 크리스마스라는 한 마디 말은 참 서늘하다. 그가 어쩌다가 그의 아내와 부부가 되어 버렸나. 아내가 그를 따라온 것은 사실이지만 왜 따라왔나? 아니다. 와서 왜 가지 않았나 ― 그것은 분명하다. 왜 가지 않았나, 이것이 분명하였을 때 ― 그들이 부부노릇을 한 지 일 년 반쯤 된 때 ― 아내는 갔다. 그는 아내가 왜 갔나를 알 수 없었다. 그 까닭에 도저히 아내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왔다. 그는 왜 왔는지 알았다. 지금 그는 아내가 왜 안 가는지를 알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왜 갔는지 모르게 아내가 가버릴 징조에 틀림없다. 즉 경험에 의하면 그렇다. 그는 그렇다고 왜 안 가는지를 일부러 몰라 버릴 수도 없다. 그냥 아내가 설사 또 간다고 하더라도 왜 안 오는지를 잘 알고 있는 그에게로 불쑥 돌아와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나 한다.
수염을 깎고 첩첩이 닫아버린 번지에서 나섰다. 딴은 크리스마스가 봄날같이 따뜻하였다. 태양이 그동안에 퍽 자란가도 싶었다. 눈이 부시고 ― 또 몸이 까칫까칫도 하고 ― 땅은 힘이 들고 두꺼운 벽이 더덕더덕 붙은 빌딩들을 쳐다보는 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숨이 차다. 아내 흰 양말이 고동색 털양말로 변한 것 ― 계절은 방속에서 묵는 그에게 겨우 제목만을 전하였다. 겨울 ― 가을이 가기도 전에 내닥친 겨울에서 처음으로 인사 비슷이 기침을 하였다. 봄날같이 따뜻한 겨울날 ― 필시 이런 날이 세상에 흔히 있는 공일날이나 아닌지 ― 그러나 바람은 뺨에도 콧방울에도 차다. 저렇게 바쁘게 씨근거리는 사람 무거운 통 짐 구두 사냥개 야단치는 소리 안 열린 들창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 어디로 가 볼까. (A취인점) (생각나는 명함) (오(吳)군) (자랑마라) (24일날 월급이든가) 동행이라도 있는 듯이 그는 팔짱을 내저으며 싹둑싹둑 썰어붙인 것 같이 얄팍한 A취인점 담벼락을 뺑뺑 싸고 돌다가 이 속에는 무엇이 있나. 공기? 사나운 공기리라. 살을 저미는 ― 과연 보통 공기가 아니었다. 눈에 핏줄 ― 새빨갛게 달은 전화 ― 그의 허섭수룩한 몸은 금시에 타 죽을 것 같았다. 오는 어느 회전의자에 병마개모양으로 명쳐 있었다. 꿈과 같은 일이다. 오는 장부를 뒤져 주소 씨명을 차곡차곡 써 내려가면서 미남자인 채로 생동생동 (살고) 있었다. 조사부(調査部)라는 패가 붙은 방 하나를 독차지하고 방 사벽에다가는 빈틈없이 방안(方眼)지에 그린 그림 아닌 그림을 발라놓았다.
『저런 걸 많이 연구하면 대강은 짐작이 나서렷다.』
『도통하면 돈이 돈 같지 않아지느니.』
『돈 같지 않으면 그럼 방안지 같은가.』
『방안지?』
『그래 도통은?』
『흐흠 ― 나는 도로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데.』
그러나 오는 야위지 않고는 배기기 어려웠던가 싶다. 술 ― 그럼 색? 오는 완전히 오 자신을 활활 열어 젖혀놓은 모양이었다. 흡사 그가 오 앞에서나 세상 앞에서나 그 자신을 첩첩이 닫고 있듯이. 오냐, 왜 그러니 나는 거미다. 연필처럼 야위어 가는 것 ― 피가 지나가지 않는 혈관 ― 생각하지 않고도 없어지지 않는 머리 ― 칵 막힌 머리 ― 코 없는 생각 ― 거미 거미 속에서 안 나오는 것 ― 내다보지 않는 것 ― 취하는 것 ― 정신 없는 것 ― 방 ― 버선처럼 생긴 방이었다. 아내였다. 거미라는 탓이었다.
오는 주소 씨명을 멈추고 그에게 담배를 내밀었다. 그러자 연기를 가르면서 문이 열렸다. (퇴사시간) 뚱뚱한 사람이 말처럼 달려들었다. 뚱뚱한 신사는 오와 깨끗하게 인사를 한다. 가느다란 몸집을 한 오는 굵은 목소리를 굵은 몸집을 한 신사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주고받고 하는 신선한 회화다.
『사장께서는 나가셨나요?』
『네 ― 참 이백 명이 좀 넘는데요.』
『넉넉합니다. 먼저 오시겠지요.』
『한 시간쯤 미리 가지요.』
『에 ―또 에 ―또 에또 에또 그럼 그렇게 알고.』
『가시겠습니까.』
툭탁 하고 나더니 뚱뚱한 신사는 곁에 앉은 그를 흘깃 보고 고개를 돌리고 그저 지나갈 듯하다가 다시 흘깃 본다. 그는 ― 내 인사를 하면 어떻게 되더라? 하고 망싯망싯 하다가 그만 얼떨결에 꾸뻑 인사를 하여 버렸다. 이 무슨 염치없는 짓인가. 뚱뚱 신사는 인사를 받더니 받아가지고는 그냥 싱긋 웃듯이 나가버렸다. 이 무슨 모욕인가. 그의 귀에는 뚱뚱 신사가 대체 누군가를 생각해 보는 동안에도 『어떠십니까』는 그 뚱뚱 신사의 손가락질 같은 말 한 마디가 남아서 웽웽한다. 어떠냐니 무엇이 어떠냐누 ― 아니 그게 누군가 ― 옳아 옳아. 뚱뚱 신사는 바로 그의 아내가 다니고 있는 카페 R회관 주인이었다. 아내가 또 온 건 서너 달 전이다. 와서 그를 먹여 살리겠다는 것이었다. 빚 ‘백원’을 얻어 쓸 때 그는 아내를 앞세우고 뚱뚱이 보는데 타원형 도장을 찍었다. 그때 유카다 입고 내려다보던 눈에서 느낀 굴욕을 오늘이라고 잊었을까. 그러나 그는 이게 누군지도 채 생각나기 전에 어언간 이 뚱뚱이에게 고개를 수그리지 않았나. 지금. 지금. 골수에 스미고 말았나보다. 칙칙한 근성이 ― 모르고 그랬다고 하면 말이 될까? 더럽구나. 무슨 구실로 변명하여야 되나. 에잇! 에잇! 아무것도 차라리 억울해 하지 말자 ― 이렇게 맹세하자. 그러나 그의 뺨이 화끈화끈 달았다. 눈물이 새금새금 맺혀 들어왔다. 거미 ― 분명히 그 자신이 거미였다. 물부리처럼 야위어 들어가는 아내를 빨아먹는 거미가 너 자신인 것을 깨달아라. 내가 거미다. 비린 내 나는 입이다. 아니 아내는 그럼 그에게서 아무것도 안 빨아먹느냐. 보렴 ― 이 파랗게 질린 수염 자국 ― 퀭한 눈 ― 늘씬하게 만연되나마나하는 형용없는 영양(營養)을 ― 보아라. 아내가 거미다. 거미 아닐 수 있으랴. 거미와 거미 거미와 거미냐. 서로 빨아먹느냐. 어디로 가나. 마주 야위는 까닭은 무엇인가. 어느날 아침에나 뼈가 가죽을 찢고 내밀리려는지 ― 그 손바닥만한 아내의 이마에는 땀이 흐른다. 아내의 이마에 손을 얹고 그래도 여전히 그는 잔인하게 아내를 밟았다. 밟히는 아내는 삼경이면 쥐소리를 지르며 찌그러지곤 한다. 내일 아침에 펴지는 염낭처럼. 그러나 아주까리 같은 사치한 꽃이 핀다. 방은 밤마다 홍수가 나고 이튿날이면 쓰레기가 한 삼태기씩이나 났고 ― 아내는 이 묵직한 쓰레기를 담아가지고 늦은 아침 ― 오후 네 시 ― 뜰로 내려가서 그도 대리(代理)하여 두 사람 치의 해를 보고 들어온다. 금 긋듯이 아내는 작아 들어갔다. 쇠와 같이 독한 꽃 ― 독한 거미 ― 문을 닫자. 생명에 뚜껑을 덮었고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 버릇을 닫았고 그 자신을 닫았다. 온갖 벗에서 ― 온갖 관계에서 ― 온갖 희망에서 ― 온갖 욕(慾)에서 ― 그리고 온갖 욕에서 ― 다만 방안에서만 그는 활발하게 발광할 수 있었다. 미역 핥듯 핥을 수도 있었다. 전등은 그런 숨결 때문에 곧잘 꺼졌다. 밤마다 이 방은 고달팠고 뒤집어 엎었고 방안은 기어 병들어 가면서도 빠득빠득 버티고 있다. 방안은 쓰러진다. 밖에 와 있는 세상 ― 암만 기다려도 그는 나가지 않는다. 손바닥만한 유리를 통하여 꿋꿋이 걸어가는 세월을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밤이 그 유리조각마저도 얼른얼른 닫아 주었다. 안된다고.
그러자 오는 그의 무색해 하는 것을 볼 수 없다는 듯이 들창 셔터를 내렸다. 자 나가세. 그는 여기서 나가지 않고 그냥 그의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6원짜리 셋방) (방밖에 없는 방) (편한 방) 그럴 수는 없나.
『그 뚱뚱이 어떻게 아나?』
『그저 알지.』
『그저라니.』
『그저.』
『친헌가.』
『천만에 ― 대체 그게 누군가.』
『그거 ― 그건 가부꾼이지 ― 우리 취인점허구는 돈 만원 거래나 있지.』
『흠』
『개천에서 용이 나려니까』
R카페는 뚱뚱의 부업인 모양이었다. 내일 밤은 A취인점이 고객을 초대하는 망년회가 R카페 삼층 홀에서 열릴 터이고 오는 그 준비를 맡았단다. 이따가 느지막해서 오는 R회관에 좀 들른단다. 그들은 찻점에서 우선 홍차를 마셨다. 크리스마스트리 곁에서 축음기가 깨끗이 울렸다. 두루마기처럼 기다란 털외투 ― 기름 바른 머리 ― 금시계 ― 보석 박힌 넥타이핀 ― 이런 모든 오의 차림차림이 한없이 그의 눈에 거슬렸다. 어쩌다가 저 지경이 되었을까. 아니 내야말로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돈이 있다) 사람을 속였단다. 다 털어먹은 후에는 볼품 좋게 여비를 주어서 쫓는 것이었다. 삼십까지 백만 원. 주체할 수 없이 달라붙는 계집. 자네도 공연히 꾸물꾸물 하지 말고 청춘을 이렇게 대우하라는 것이었다. (거침없는 오 이야기) 어쩌다가아니 ― 어쩌다가 나는 이렇게 훨씬 물러앉고 말았나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모든 이런 오의 저속한 큰 소리가 맹탕 거짓말 같기도 하였으나 또 아니 부러워할래야 아니 부러워할 수 없는 형언 안 되는 것이 확실히 있는 것도 같았다.
지난 봄에 오는 인천에 있었다. 십년 ― 그들의 깨끗한 우정이 꿈과 같은 그들의 소년시대를 그냥 아름다운 것으로 남기게 하였다. 아직 싹트지 않은 이른봄 건강이 없는 그는 오와 사직공원 산기슭을 같이 걸으며 오가 긴히 이야기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너무나 뜻밖의 일은 ― 오의 아버지는 백만의 가산을 날리고 마지막 경매가 완전히 끝난 것이 바로 엊그제라는 ― 여러 형제 가운데 이 오에게만 단 한 줄기 촉망을 두는 늙은 기미(期米) 호걸의 애끊는 글을 오는 속주머니에서 꺼내 보이고 ― 저버릴 수 없는 마음이 ― 오는 운다 ― 우리 일생의 일로 정하고 있던 화필을 요만 일에 버리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는 ― 전에도 후에도 한번밖에 없는 오의 종종(淙淙)한 고백이었다. 그때 그는 봄과 함께 건강이 오기만 눈이 빠지게 고대하던 차 ― 그도 속으로 화필을 던진 지 오래였고 ― 묵묵히 멀지 않아 쪼개질 축축한 지면을 굽어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뒤미처 태풍이 왔다. 오너라 ― 내 생활을 좀 보아라 ― 이런 오의 부름을 빙그레 웃으며 그는 인천의 오를 들렀다. 사사(四四) ―벅적대는 해안통 ― K취인점 사무실 ―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오의 형영 깎은 듯한 오의 집무 태도를 그는 여전히 건강이 없는 눈으로 어이없이 들여다보고 오는 날을 오는 날을 탄식하였다. 방은 전화자리 하나를 남기고 빽빽이 방안지로 메꿔져 있었다. 낡기도 전에 갈리는 방안지 위에 붉은 선 푸른 선의 높고 낮은 것 ― 오의 얼굴은 일시 일각이 한결같지 않았다. 밤이면 오를 따라 양철조각 같은 ‘바’로 얼마든지 쏘다닌 다음 ― (시키시마) ― 나날이 축가는 몸을 다스릴 수 없었건만 이상스럽게 오는 여섯 시면 깨었고 깨어서는 홰등잔 같은 눈알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빨간 뺨이 까딱하지 않고 아홉 시까지는 해안통 사무실에 낙자없이 있었다. 피곤하지 않는 오의 몸이 아마 금강력과 함께 ― 필연 ― 무슨 도(道)고 도를 통하였나 보다. 낮이면 오의 아버지는 울적한 심사를 하나 남은 가야금에 붙이고 이따금 자그마한 수첩에 믿는 아들에게서 걸리는 전화를 만족한 듯이 적는다. 미닫이를 열면 경인열차가 가끔 보인다. 그는 오의 털외투를 걸치고 월미도 뒤를 돌아 드문드문 아직도 덜진 꽃나무 사이 잔디 위에 자리를 잡고 반듯이 누워서 봄이 오고 건강이 아니온 것을 글탄하였다. 내다보이는 바다 ― 개흙밭 위로 바다가 한 벌 드나들더니 날이 저물고 저물고 하였다. 오후 네 시 오는 휘파람을 불며 이 날마다 같은 잔디로 그를 찾아온다. 천막 친 데서 흔들리는 포터블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사슴을 보고 너무 긴 방죽 중간에서 좀 선선한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굴 캐는 것좀 보고 오방에서 신문과 저녁이 정답게 끝난다. 이러한 달 ― 5월 ― 그는 바로 그 잔디 위에서 어느덧 배따라기를 배웠다. 흉중에 획책하던 일이 날마다 한 켜씩 바다로 흩어졌다. 인생에 대한 끝없는 주저를 잔뜩 지니고 인천서 돌아온 그의 방에서는 아내의 자취를 찾을 길이 없었다. 부모를 배역한이런 아들을 아내는 기어이 이렇게 잘 뙹겨 주는구나 ― (문학) (시) 영구히 인생을 망설거리기 위하여 길 아닌 길을 내디뎠다 그러나 또 튀려는 마음 ― 삐뚤어진 젊음 (정치) 가끔 그는 투어리스트 뷰로에 전화를 걸었다. 원양 항해의 배는 늘 방안에서만 기적도 불고 입항도 하였다. 여름이 그가 땀 흘리는 동안에 가고 ― 그러나 그의 등의 땀이 걷히기 전에 왕복엽서 모양으로 아내가 초조히 돌아왔다. 낡은 잡지 속에 섞여서 배고파하는 그를 먹여 살리겠다는 것이다. 왕복엽서 ― 없어진 반 ― 눈을 감고 아내의 살에서 허다한 지문(指紋) 내음새를 맡았다. 그는 그의 생활의 서술에 귀찮은 공을 쳤다. 끝났다. 먹여라 먹으마 ― 머리도 잘라라 ― 머리 지지는 십전짜리 인두 ― 속옷밖에 필요치 않은 하루 ― R카페 ― 뚱뚱한 유카다 앞에서 얻은 백원 ― 그러나 그 백원을 그냥 쥐고 인천 오에게로 달려가는 그의 귀에는 지난 5월 오가 ― 백원을 가져 오너라 우선 석 달 만에 백원 내놓고 오백원을 주마 ― 는 분간할 수 없지만 너무 든든한 한 마디 말이 쟁쟁하였던 까닭이다. 그리고 도전(盜電)하는 그에게 아내는 제발이 저려 그랬겠지만 잠자코 있었다. 당하였다. 신문에서 배 시간표를 더러 보기도 하였다. 오는 두서너 번 편지로 그의 그런 생활태도를 여간 칭찬한 것이 아니다. 오가 경성으로 왔다. 석 달은 한 달 전에 끝이 났는데 ― 오는 인천서 오에게 버는 족족 털어바치던 아내(라고 오는 결코 부르지 않았지만)를 벗어버리고 ― 그까짓 것은 하여간에 오의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우정은 그 넉 달 전의 일도 또 한 달 전에 으레 있었어야 할 일도 광풍제월같이 잊어버린 ― 참 반가운 편지가 요 며칠 전에 그의 닫은 생활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가을과 겨울을 잤다. 계속하여 자는 중이었다. ― 예이 그래 이 사람아 한번 파치가 된 계집을 또 데리고 살다니 하는 오의 필시 그럴 공연한 쑤석질도 싫었었고 ― 그러나 크리스마스 ― 아니다. 어디 그 꿩 구워 먹은 좋은 얼굴을 좀 보아두자 ― 좋은 얼굴 ― 전날의 오 ― 그런 것이지 ― 주체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여기다가 동그라미를 하나 쳐두자 ― 물론 아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날 밤에 아내는 멋없이 층계에서 굴러 떨어졌다. 못났다.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이 긴가민가한 오와 그는 어디서 술을 먹었다. 분명히 아내가 다니고 있는 R회관은 아닌 그러나 역시 그는 그의 아내와 조금도 틀린 곳을 찾을 수 없는 너무 많은 그의 아내들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별의별 세상이다. 저렇게 해 놓으면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 오 ― 가는 것을 보면 알겠군 ― 두 시에는 남편 노릇하는 사람들이 일일이 영접하러 오는 그들 여급의 신기한 생활을 그는 들어 알고 있다. 아내는 마중오지 않는 그를 애정을 구실로 몇 번이나 책망하였으나 들키면 어떻게 하려느냐 ― 누구에게 ― 즉 ― 상대는 보기 싫은 넓적하게 생긴 세상이다. 그는 이 왔다갔다하는 똑같이 생긴 화장품 ― 사실 화장품의 고하가 그들을 구별시키는 외에는 표난 데라고는 영 없었다 ― 얼숭덜숭한 아내들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보았다. 헤헤 ― 모두 그렇겠지 ― 가서는 방에서 ― (참 당신은 너무 닮았구려) ― 그러나 내 아내는 화장품을 잘 사용하지 않으니까 ― 아내의 파리한 바탕 주근깨 ― 코보다 작은 코 ― 입보다 얇은 입 ― (화장한 당신이 화장 안한 아내를 닮았다면?) ― 『용서하오』― 그러나 내 아내만은 왜 그렇게 야위나. 무엇 때문에 (네 죄) (네가 모르느냐) (알지) 그러나 이 여자를 좀 보아라. 얼마나 이글이글하게 살이 알르냐 잘 쪘다. 곁에 와 앉기만 하는데도 후끈후끈 하는구나. 오의 귓속말이다.
『이게 마유미야 이 뚱뚱보가 ― 하릴없이 양돼진데 좋아 좋단 말이야 ― 금(金)알 낳는 게사니 이야기 알지 (알지) 즉 화수분이야 ― 하룻저녁에 삼원 사원 오원 ― 잡힐 물건이 없는데 돈 주는 전당국이야 (정말?) 아 ― 나의 사랑하는 마유미거든』
지금쯤은 아내도 저 짓을 하렷다. 아프다. 그의 찌푸린 얼굴을 얼른 오가 껄껄 웃는다. 흥 ― 고약하지 ― 하지만 들어보게 ― 소바에 계집은 절대 금물이다. 그러나 살을 저며 먹이려고 달려드는 것을 어쩌느냐 (옳다 옳다) 계집이란 무엇이냐 돈 없이 계집은 무의미다 ― 아니, 계집 없는 돈이야말로 무의미다. (옳다 옳다) 오야 어서 다음을 계속하여라. 따면 따는 대로 금시계를 산다 몇 개든지, 또 보석, 털외투를 산다, 얼마든지 비싼 것으로. 잃으면 그놈을 끄린다 옳다. (옳다 옳다) 그러나 이 짓은 좀 안타까운 걸. 어떻게 하는고 하니 계집을 하나 찰짜로 골라 가지고 쓱 시계 보석을 사주었다가 도로 빼앗아다가 끄리고 또 사주었다가 또 빼앗아다가 끄리고 ― 그러니까 사주기는 사주었는데 그 놈이 평생 가야 제 것이 아니고 내 것이거든 ― 쓱 얼마를 그런 다음에는 ― 그러니까 꼭 여급이라야만 쓰거든 ― 하룻저녁에 아따 얼마를 벌든지 버는 대로 털거든 ― 살을 저며 먹이려 드는데 하루에 아 삼사 원 털기 쯤 ― 보석은 또 여전히 사주니까 남는 것은 없어도 여러 번 사준 폭 되고 내가 거미지, 거민 줄 알면서도 ― 아니야, 나는 또 제 요구를 안 들어주는 것은 아니니까 ― 그렇지만 셋방 하나 얻어가지고 같이 살자는 데는 학질이야 ― 여보게 거기까지만 가면 삼십까지 백만원 꿈은 세봉이지. (옳다? 옳다?) 소바란 놈 이따가 부자 되는 수효보다는 지금 거지 되는 수효가 훨씬 더 많으니까, 다, 저런 것이 하나 있어야 든든하지. 즉 배수진을 쳐놓자는 것이다. 오는 현명하니까 이 금알 낳는 게사니 배를 가를 리는 천만만무다. 저 더덕덕덕 붙은 볼따구니 두껍다란 입술이 생각하면 다시없이 귀엽기도 할밖에.
그의 눈은 주기로 하여 차차 몽롱하여 들어왔다 개개풀린 시선이 그 마유미라는 고깃덩어리를 부러운 듯이 살피고 있었다. 아내 ― 마유미 ― 아내 ― 자꾸 말라 들어가는 아내 ― 꼬챙이 같은 아내 ― 그만좀 마르지 ― 마유미를 좀 보려무나 ― 넓적한 잔등이 푼더분한 푹, 폭(幅), 푹을 ― 세상은 고르지도 못하지 ― 하나는 옥수수과자 모양으로 무럭무럭 부풀어 오르고 하나는 눈에 보이듯이 오그라들고 ― 보자 어디 좀 보자 ― 인절미 굽듯이 부풀어 올라오는 것이 눈으로 보이렷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어항에 든 금붕어처럼 눈자위 속에서 그저 오르락내리락 꿈틀거릴 뿐이었다. 화려하게 웃는 마유미의 복스러운 얼굴이 해초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오는 이런 코를 찌르는 화장품 속에서 웃고 소리 지르고 손뼉을 치고 또 웃었다.
왜 오에게만 저런 강력한 것이 있나. 분명히 오는 마유미에게 여위지 못하도록 금하여 놓았으리라. 명령하여 놓았나보다. 장하다. 힘. 의지. ― ? 그런 강력한 것 ― 그런 것은 어디서 나오나. 내 ― 그런 것만 있다면 이 노릇 안 하지 ― 일하지 ― 하여도 잘하지 ― 들창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아내에게서 그 악착한 끄나풀을 끌러 던지고 훨훨 줄달음박질을 쳐서 달아나 버리고 싶었다. 내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 온갖 것아, 없어져라. 닫자. 첩첩이 닫자. 그러나 이것도 힘이 아니면 무엇이랴 ― 시뻘겋게 상기한 눈이 살기를 띠고 명멸하는 황홀경 담벼락에 숨 쉬일 구멍을 찾았다. 그냥 벌벌 떨었다. 텅 비인 골속에 회오리바람이 일어난 것 같이 완전히 전후를 가리지 못하는 일개 그는 추잡한 취한으로 화하고 말았다.
그때 마유미는 그의 귀에다 대이고 속삭인다. 그는 목을 움칫 하면서 혀를 내밀어 널름널름 하여 보였다. 그러나 저러나 너무 먹었나보다 ― 취하기도 취하였거니와 이것은 배가 좀 너무 부르다. 마유미 무슨 이야기요.
『저이가 거짓말쟁인 줄 제가 모르는 줄 아십니까. 알아요 (그래서) 미술가라지요. 생 딴전을 해놓겠지요. 좀 타일러 주세요 ― 어림없이 그러지 말라구요 ― 이 마유미는 속는 게 아니라구요 ― 제가 이러는 게 그야 좀 반하긴 반했지만 ― 선생님은 아시지요 (알고 말고) 어쨌든 저따위 끄나풀이 한 마리 있어야 삽니다. (뭐? 뭐?) 생각해 보세요 ― 그래 하룻밤에 삼사 원씩 벌어야 뭣에다 쓰느냐 말이에요 ― 화장품을 사나요? 옷감을 끊나요 하긴 한두 번 아니 여남은 번까지는 아주 비싼 놈으로 골라서 그 짓도 하지요 ― 하지만 허구한 날 화장품을 사나요 옷감을 끊나요? 거기다 뭐하나요 ― 얼마 못가서 싫증이 납니다 ― 그럼 거지를 주나요? 아이구 참 ― 이 세상에서 제일 미운 게 거집니다. 그래두 저런 끄나풀을 한 마리 가지는 게 화장품이나 옷감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좀처럼 싫증나는 법이 없으니까요 ― 즉 남자가 외도하는 ― 아니 ― 좀 다릅니다. 하여간 싸움을 해 가면서 벌어다가 그날 저녁으로 저 끄나풀한테 빼앗기고 나면 ― 아니 송두리째 갖다 바치고 나면 속이 시원합니다. 구수합니다. 그러니까 저를 빨아먹는 거미를 제 손으로 기르는 세음이지요. 그렇지만 또 이 허전한 것을 저 끄나풀이 다수굿이 채워주거니 하면 아까운 생각은 커녕 즈이가 되려 거민가 싶습니다. 돈을 한 푼도 벌지 말면 그만이겠지만 인제 그만 해도 이 생활이 살에 척 배어 버려서 얼른 그만 두기도 어렵고 허자니 그러기는 싫습니다. 이를 북북 갈아 제쳐가면서 기를 쓰고 빼앗습니다.』
양말 ― 그는 아내의 양말을 생각하여 보았다. 양말 사이에서는 신기하게도 밤마다 지폐와 은화가 나왔다. 오십 전짜리가 딸랑 하고 방바닥에 굴러 떨어질 때 듣는 그 음향은 이 세상 아무것에도 비길 수 없는 가장 숭엄한 감각에 틀림 없었다. 오늘밤에는 아내는 또 몇 개의 그런 은화를 정강이에서 배앝아 놓으려나 그 북어와 같은 종아리에 난 돈자국 ― 돈이 살을 파고 들어가서 ― 고놈이 아내의 정기를 속속들이 빨아내이나 보다. 아 ―거미 ― 잊어버렸던 거미 ― 돈도 거미 ― 그러나 눈 앞에 놓여 있는 너무나 튼튼한 쌍거미 ― 너무 튼튼하지 않으냐. 담배를 한 대 피워물고 ― 참 ― 아내야. 대체 내가 무엇인 줄 알고 죽지 못하게 이렇게 먹여 살리느냐 ― 죽는 것 ― 사는 것. ― 그는 천하다. 그의 존재는 너무나 우스꽝스럽다. 스스로 지나치게 비웃는다.
그러나 ― 두 시 ― 그 황홀한 동굴 ― 방(房) ―을 향하여 그의 걸음은 빠르다. 여러 골목을 지나 ― 오야 너는 너 갈 데로 가거라 ― 따뜻하고 밝은 들창과 들창을 볼 적마다 ― 닭 ― 개 ― 소는 이야기로만 ― 그리고 그림엽서 ― 이런 펄펄 끓는 심지를 부여잡고 그 화끈화끈한 방을 향하여 쏟아지듯이 몰려간다. 전신의 피 ― 무게 ― 와있겠지 ― 기다리겠지 ― 오래간만에 취한 실없는 사건 ― 허리가 녹아나도록 이 녀석 ― 이 녀석 ― 이 엉뚱한 발음 ― 숨을 힘껏 들이쉬어 두자. 숨을 힘껏 쉬어라. 그리고 참자. 에라. 그만 아주 미쳐 버려라.
그러나 웬일일까. 아내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아하 ― 그날이 왔구나. 왜 갔는지 모르는데 가버리는 날 ― 하필? 그러나 (왜 왔는지 알기 전에) 왜 갔는지 모르고 지내는 중에 너는 또 오려느냐 ― 내친 걸음이다. 아니 ― 아주 닫아버릴까. 수챗구멍에 빠져서라도 섣불리 세상이 업신여기려도 업신여길 수 없도록 ― 트집거리를 주어서는 안된다. R카페 ― 내일 A취인점이 고객을 초대하는 망년회를 열 ― 아내 ― 뚱뚱 주인이 받아가지고 간 내 인사 ― 이 저주받아야 할 R카페의 뒷문으로 하여 주춤주춤 그는 조바에 그의 헙수룩한 꼴을 나타내었다. 조바 내 다 안다 ― 너희들이 얼마에 사다가 얼마에 파나 ― 알면 무엇을 하나 ― 여보 안경 쓴 부인 말좀 물읍시다. (아이구 복작거리기도 한다 이 속에서 어떻게들 사누) 부인은 통신부같이 생긴 종잇조각에 차례차례 도장을 하나씩만 찍어준다. 아내는 일상 말하였다. 얼마를 벌든지 일원씩만 갚는 법이라고 ― 딴은 무이자다 ― 어째서 무이자냐 ― (아느냐) ― 돈이 ― 같지 않더냐 ― 그야말로 도통을 하였느냐. 그래
『나미코가 어디 있습니까』
『댁에서 오셨나요 지금 경찰서에 가 있습니다』
『뭘 잘못 했나요』
『아 아니 ― 이거 어째 이렇게 칠칠치가 못할까』는 듯이 칼을 들고 나온 쿡이 똑똑히 좀 들으라는 이야기다. 아내는 층계에서 굴러 떨어졌다. 넌 왜 요렇게 빼빼 말랐니 ― 아야 아야 노세요 말좀 해 봐 아야 아야 노세요. (눈물이 핑 돌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양돼지 모양으로 살이 쪘소 오 ― 뭐이, 양돼지? ― 양돼지가 아니고 ― 에이 발칙한 것. 그래서 발길로 채였고 채여서는 층계에서 굴러 떨어졌고 굴러 떨어졌으니 분하고 ― 모두 분하다.
『과히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런 놈은 버릇을 좀 가르쳐 주어야 하느니 그래 경관은 내가 불렀소이다.』
말라깽이라고 그런 점잖은 손님의 농담에 어찌 외람히 말대꾸를 하였으며 말대꾸도 유분수지 양돼지라니 ― 그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말라깽이가 아니고 무엇이냐 ― 암 ― 내라도 양돼지 소리를 듣고는 ― 아니 말라깽이 소리를 듣고는 ― 아니 양돼지 소리를 듣고는 ― 아니다 아니다 말라깽이 소리를 듣고는 ― 나도 사실은 말라깽이지만 ― 그저 있을 수 없다 ― 양돼지라 그래 줄 밖에 ― 아니 그래 양돼지라니 그런 괘씸한 소리를 듣고 내가 손님이라면 ― 아니 내가 여급이라면 ― 당치 않은 말 ― 내가 손님이라면 그냥 패주겠다. 그렇지만 아내야 양돼지 소리 한 마디만은 잘 했다 그러니까 걷어 채였지 ― 아니 나는 대체 누구 편이냐 누구 편을 들고 있는 세음이냐. 그 대그락대그락 하는 몸이 은근히 다쳤겠지 ― 접시 깨지듯 했겠지 ― 아프다. 아프다. 앞이 다 캄캄하여지기 전에 사부로가 씨근씨근 왔다. 남편 되는 이더러 오란단다. 바로 나요 ― 마침 잘 되었습니다. 나쁜 놈입니다. 고소하세요. 여급들과 보이들과 이다바들의 동정은 실로 나미코 일신 위에 집중되어 형세 자못 온건치 않은 것이었다.
경찰서 숙직실 ― 이상하다 ― 우선 경부보와 순사 그리고 오 R카페 뚱뚱 주인 그리고 과연 양돼지와 같은 범인 (저건 내라도 양돼지라고 자칫 그러기 쉬울 걸) 그리고 난로 앞에 새파랗게 질린 채 쪼그리고 앉아 있는 생쥐만한 아내 ― 그는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이 진기한 ―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콤비네이션을 몇 번이고 두루 살펴보았다. 그는 비칠비칠 그 양돼지 앞으로 가서 그 개기름 흐르는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더니 떠억
『당신입디까.』
『당신입디까.』
아마 안면이 무던히 있나 보다 서로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 속이 ― 그러나 아내야 가만 있자 ― 제발 울음을 그쳐라 어디 이야기나 좀 해보자꾸나. 후 ―한숨을 내쉬고 났더니 멈췄던 취기가 한꺼번에 치밀어 올라오면서 그는 금시로 그 자리에 쓰러질 것 같았다. 와이셔츠 자락이 바지 밖으로 꾀져 나온 이 양돼지에게 말을 건넨다.
『뵈옵기에 퍽 몸이 약하신데요.』
『딴 말씀』
『딴 말씀이라니.』
『딴 말씀이지.』
『딴 말씀이지라니.』
『허 딴 말씀이라니까.』
『허 딴 말씀이라니까 라니.』
그때 참다 못하여 경부보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대가 나미코의 정당한 남편인가. 이름은 무엇인가 직업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질문마다 그저 한없이 공손히 고개를 숙여주었을 뿐이었다. 고개만 그렇게 공연히 숙였다 치켰다 할 것이 아니라 그대는 그래 고소할 터인가 즉 말하자면 이 사람을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는가. 그렇습니다. (당신들 눈에 내가 구더기만큼이나 보이겠소? 이 사람을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까는 내가 모르면 경찰이 알겠거니와 그래 내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말이오?) 지금 내가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까는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되나요. 거기 섰는 오 그리고 내 아내의 주인 나를 위하여 가르쳐 주소, 어떻게 하였으면 좋으리까 눈물이 어느 사이에 뺨을 흐르고 있었다. 술이 점점 더 취하여 들어온다. 그는 이 자리에서 어떻다고 차마 입을 벌릴 정신도 용기도 없었다. 오와 뚱뚱 주인이 그의 어깨를 건드리며 위로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A취인점 전무야. 술 취한 개라니 그렇게만 알게나 그려. 자네도 알다시피 내일 망년회에 전무가 없으면 사장이 없는 것 이상이야. 잘 화해할 수는 없나.』
『화해라니 누구를 위해서』
『친구를 위하여』
『친구라니』
『그럼 우리 점을 위해서』
『자네가 사장인가.』
그때 뚱뚱 주인이
『그럼 당신의 아내를 위하여.』
백 원씩 두 번 얻어 썼다. 남은 것이 백오십 원 ― 잘 알아들었다. 나를 위협하는 모양이구나.
『이건 동화지만 세상에는 어쨌든 이런 일도 있소. 즉 백 원이 석달 만에 꼭 오백 원이 되는 이야긴데 꼭 되었어야 할 오백 원이 그게 넉 달이었기 때문에 감쪽같이 한 푼도 없어져버린 신기한 이야기요. (오야 내가 좀 치사스러우냐) 자 이런 일도 있는데 일개 여급 발길로 차는 것 쯤이야 팥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러나 오야 일없다 일없다) 자 나는 가겠소 왜들 이렇게 성가시게 구느냐, 나는 아무것에도 참견하기 싫다. 이 술을 곱게 삭이고 싶다. 나를 보내주시오 아내를 데리고 가겠소. 그리고는 다 마음대로 하시오.』
밤 ― 홍수가 고갈한 최초의 밤 ― 신기하게도 건조한 밤이었다. 아내야 너는 이 이상 더 야위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명령해 둔다. 그러나 아내는 참새 모양으로 깽깽 신열까지 내어가면서 날이 새도록 앓았다. 그 곁에서 그는 이것은 너무나 염치없이 씨근씨근 쓰러지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안 골던 코까지 골고 ― 아 ― 정말 양돼지는 누구냐. 너무 피곤하였던 것이다. 그냥 기가 막혀 버렸던 것이다.
그동안 ― 긴 시간.
아내는 아침에 나갔다. 사부로가 부르러 왔기 때문이다. 경찰서로 간단다. 그도 오란다. 모든 것이 귀찮았다. 다리 저는 아내를 억지로 내어보내 놓고 그는 인간 세상의 하품을 한번 커다랗게 하였다. 한없이 게으른 것이 역시 제일이구나. 첩첩이 덧문을 닫고 앓는 소리 없는 방안에서 이번에는 정말 ― 제발 될 수 있는 대로 아내는 오래 걸려서 이따가 저녁때나 되거든 돌아왔으면 그리든지 ― 경우에 따라서는 아내가 아주 가버리기를 바라기조차 하였다. 두 다리를 쭉 뻗고 깊이깊이 잠이 좀 들어보고 싶었다.
오후 두 시 ― 십 원 지폐가 두 장이었다. 아내는 그 앞에서 연해 해죽거렸다.
『누가 주더냐.』
『당신 친구 오씨가 줍디다.』
오 오 역시 오로구나.(그게 네 백 원 꿀떡 삼킨 동화의 주인공이다.) 그리운 지난 날의 기억들 변한다. 모든 것이 변한다. 아무리 그가 이 방 덧문을 첩첩 닫고 일년 열 두 달을 수염도 안 깎고 누워 있다 하더라도 세상은 그 잔인한 ‘관계’를 가지고 담벼락을 뚫고 스며든다. 오래간만에 잠다운 잠을 참 한잠 늘어지게 잤다. 머리가 차츰차츰 맑아 들어온다.
『오가 주더라. 그래 뭐라고 그러면서 주더냐.』
『전무가 술이 깨서 참 잘못했다고 사과하더라고.』
『너 대체 어디까지 갔다 왔느냐.』
『조바까지.』
『잘 한다. 그래 그걸 넙죽 받았느냐.』
『안 받으려다가 정 잘못했다고 그러더라니까.』
그럼 오의 돈은 아니다. 전무? 뚱뚱 주인 둘 다 있을 법한 일이다. 아니, 십 원씩 추렴인가, 이런 때에 그의 머리는 맑은가. 그냥 흐려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이 되어버렸으면 작히 좋겠나. 망년회 오후. 고소. 위자료. 구더기.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 아내는. 아프다면서 재재대인다.
『공돈이 생겼으니 써버립시다. 오늘은 안 나갈테야. (멍든 데 고약 사 바를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고) 내일 낮에 치마가 한 감, 저고리가 한 감(뭣이 하나 뭣이 하나) (그래서 십 원은 까불린 다음) 나머지 십 원은 당신 구두 한 켤레 맞춰주기로.』
마음대로 하려무나. 나는 졸립다. 졸려 죽겠다. 코를 풀어버리더라도 내게 의논 마라. 지금쯤 R회관 삼층에 얼마나 장중한 연회가 열렸을 것이며 양돼지 전무는 와이셔츠를 접어넣고 얼마나 점잖을 것인가. 유치장에서 연회로 (공장에서 가정으로) 이십 원짜리 ― 이백여 명 ― 칠면조 ― 햄 ― 소시지 ― 비계 ― 양돼지 ― 일一년 전 이 년 전 십 년 전 ― 수염 ― 냉회와 같은 것 ― 남은 것 ― 뼈다귀 ― 지저분한 자국 ― 과 무엇이 남았느냐 ― 닫은 일 년 동안 ― 산 채 썩어 들어가는 그 앞에 가로놓인 아가리 딱 벌린 일월이었다.
위로가 될 수 있었나 보다. 아내는 혼곤히 잠이 들었다. 전등이 딱들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진종일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이십 원 때문에 그들 부부는 먹어야 산다는 철칙을 ― 그 장중한 법률을 완전히 거역할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 이 기괴망측한 생리현상이 즉 배가 고프다는 상태렷다. 배가 고프다. 한심한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오 네 생활에 내 생활을 비교하여 아니 내 생활에 네 생활을 비교하여 어떤 것이 진정 우수한 것이냐. 아니 어떤 것이 진정 열등한 것이냐. 외투를 걸치고 모자를 얹고 ― 그리고 잊어버리지 않고 그 이십 원을 주머니에 넣고 집 ― 방을 나섰다. 밤은 안개로 하여 흐릿하다. 공기는 제대로 썩어 들어가는지 쉬적지근하다. 또 ― 과연 거미다. (환투) ― 그는 그의 손가락을 코밑에 가져다가 가만히 맡아 보았다. 거미 내음새는 ― 그러나 이십 원을 요모조모 주무르던 그 새금한 지폐 내음새가 참 그윽할 뿐이었다. 요 새금한 내음새 ― 요것 때문에 세상은 가만있지 못하고 생사람을 더러 잡는다 ― 더러가 뭐냐. 얼마나 많이 축을 내나. 가다듬을 수 없는 어지러운 심정이었다. 그거 ― 그렇지 ― 거미는 나밖에 없다. 보아라. 지금이 거미의 끈적끈적한 촉수가 어디로 몰려가고 있나 ― 쪽 소름이 끼치고 식은 땀이 내솟기 시작이다.
노한 촉수 ― 마유미 ― 오의 자신 있는 계집 ― 끄나풀 ― 허전한 것 ― 수단은 없다. 손에 쥐인 이십 원 ― 마유미 ― 십 원은 술 먹고 십 원은 팁으로 주고 그래서 마유미가 응하지 않거든 예이 양돼지라고 그래버리지. 그래도 그만이라면 이십 원은 그냥 날아가 ― 헛되다 ― 그러나 어떠냐. 공돈이 아니냐. 전무는 한번 더 아내를 층계에서 굴러 떨어뜨려 주려무나. 또 이십 원이다. 십 원은 술값 십 원은 팁. 그래도 마유미가 응하지 않거든 양돼지라고 그래 주고. 그래도 그만이면 이십 원은 그냥 뜨는 것이다 부탁이다. 아내야 또 한번 전무 귀에다 대이고 양돼지 그래라. 걷어차거든 두말 말고 층계에서 내려굴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