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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Sep 27. 2021

남산이 보이는 집

집 계약을 한 번 더 연장했다.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하고 안방 벽은 삐뚤어져 있고 스파티필름의 늘어진 잎을 툭툭 치면서 걷게 되는 좁은 집이지만, 거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통창만은 마음에 든다.


서귀포에서 3년을 살고 파도에 휩쓸리듯 서울로 올라왔을 때, 창문 밖 우사단로 풍경과 이슬람 사원을 눈에 새기는 것으로 현실감을 되찾곤 했다. 집에 있는 날이면 통창 앞 긴 소파에 누워 남산과 그 위의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남동 지리부터 익히며 시작된 일련의 일들 사이에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불쑥 피었다 졌다. 마음이 몽실몽실 들뜬 날은 구름 위에 머리를 띄우고, 축축하게 젖은 날은 남산타워 끝 뾰족한 첨탑에 생각을 걸어 말렸다. 넘실거리는 남산 능선을 눈으로 따라잡다 보면 가만히 누워서도 산 위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고민과 상념이 많은 밤이면 불 켜진 호텔 창문의 개수를 하나 둘 세어보곤 했다.


집의 덕목으로 '뷰'를 꼽아본 적은 없었는데, 서귀포에서 창문 밖 한 뼘의 바다와 묵직한 산방산을 가지게 된 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 집에서 창문 밖 풍경이 집의 일부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집은 나의 모든 감정을 알고 있는 곳이다. 밖에서 내 감정을 앞세우지 않기 위해 감추고 다듬고 정돈하던 노력도 집에서만큼은 느슨하게 해이해진다. 피어오르는 감정을 맘껏 음미하고 씹어보며 꿀꺽 삼켜 소화를 기다린다. 터져 나오는 웃음과 깊은 한숨과 엉엉 우는 소리를 집은 듣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창문이 있다. 마음의 그릇이 넘치는 감정을 담아내지 못할 때 노을이 물드는 하늘에 몇 개의 감정을 내맡긴다. 구름이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 천천히 생각을 흘려보낸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여름의 시작과 무르익은 농도, 여름이 지나가는 냄새와 가을의 공기가 옅게 퍼지는 순간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계절 속에 사는 사람임을 깨닫는다. 내 몸이 계절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영원한 건 어디에도 없고 모든 상황과 시간은 변화할 뿐이라는 것을. 자연 속에 살고 있는, 그 일부인 존재의 숙명으로 오직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창문이 말해준다. 남산과 그 하늘에 마음을 위탁하며 산 1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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