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사람 만나는 일이 어려웠다. 마음을 휘휘 저어 보면 ‘근황을 업데이트하기가 귀찮다/싫다’ 정도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보통 만나자는 약속을 잘 거절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이 있는 자리도 어려워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나중에 보자'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이런 기분은 ‘우울’에 가까운가 싶어 조심스러웠다가, 천천히 시간을 가지다 보니 지금은 언제 사람을 만나고, 언제 말을 하고, 언제 말을 하지 않아도 좋은지에 대해 주체적으로 배우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내향형이라 일컫는 친구를 둘 만나 이 얘기를 했더니, 너는 그걸 이제야 알았냐며 웃음을 깔깔 터트리는 게 아닌가.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만나자는 약속들을 한참 미루다가 너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나왔다는 말에 H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넌 기본적으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그걸 이제야 겪는구나? 나는 에너지가 되게 한정적이니까 언제 사람을 만날지 항상 고민하는데. 내가 만날 수 있는 타이밍이 있어서 그때가 아니면 만나기가 싫어."
그 말을 들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나는 누가 만나자고 하면 다 만나야 하는 줄 알았어!"
우리는 자고로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사회적 합의를 본 게 아니었던가. 만나자는 말에 ‘어 그래 한 번 봐야지.’ 하고 정작 약속은 잡지 않는 관계를 허무한 것으로 정의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제 보니 만나자는 제안에 “지금은 내 상황이 이러하니, 조금 마음이 나아지면 (또는 상황이 정리되면) 그때 보자."라고 사정을 설명하는 옵션이 하나 더 있는 것이었다.
이 날은 내가 만나자고 청했던 약속을 H가 몇 번 고사하다가 드디어 만난 날이었는데, 그 약속을 고사하는 말들은 명확한 설명을 수반했다. 여러 일들이 있었고 아직 친구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설명과 함께 이렇게 솔직하게 말해도 너는 이해해줄 사람이라는 걸 안다는 말이 보태졌다.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나자고 해줘서 고맙다는 말. 누군가 만날 준비가 된다면 네가 1순위인 것을 알아달라는 말. 처음 H가 저 말들로 약속을 거절하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당혹스러운 마음은 당연히 한 톨도 없었다. 내가 H에게서 배운 대로 상황을 설명했을 때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다른 내향형에 가까운 친구 S는 내가 더듬더듬 이어가는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말했다.
"일부러 다 설명하지 않아도 돼.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 듣지 않아도 돼. 사건이나 사연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래서 네가 그 일에서 무슨 생각을 했고,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그냥 그것만 조금 전해 들으면 돼. 나는 우리가 얼굴을 보고, 지금의 기분만 나누고, 내내 침묵하다가 그렇게 헤어져도 좋아."
이번에도 나는 커진 눈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만나면 당연히 근황을 다 설명해야 하는 줄 알았어!"
S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안 해도 돼!"
여전히 놀란 내가 물었다. "그런데 아무 말도 안 하고 듣기만 할 수는 없잖아. 만났는데 얘기를 별로 안 하면 그건 실례 아니야?"
"아니 전혀? 그냥 얼굴만 보는 걸로 충분하잖아. 커피만 마시고 앉아있다가 헤어져도 되잖아."
과연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나 역시 친구를 만났을 때 굳이 모든 설명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듣고 싶은 건 친구의 웃음소리지, 그간 일어난 사건과 사고의 세세한 경위가 아니었다. 또 보고 싶은 건 친구의 얼굴이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연대별 도표가 아니었다. 만나서 커피만 마시고 헤어져도 당연히 충분했다. 누구 하나 강요한 사람도 없는데 왜 다 만나야 하고, 다 설명해야 하는 줄 알았을까. 그런 무리하는 마음은 나 역시 바라지도 않는데.
그래서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던 것을 뒤늦게 연습한다. 에너지의 총량을 신중히 생각하며 공력을 쌓았다가, 터트려야 할 때를 알고 정확히 터트리는 내향형 친구들이 도인처럼 느껴졌다. 누가 그들을 낯가리는 내성적인 사람이라 하는가. 그들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외향형을 유연함으로 보듬는 재야의 오은영 선생님이다. 그러니 금쪽이들은 들으라. 선생님 가라사대, 에너지는 아껴 쓰는 것이며 말보다 중요한 것은 친밀한 마음이라 했다. 옆에 있는 오은영 선생님 덕분에 에너지의 총량을 소중히 재어본다. 무리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몸 안에 가득 차는 때가 올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