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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의 맛을 찾아서 (1) 딤섬

식재광주(食在廣州), 오직 먹기만을 고대하고 떠난 광저우 여행

by 제이원

'중국 4대 요리'라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광동 요리사천 요리를 필두로, 북경과 상해 요리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 해외여행이 활발하지 않던 시절 국내에 잘못 퍼진, 중국인들의 평가와는 거리가 먼 분류법이다.


실제 중국인들이 평가하는 8대 요리는 사천, 광동, 복건, 호남, 산동, 강소, 저장, 안휘 요리다. 강소 요리에 속하는 상해야 그렇다 치더라도, 북경 식당을 방문하고선 '중국 요리 대단하다더니, 별 거 없군'이라는 오판을 저지르면 안 되는 이유다. (아, 물론 북경오리는 짱이다)

1-0fe6c8f4.jpg 중국의 8대 요리.

그런 이들에게 광동 요리를 한 번쯤 맛 보라고 권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기술이 탁월한 광동 요리는 정갈하면서도 품격 있다.


흔히 광동 음식을 맛보러 홍콩을 찾지만, 고급 식당이 아닌 이상 홍콩에서 광동의 맛을 그대로 느끼기는 힘들다. 완탕면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서민 음식은 세심함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맛이다.

hkwonton3.jpg 양조위가 좋아한다는, 홍콩 <침차이키>의 완탕면.

그래서 광저우를 찾았다. 넓을 광廣자를 쓰는 중국의 광주나 빛 광光자를 쓰는 우리 광주나 둘 다 미식의 도시라는 점이 흥미롭다.

DSCF0230.JPG 인천공항에선 쉑쉑을 먹었다. 유자바질레몬에이드는 꼭 트라이해 봐야 하는 맛이었다.

이번 편은 가장 널리 알려진 광동요리, 딤섬부터 시작해본다. 딤섬은 한국식으로 읽으면 점심點心이다. 우리가 아는 그 점심 맞다.


마음에 점을 찍듯 가볍게 먹는다는 뜻의 점심은 아마 아침, 점심, 저녁을 고루 챙겨먹던 시대에 나온 말일 테다. 현대인들은 점심도 거하게 먹는 경우가 많다. 반면 근대기 생활상을 다룬 책을 살펴 보면, 아침에 요리를 준비하고 남은 음식을 점심에 다시 먹는다는 말을 찾아볼 수 있다. 식사보단 새참에 가까운 개념인 것이다. 당대인들에게 정오란 하루를 시작하며 힘을 내야 할 상황도, 할 일을 끝내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그런 걸까.


어쨌든 딤섬은, 점심이라는 그 뜻 답게, 가벼운 음식으로서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차와 함께 딤섬 몇 개를 곁들이면 이만큼 정갈한 음식이 또 없다. 광동에서 딤섬을 주문하면 갓 찐 딤섬을 찜기 그대로 대령해 준다. 보통 찜기 안에는 3~4개 정도의 딤섬이 들어 있다.

DSCF0432.JPG 시우마이.

돼지고기의 강렬한 향과 새우의 탱글한 식감이 잘 어울리는 시우마이는 다소 투박한 딤섬이다. 밀가루로 만드는 피는 후술할 하가우나 창펀보다 불투명하며 식감도 더 단단하다.


시우마이는 재료의 러프한 향 때문에 간장을 듬뿍 찍어 먹으야 더 맛있다. 여러모로 차와 잘 어울리는 딤섬이다.

DSCF0434.JPG 하가우.

새우가 든 하가우. 통새우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고, 으깬 새우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후자를 더 선호한다. 후자가 새우에겐 더 최적의 식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집은 통새우였다.

DSCF0428.JPG 부추교자.

흔히 아는 비비고의 맛이다. 다만 부추와 돼지고기가 훨씬 풍성하게 들어 있어 누구나 즐겁게 먹을 맛이다.

DSCF0477.JPG 타로 딤섬.

이 딤섬은 처음 먹어봤다. 타로(토란)를 주재료로 하는 이 딤섬은 율무를 삶은 뒤 튀겨낸다고 한다. 아마 토란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지 않을까? 튀김의 온도를 적절히 조절하면 신기하게도 사진과 같이 구멍이 송송 뚫린 피가 나온다. 피는 카다이프보다 더 가볍고 잘 바스러진다. 크런치한 겉과 부드러운 속이 잘 어우러진다.

DSCF0423.JPG 홍창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딤섬인, 창펀이다. 국내에선 샤오롱바오와 시우마이, 하가우는 찾아볼 수 있어도 창펀까지 하는 집은 찾기 힘들다. 결국 이 딤섬은 나를 기어코 광저우까지 향하게 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샤오롱바오는 상해에서 유래된 음식이며, 광동식 딤섬이 아니다)


쌀가루와 전분가루를 합쳐 만드는 창펀의 식감은 쫀득함의 절정이다. 반죽이 묽은 편이므로 찌고 나면 저항감 없이 흐물거리는 식감이 된다. 그러면서도 쫀득함은 살아 있어 입안을 즐겁게 한다. 사진의 홍창펀과 같이 안에 튀김이 함께 들어 있는 경우 쫀득한 피와 크런치한 튀김속이 어우러져 대단한 하모니를 낸다.

DSCF0447.JPG 창펀은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다. 개인적으로 국물에 들어 있는 창펀을 참 좋아한다.

본인의 경우 창펀은 역시 간장 국물에 말아 먹는 것이 묘미라고 생각한다. 사진을 보면 부드러운 창펀 결 사이로 간장 국물이 침투해 있다. 창펀 밑에는 부추, 새우 등의 소박한 재료들이 숨어 있다.


간장 국물이 짜지 않냐는 의문이 들 수 있겠지만, 노추의 색이 진해서 그런 것일 뿐, 한 입 떠보면 맑은 육수가 배합된 슴슴한 맛이 난다. 광동인들은 간장 베이스 국물을 참 잘 만드는 것 같다.

DSCF0476.JPG 가이란. 이번 여행에서 먹은 최고의 미식 경험 중 하나였다.

간장 국물 이야기가 나온 김에 가이란 얘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야채 요리에도 적절한 간장 국물이 덧대어졌다. 광동인들이 즐겨먹어 어느 딤섬집에 가도 찾아볼 수 있는 이 야채의 이름은 가이란, 영어로는 Chinese Broccoli다.


소금물에 가이란을 2~3분간 데치면 가이란이 먹기 좋은 녹색을 띈다. <흑백요리사> 안성재 셰프가 청경채의 익힘 정도를 중요시 여긴 것처럼, 광동인들의 요리법에서 재료의 익힘 정도는 매우 중요하다. 이 메뉴도 너무 무르지도, 풋내가 나지도 않는 적절한 채소의 익힘 정도를 선보였다.


곁들여진 간장 소스는 채소 자체의 생글생글한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절묘한 간으로 식욕을 돋궈 준다.

DSCF0479.JPG 조금씩, 다양하게 먹자는 광동음식의 모토가 마음에 든다.

이외에도 딤섬의 종류는 수백가지가 넘는다. 개중에는 샥스핀을 사용하는 딤섬도 있다.


딤섬집엔 딤섬 외에도 사진 상단에 나오는 연잎밥이나, 각종 고기요리, 볶음면, 디저트 등 다양한 음식을 판다. 대부분 저렴한 가격에 소량인지라 형편이 충분하지 않아도 자기 나름대로의 코스를 짜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광동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또 하나의 묘미인 듯 하다.

DSCF0610.JPG 돼지 모양의 커스타드 번. 호빵과 같은 피를 한입 베어물면 뜨거운 커스타드 크림이 새어나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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