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와 커리어가 동기화된 이후, 인생 계획이 6개월 단위로 짧아졌다. 둘 중 아무도 노년을 계획하지 않고, 5년 후는 커녕 3년 후의 커리어도 장담하지 못한다. 재밌는 점은 이런 6개월 단위의 행동이 인생을 위태롭게 살고 있는 증거냐 하면 그렇지 않고, 현재만을 즐기는 욜로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거다.
살면서 가장 진지하게 나라는 사람과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고민하는 시기이기에 역설적으로 미래의 어떤 것도 장담하지 않게 됐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답은 하나다. 현재의 나로 출발하는 가능성이 셀 수 없이 많은 갈래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오늘이 인생의 최고조이지만, 이것 역시 과정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방향성은 이어지고 어떤 내가 되든 선택과 결과는 오롯이 내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2022년을 사는 나는 2025년의 유잎새를 미리 정해놓을 권리가 없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쓸데없는 고민 없이 2022년을 충실히 살아내면 3년 더 나이를 먹고 지금보다 현명해진 유잎새가 또 자기분의 인생을 맘껏 살아낼 테다. 내가 이렇게 사는 만큼 선호도 2022년 7월의 이선호만 살아내고 있어서, 비빌 언덕도 없이 아무도 커리어를 장담하지 않는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게 되는 건지 일종의 실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년째 굶어 죽지는 않았으니 별 일이 없는 한 남은 6개월도 무사히 살아내겠지.
미래를 장담하지 않는 덕에, 오늘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하루를 산다. 오늘 누린 자유만큼 내 몫의 책임을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