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칼라파테(El Calafate). 모레노 빙하 지역을 가기 위한 전초 마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행기로 3시간 반이 걸린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느낀 건 '춥다.' 알싸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그래도 비행장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호수를 눈에 담으며 '그래, 이런 새로운 풍경을 보러 여기까지 온 거지'라고 속으로 끄덕였다.
저 멀리 보이는 광활한 호수 아르헨티나 호(Lago Argentina)
공항에서 마을까지는 20~30분 걸리는데 택시는 비싸다고 해서 미리 아침에 예약해둔 베스 파타고니아 셔틀 서비스(Ves Patagonia Shuttle Service) 사무실을 찾아갔다. ARS 300(여행 당시 환율 기준 약 7,500원) 결제. 알고 보니 봉고차 하나를 다 같이 타고 가는 거더라. 미리 예약은 안 해도 충분히 탈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내가 탄 차 자리가 다 찬걸 보니 운이 나쁘면 못 탈 수도.
한국은 봄인데 남미는 고즈넉한 가을
엘 칼라파테 마을로 향하는데 완연한 가을색이 느껴진다. 남미에서 노란 단풍이라니..! 뭔가 남미 하면 푸르른 초록과 새하얀 눈밖에 떠오르지 않았는데 의외의 싱그러움이었다.
내가 고른 숙소 아메리카 델 수르(America del Sur) 호스텔은 시내에서 도보 15분 정도로 거리가 조금 있지만 언덕 위에 있어서 아르헨티나 호(Lago Argentino)가 한눈에 보였다. 노란 은행나무 잎과 어우러진 새파란 호수를 호스텔에서 바로 볼 수 있다니. 하루에 $10 내고 묵기에는 황송하다.
뷰가 너무나 멋진 이 호스텔은 바닥도 따뜻하다
오후 3시 즈음 호스텔 체크인을 하며 직원에게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Torres del Paine) 공원 상황을 물어봤다. 참고로 5/1부터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전초 마을)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까지 버스 운행을 하지 않는다. 비. 수. 기라서! 산장도 5/1부터 모두 문 닫는다. 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라 혼자 걸어서 갈 수도 없다. 휴가를 하루 먼저 쓸걸...이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래도 토레스 델 파이네는 가고 싶다. 내가 생각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1) 4/30 엘 칼라파테에서 출발하는 토레스 델 파이네 1일 투어 후 푸에르토 나탈레스 드랍 -엘 칼라파테와 푸에르토 나탈레스 간 거리는 5시간 반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까지는 6시간 내외 걸리지 않을까 싶다. -칠레 국경을 넘어야 하니 실제 공원 보는 시간은 짧지만 마을 간 이동 문제도 해결하고 내가 차가 없어서 다니지 못할 관광스팟도 한 번에 해결하려는 심보!!!
2) 5/1 삼봉(Base Torres) 당일치기 투어 -이 투어를 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9시간 트렉킹 코스로 파이네 공원의 백미!
자, 그래서 호스텔 직원에게 물어봤다. "4/30 1일 투어 가능한가요?" "지금은 비수기라서 1일 투어가 매일 없어요." 호스텔 직원이 두 군데 전화해봤지만 내 스케줄과 맞는 1일 투어 날짜가 없었다.
이럴 수가... 그럼 4/30 내가 따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버스 타고 가고 오후에는 토레스 델 파이네 공원 구경도 못하고 꼼짝없이 하루를 날리는 셈. 호스텔 직원은 삼봉 투어가 5월에 있는지는 본인이 잘 모르겠단다. 만약 삼봉 투어가 없다면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가는 의미가 없다. 차라리 일정을 확 바꾸어 이과수 폭포나 다녀오는 게 나을 수도 있다. 한정된 일정에 하루 차이가 너무 큰 직장인의 비애.
마음을 접고 엘 칼라파테 마을이나 돌아보고 밥이나 먹자 싶어 짐을 챙겨 나갔다. 빗방울이 살짝 흩날린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투어사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정말로 아. 무. 생. 각. 없. 이. 그런데 토레스 델 파이네 1일 투어 책자가 있네?
찰텐 트레블(Chalten Travel)의산티아고 (Santiago)는 올웨이즈 글레이셔(Always Glaciers)에서 매일 파이네 1일 투어를 한다고 알려줬다. 와!!!!!!! 나 파이네 볼 수 있는 거야? 다만 돌아올 때 푸에르토 나탈레스 드랍이 안된단다. 아마르가 호수에서 내리거나 페오에 호텔(Hosteria Pehoe)에서 숙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페오에 같은 곳은 나도 좋은데 페오에에서 삼봉 당일치기 시작점인 라스 토레스 호텔(Las Torres Hotel)까지 이동할 방법이 없는 상황... 어? 근데 내가 1일 투어 하는 날이 4/30이잖아? 이 날이면 버스 운행할 때인데??? 산티아고에게 잠시 검색 좀 해보겠다고 했다.
버스 고메즈(Bus Gomez)라는 회사에서 저녁 7시 45분 아마르가 호수에서 나탈레스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버스 고메즈에 전화를 해보니 스페인어밖에 못한다고 해서 산티아고가 대신 전화를 넘겨받아 상황 설명을 모두 다해줬다. 실제 버스가 있고, 예약도 가능하단다!!!! 8,000 칠레 페소(약 1.3만 원)로 나탈레스까지의 교통편이 해결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ARS 3,200(약 8만 원) 파이네 당일 투어를 신청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기다려준 친절한 산티아고에게 감사하며! 살짝 아쉬운 건 데이투어는 오후 5시에 끝날 텐데 셔틀은 거의 8시에 있으니 3시간을 기다려야 되는 거? 어쨌든 첫 번째 고민거리가 해결되었으니 기분 좋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투어사 문을 두드린 나를 칭찬하며!
1일 1 소고기 스테이크를 하기로 했으니 트립 어드바이저 상위 레스토랑 카우 칼레센(Kau Kaleshen)을 방문해 립 아이를 시켰다. 마침 이게 사람들이 제일 많이 먹는 거란다. 레드 와인도 글라스가 있길래 한 잔 시켰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방문한 식당보다 서비스가 좋다.
가정식 느낌의 카우 칼레센(Kau Kaleshen) 스테이크 한 끼
빵이랑 곁들인 소스도 맛나다. 캬. 고기는 얼마나 맛있을까. 어제 미디엄 레어를 먹어봤으니 오늘은 레어를 시켰는데 고기 자를 때 피가 뚝뚝. 잘 안 잘린다. 솔직히 고기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아르헨티나 고기가 나랑 잘 안 맞나? 그래도 주인아주머니도 친절하시고 알딸딸한 와인도 좋고.
배불리 단백질 섭취를 끝내고 마을을 더 돌아다녔다. 기념품샵도 가보고 초콜릿 가게도 가보고. 그런데 겨울이고 비수기라서 그런지 닫은 가게가 많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이랑 많이 다르네. 왜 사람들이 파타고니아를 여름에 방문하는지 알겠으면서도 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온 게 어딘가.
저어어엉말 호기심에 다른 투어사들을 들어가 봤다. "토레스 델 파이네 1일 투어 있나요?" 두 군데서 요즘은 아예 운영하지 않는다거나, 일주일에 2~3번만 운영한다고 말했다. 훗 내가 투어사 잘 찾은 거군. 속으로 흐뭇. 그러다가 올웨이즈 글레이셔 여행사 앞을 지나게 되었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본 회사이기도 하고 내가 찰텐 트레블에서 예약한 1일 투어 운영사 이름이기도 했다. '음? 올웨이즈 글레이셔가 여기에 사무실이 있었네? 찰텐 트레블에서 수수료 얼마나 떼먹는지 볼까?'라고 생각하며 투어사를 들어갔다.
"토레스 델 파이네 1일 투어 있나요?" "날짜는?" "4/30요" "가능해" "얼마예요?" "3,200" (찰텐트레블과 동일) "혹시 투어 끝나고 푸에르토 나탈레스 드랍도 가능한가요?" "당연이 되지."
......? 당연히 된다고????! 찰텐 트레블이랑 말이 다르다. 결국 사실대로 내가 예약한 투어 증서를 보여주며 운영사가 너네인데 왜 찰텐 트레블에서는 나탈레스 드랍이 안된다고 하느냐라고 대놓고 물어봤다. 직원은 자기들은 되는데 찰텐은 안되는가 보다라며 이미 찰텐에서 예약했으니 찰텐과 얘기하라고 한다. 운영사가 올웨이즈 글레이셔이니 나탈레스 드랍이 가능하다고 찰텐트레블에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걸어준다. 산티아고 이름 받아두길 잘했지. 찰텐트레블에 다시 가서 사정을 이야기하니 산티아고가 본인이 잘 몰랐다며 시스템상 고칠 수 있는 방법을 들었으니 해주겠단다. 만세!!!!! 3시간 안기다려도 된다!! 예이!! 미리 좀 잘 알고 있지 ㅋㅋㅋ 내 호기심 덕에 시간과 돈 모두 아낀 셈. 5/1 삼봉 투어 가려면 전날 좀 미리 쉬어야 되는데 버스 고메즈 운행시간이 너무 늦은 게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이제 모두 해결!!!!
다행스럽게 5/1 삼봉 당일 투어도 나탈레스의 푸마 하우스(Puma House) 호스텔에서 예약 가능하다고 메일 답장이 왔다. 예스!!! 두 가지 고민거리 모두 해결. 파이네 들렸다가 엘 찰텐의 피츠로이까지 트레킹 할 시간이 난다. 와!! 비수기 트레킹 정보가 너무 적었는데 어찌어찌 잘 해결해서 뿌듯!! 이제 내 체력만 받쳐주면 되겠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