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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Nov 04. 2022

그냥 이렇게도 살아진다는 걸 배우기

Building in Public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 날이었다. '쉼'에 대한 철학을 다채롭게 풀어내는 식스티세컨즈가 서울숲 한복판에 매트리스를 깔아 플레이존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떠날 줄 모르는 매트리스 정글짐 앞에서 한정님을 만났다. 온라인으로 만난 한정님과 얼굴을 처음 마주하는 날이었다. 이제 대부분의 친구는 온라인에서 출발해 생활과 철학을 실컷 공유하는 통에 실제로 만난 횟수와 상관없는 친밀감이 쌓여있다. 그날도 우리가 정말 초면이 맞는지 몇 번이나 되묻는 인사가 이어졌다. 어떻게 지내세요, 묻는 질문에 "저희 둘 다 놀아요. 갭이어를 가지고 있어요." 웃음 섞인 대답을 했다. 대답을 들은 사람은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아,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12년 전 갭이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전 그때 이후로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됐거든요."


한정님은 12년 전의 갭이어가 마치 작년에 있었던 일인 듯 선명한 표정으로 회상했다. 자의와 타의가 섞여들며 결과적으로 갭이어가 된 그 시간을 거치면서, 소속이 없어도 사람은 살아진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출근을 하지 않으니 두 벌의 옷만 가지고도 한 철이 살아진다. 돈을 그렇게 쓰지 않아도 생활이 이어진다. 가치관을 전환시킨 그 갭이어는 결국 '그냥 그렇게도 살아진다는 걸' 깨닫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북적이는 숲 한가운데에 선 대화가 이런 말들로 이어질 줄 몰랐다. 12년 전의 갭이어를 회상하는 저 말들은 미래의 내가 선언하고 싶은 말이다. 이 시간이 지난 뒤, 반드시 나의 것이 되어야 하는 말이다. “한정님, 혹시 지금 갭이어 중이신 거 아니에요…? 저랑 생각의 흐름이 똑같으세요. 그리고 지금 얼굴이 상당히 편해 보여요, 한창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는 안 보여요.” 농담 섞인 진심이 줄줄 나왔다.


2020년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공동창업자였던 남편과 나는 돈에 절절매는 가난뱅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도 모르고, 돈을 쓰는 법도 모르고 특히 '돈을 투자'해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직장인의 옷을 벗고 사업판에 뛰어들자마자, 이렇게 절약만을 유지하며 돈의 많고 적음에 휘둘려서는 이 일에 전념할 수 없을 거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돈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그렇지만 돈 쓰는 일이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이 어떻게 돈을 다룰 수 있을까. 돈을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돈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쓰는 법을 배우면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저금을 하지 않는다. 번 돈을 다 쓴다'는 대원칙이 세워졌다. 그때의 우리로서는 사업을 결정한 것만큼이나 대담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돈이라는 게 참 신기해서, 쓸 줄 모르던 사람도 쓰기 시작했더니 얼마든지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절약밖에 모르던 집에서 생활비의 규모가 순식간에 2배로 늘어나더니, 고삐를 잡지 않은 달에는 3배 4배까지도 넘어갈 조짐을 보였다.


우리의 사업 아이템은 실내체육시설이었던지라, 코로나의 타격을 직격으로 받으면서 영업시간이 짧아지고 40일이 넘게 문을 닫는 시간도 있었다. 매출이 도무지 일어나지 않아 몇 달째 이어지는 적자를 보며, 월급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두 사람이 9개월 동안 무급인 상태로 일하면서도 생활비의 규모는 일부러 줄이지 않았다. 저금을 태우면서 저번 달에 쓰던 만큼 쓰는 것. 그렇게 규모를 키우고 돈을 겁내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했다.


그 나름의 투자는 가장 필요했던 효과를 발휘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돈이 무섭지 않아 진 것이다. 그전까지 나에게 돈이란 어디에 쓸 줄도 모르면서 일단 아껴야 하고, 저축해야 하고, 목적이 없어도 모아둬야 하는 것, 없어지면 큰일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돈을 불에 태우듯 써보니 돈은 목적이 아닌 도구라는 걸 실감했다. 돈은 나를 교육시키기 위해 있는 도구다. 나를 먹이고 재우기 위해 쓰는 수단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사용된다. 돈은 내 상사가 아니고, 그 자체로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이 지극히 당연한 결론들을 돈을 태워보고야 배웠다. 이제는 도구라는 걸 아는 돈이 다 타서 잔고가 0에 가까워지자 나오는 결론은 자연스러웠다. 돈이 없으면, 돈을 벌면 된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남편과 동시에 갭이어에 들어가는 결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결정을 하려면 모아놓은 곳간의 규모를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통장 여기저기에 쪼개져 있는 0들을 박박 긁어 늘어놓고, 평소의 생활비로 나눈다. 거기서 나온 값이 내가 갭이어로 가용할 수 있는 개월 수였다. 숫자는 열 손가락 안에 쉽게 들어왔다. 이제 허리띠를 동여매는 정도까지는 아니되, 적어도 옷이 7벌 필요한 사람에서 2벌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정도로 줄여본다. 값으로 떨어지는 숫자가 커졌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다. 한 끼의 근사한 식사가 아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 생활의 규모를 줄이자는 결정이 섰다. 돈을 못 벌어서 규모를 줄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해 규모를 줄인다고 생각하자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돈을 쓰는 일은 일종의 게임이 되었다. 지출을 줄인 만큼 하루가 더 늘어난다. 냉장고를 털어 한 끼를 알차게 먹으면, 그 한 끼만큼 시간의 통장에 저축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이 규모의 축소에 아직 궁상맞은 면은 보이지 않는다. 때때로 궁상맞지만 재미의 일환으로 생각된다. 그 모든 재화가 시간, 내가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상되기 때문이다.


그날 만난 12년 전 갭이어의 사람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다 이렇게 살려고 돈을 버는 건데. 돈을 벌면서도 갭이어의 마음을 가지려는 건데. 벌어도 벌지 않아도 살아지려고 하는 건데, 그렇게 못 살 거면 돈을 버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요."

12년 전 그 시점에서 이 마음을 깨달았기에 다시 일에 복귀해도 다르게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식스티세컨즈라는 브랜드가 말하는 '쉼'은 말로만 남지 않았다. 만든 사람이 느껴본 일이기에 '좋은 쉼의 가치를 파는' 일이 더 풍성하게 풀렸다.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재화와 바꾼 시간을 가지고 나도 비슷한 결론에 닿고 싶다. 쓰면 물론 살아지지만 쓰지 않아도 살아진다는 걸 알고 싶다. 내가 원하는 소비의 크기와 질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싶다. 그리고 그 기준이 나의 본질에 맞춰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는지, 사회와 남의 이목이 결정해준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싶다. 가지지 않아도 살아진다면, 내가 진정 가지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써야 할 것 같은 소비가 아닌, 쓰고 싶은 소비. 돈을 써서 채우는 시간이 아닌, 개인의 안팎을 다지는 활동으로 시간을 채우고 싶다. 나는 오래지 않아 다시 돈을 벌러 나가겠지만, 벌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도구로서의 돈을 벌고 싶다. 그냥 이렇게도 살아지기에, 내가 살고 싶은 생활의 규모와 형태를 자발적으로 결정한다.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의 어느 층위에 닿고 싶은가. 그곳은 얼마만큼의 돈을 필요로 하는가. 그 소비는 나에게 자연스러운가. 나는 그것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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