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잎새 Feb 11. 2022

ESTJ가 ENFP랑 동업한 썰 푼다 (3)

<2편 요약>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라는 ENFP와
결혼도 하고 동업도 해버린 ESTJ
밤낮으로 울면서 MBTI를 파기 시작했더니
남편이 칭찬해주면
해골물도 마실 인간이라는 걸 발견하는데...


호기심천국인 댕댕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음

관심 있는 게 20개니까 하루에 1개씩만 돌려도

한 바퀴 도는데 20일이 걸림

그러니까 마감을 못 끝내는 거임 ^^


대신 댕댕이는 좋아하는 무언가에 꽂히면

불꽃같은 열정을 발휘함

댕댕이의 꽂히는 힘과 순간 화력은 무시무시함

내가 봤을 때 ESTJ는 내지 못하는 종류의 화력임

아이디어가 샘솟고 일을 진행하는 내내 결과에 대해 희망적으로 생각함

같이 일하는 동료를 끊임없이 격려하고

A부터 Z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즐김


댕댕이에 반해 나는 원칙주의자에

일할 때 건드리면 무는 개라는 걸 알게 됨

회사에서 가장 화나 있는 사람이 ESTJ고

일이 진행되는 것만 중요한 이 구역의 미친 사람임

댕댕이처럼 꽂혀서 내는 힘은 없음

일은 뭐에 꽂혀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고

일을 잘하는 거 자체가 내 원동력임

결국 둘을 행동하게 하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달랐던 거임


그래서 내 종특과 선호의 종특을 이해하고 났더니

일의 방식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함

나는 일에 쉽게 매몰되는 스스로를 자각하고

중간중간 숨 돌리는 타이밍을 일부러 챙김

그리고 강박적인 일정 조율과

성과 도출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게 됨

직장인이었을 때는 그게 최우선 과제였던 적도 있지만

지금 선호와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그런 식의 접근은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음

 

선호도 J가 짜놓은 판 위에서 하는

자유로운 일처리가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걸 알게됨

그렇게 굴러가는 일의 재미를 알게 되니까

전보다 J의 칭찬이나 리액션이 중요해지지 않음

수용소에 갇힌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셀프 철창이었던 거임

J의 의견을 벗어나 일 전체를 바라보게 되면서

철창 밖에 도시가 있고 돌 틈 꽃 말고도 공원을 통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됨


무엇보다 같이 동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의 장점을 ‘이용’해서

‘협력’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게 됨


ENFP가 창의력과 화력을 이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던지고 판을 깔면
→ ESTJ가 큰 줄기를 잡고 전체 그림을 보면서 실무를 빠르게 처리한다
→ ENFP가 일의 디테일을 정교하게 만든다
→ ESTJ가 과정을 컨펌하며 실행력을 높인다


데드라인까지 어떻게든 일을 끌고 가는 건 ESTJ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지루함을 잘 느끼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적으로만 일을 바라봐서

상상력을 이용해서 상황을 극적으로 개선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던지는 건 못함


ENFP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고 계속 자극을 원해서

현재 상황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과

바꿔야 하는 부분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없던 아이디어를 0부터 만들어냄

그리고 개선은 그래야 이루어짐


그래서 큰 줄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한 나와

디테일과 시스템을 최적화시키는 게 중요한 선호의

특성을 지그재그로 주고받기 시작함


호기심과 열정으로 선호가 판을 깔면

내가 우선순위에 따라 일정과 관계자들을 배치하고

선호가 업무의 미세한 부분을 고치면서

'쾌적하고 미관적으로 아름다운 상태'를 만드는 동안

내가 중간 과정을 계속 컨펌하면서 다음 일을 보내고

전체 흐름과 최종 목적을 챙김

그러다 선호가 디테일에 집착한다 싶으면

뒤에서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등을 떠밀고

선호는 내가 머리를 싸매면서 고민의 늪에 빠지면

산책을 가자고 끌고 나오는 방식이 자리 잡음

이랬더니 분업과 협업의 톱니바퀴가 드디어 굴러가기 시작했음


그리고 가만히 서로를 관찰해보니

각자 남한테 나눠주고도 남을만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음

선호는 우리가 동업을 시작한 이후로

우주의 기운을 받는 긍정맨이 되어서

긍정이 많다 못해 길에서 팔아도 될 지경임

나도 목표가 정해졌을 때 앞뒤 상황을 조율하면서

따박따박 실무를 쳐내는 일만큼은 20개도 할 수 있음


그래서 서로의 남아도는 힘에 빨대를 꽂아보기로 함

나는 현실직시적인 성향이라

늘 고민이 많고 쉽게 진지해지는데,

없는 긍정과 낙관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보다 댕댕이에게 긍정을 위탁하는 게 빠르겠다는 결론에 닿음

댕댕이도 나의 추진력과 가혹함에 자아를 일정 부분 맡겨보기로 함

왜냐면 혼자 해서는 작심삼일의 프로젝트가 20개 동시 진행되다가 모두가 열린 결말로 끝나기 때문임


그렇게 어찌어찌 결혼과 동업이 동시 종료되는 위기를 넘김


그래서 MBTI로 인간을 어떻게 다 해석하며

16개로 분류하는 게 말이 되냐는 의견도 분명 맞지만

나는 이렇게 나와 상대를 일정 부분 프레임화 하는 게 위기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

싸움이 반복되고 실망과 화가 쌓여갈수록

상대방이 지구에 처음 도착한 해파리 괴물인 것 같고

대체 정체가 뭔지 모르겠고

내가 아는 인간의 공식과 맞지 않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저런 성향의 사람이 있고

나는 또 이런 성향의 사람이라는 걸

추상적인 개념이 아닌

프레임화 된 공식처럼 받아들이니까

형태를 알 수 없던 해파리 괴물도

수학처럼 답이 있는 문제였고, 우리가 인간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김

사랑을 전제로 합의된 이 관계가 동료로서는 어떻게 맞춰가면 좋을지 구체적인 방법이 찾아지기 시작함


그리고 심지어 이제는 둘이 이토록 다른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듬

나 같은 인간만 두 명 있으면

그 회사 이름은 ‘분노와 완전연소’로 지어야 할 거임

그런 회사에 누가 다니고 싶겠음…? 나도 싫음…

댕댕이가 있어야 완전연소 전에

농담도 하고 비전도 세우면서 불도 끌 수 있음


우리 둘 다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서

일하는 방식과 시스템을 찾아가는 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전에는 부정적으로만 보였던 상대방의 특성이

이제는 서로가 빨대 꽂을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음


여기까지가 부부 둘이 동업했다가

일도 사랑도 조기 종영할 뻔했다가

MBTI로 극복한 썰이었음


관계와 일이 동시에 휘청하는 시간이었지만

쟤의 장점을 어떻게 이용할까! 시선을 돌려보는 노력으로 조금씩 방법이 찾아졌으니

지금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3편에 걸친 썰을 풀어보았음!!!


최악 궁합 극복 썰 끝!

작가의 이전글 ESTJ가 ENFP랑 동업한 썰 푼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