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13살, 퀴퀴한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운다.
오늘은 석 달만에 나주 영산포 낡은 집에 내려온 날이다. 시골 깡촌 가난한 집의 장녀에겐 아이로 있을 시간이 길게 주어지지 않아, 여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밥벌이의 의무를 짊어졌다. 서울로 상경해 식모살이를 하는 것으로 한 달에 2천 원을 벌었다. 쌀밥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어느 제삿날 보리밥 위에 엄마가 얹어준 쌀밥 한 숟갈이 벌레인 줄 알고 다 버렸던 여자. 배가 고프면 엄마 몰래 설탕을 훔쳐 먹고 들판에 핀 꽃과 식물의 단맛을 모조리 외웠던 여자. 3달을 꼬박 일해 6천 원이 모였을 때, 엄마품이 그리워 기차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다. 입을 하나라도 줄여야 했던 집에서는 그새를 못 참고 내려왔냐며 타박하는 말이 돌아왔다. 하룻밤 새우잠을 잔 13살 여자가 이를 악물고 집을 나섰다.
낮에는 미용실 시다 일을 하고, 밤이면 가게 구석 커튼 뒤에 누워 잠을 청하기를 3년, 사장의 등살을 견디지 못하고 취직한 곳은 기모노의 오비를 짜서 수출하는 공장이었다. 청운동에서 성내동 공장으로 취직을 하러 가던 날, 인천에서 일하고 있던 고향 친구가 일부러 마중을 나와 성내시장에서 이불 한 채를 사줬다. 여자와 친구 나이 17살이었다.
오비 한 필을 짜면 버는 돈은 4만 5천 원. 손이 빠른 여자가 한 달에 세 필을 짜는 동안, 같이 취직한 한 친구는 한 필을 겨우 완성하고 월말이면 늘 돈이 부족해 울었다. 큰 부지 안에 기숙사까지 딸려있는 공장에서 여자와 비슷한 직원 200명이 숙식을 같이 했다.
21살이 되었을 때, 발 넓은 공장 친구의 주선으로 태어나 처음 미팅 자리에 나갔다. 여자 네 명이 각자의 예명을 적은 종이를 접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모두가 본명보다는 예명을 즐겨 쓰던 시절이었다. 여자의 예명은 '아야'. 그리고 한 남자가 그 종이를 집었다.
4년을 연애하고 둘은 결혼했다. 1년 후, 첫 딸이 태어났다. 다시 2년 후,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4년 후, 남자가 죽었다. 여자 나이 31살이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남자의 유품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남자에게 갚지 않은 빚이 있다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갑자기 떠맡겨진 빚과 6살, 4살 배기 두 아이를 책임지기 위해 여자는 남대문 새벽시장에서 아침까지 옷을 팔고, 퇴근 후에는 부업으로 요구르트를 배달했다. 팔다 남은 요구르트는 여자 집 냉장고에 들어갔다. 단칸방 가득 요구르트 단내가 폴폴 풍기는 몇 년이었다.
31살이던 여자가 40살이 될 때까지 딸은 아팠고, 아들은 어렸다.
40살이던 여자가 48살이 되었을 때, 절절 아프던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갔다.
48살이던 여자가 56살이 되었을 때, 딸과 아들이 같은 해에 연달아 결혼했다.
58살, 여자가 암에 걸렸다. 여자의 인생에 암이 기다리고 있을 줄, 여자는 물론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방사선 치료를 35번 끝내고 나니 식도가 불에 탄 듯 너덜너덜해졌다. 다시 음식을 삼킬 수 있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59살이 되던 해, 여자는 중학교에 입학한다. 아픈 목에 스카프를 꼼꼼히 두르고 매일 아침 학교에 갔다. 여자처럼 공부의 기회를 얻지 못한 여자들이 한데 모인 학교였다. 예순을 앞둔 여자가 제일 어려 학급의 막내를 담당했다. 70, 80을 넘긴 여자들이 흐린 눈으로 교과서를 뒤적이고, 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칠판 필기를 부지런히 받아 적는다. 입학 면담에서 한 달에 경조사가 몇 번 있는지를 확인하는 학교. 체육 시간에 줄넘기를 할 때면 트로트를 틀어주는 학교. 10번을 알려주면 11번 까먹는 학생들에게 12번째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는 학교.
여자는 지독할 정도로 열심을 냈다. 곱셈과 나눗셈이 아는 산수의 전부이던 사람이 인수분해를 배우고, 수십 권의 공책에 한자를 쓰며 외웠다. 해마다 우수상을 받고,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응모했다. 양희은의 여성시대에서 여자의 사연이 읽힌 날, 여자는 익숙한 목소리가 불러주는 자기 이름을 들으며 라디오 앞에서 눈물을 찍어냈다.
2년을 꼬박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여자가 중학교를 졸업한다. 그래도 여자가 고등학교까지 가는 건 솔직히 너무 어려운 일일 거라고 여자의 딸은 생각했다. 여자가 하는 공부의 효용이 제일 의심됐다. 60살에 여자가 배운 영어와 지구과학이 여자의 인생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여자가 외운 수백 개의 사자성어를 어디에 쓸까? 여자가 공부를 통해 이룰 성취보다는 공부가 줄 수 있는 위안과 소일거리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다. 안부를 물으면 매일 공부 때문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고 하는 여자에게 "그러니까 쉬엄쉬엄 좀 해 엄마. 즐거우려고 배우는 거잖아." 깊은 고민 없이 쉬운 대꾸를 했다.
어느 날, 여자의 딸과 지하철에서 만나기로 한 날. 여자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입으로 되뇌며 플랫폼에 서있다. 그리고 2-3번 칸에서 딸을 만났을 때. 여자가 씩 웃으며 딸의 귓가에 속삭였다. "롱 타임 노 씨."
효용을 묻는 딸의 질문에 여자가 얼굴에서 빛을 내며 답한다. "나는 살면서 지금이 제일 행복해. 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위해 사는 것 같아.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짜릿해. 오늘도 학교에 갈 수 있어서 기뻐."
그리고 2021년의 마지막 달, 여자가 고등학교 합격 문자를 받아냈다. 61살이 되는 해에 여자는 고등학생이 될 것이다.
당신과 내가 60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어떤 시작의 기록을 쓸 수 있을까? 적어도 '너무 어려운 일'에 대한 기준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 세울 수 있다는 것. 세상이 정해주는 역할과 세상이 말하는 타이밍은 나 개인의 역사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 60살에 인생을 다시 쓸 수 있다면,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과 나 역시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여자가 알려준다. 61살에 고등학생이 된 여자가 71살에는 중학교 교단에 서 있는 모습이 이제는 내 눈에도 선명하게 보인다. 여자는 누구에게도 능력과 가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쓰고 싶은 인생의 기록을 온몸으로 써낼 뿐이다. 나를 낳은 여자가 저기 앞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