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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Nov 29. 2022

성공한 이야기는 지루해

얼마  <부자의 그릇> 읽고 속으로 깔깔 웃은 대목이 있다. 제목에서   있듯이,  책은 ‘ 기본 속성과  속성에 대한 접근법을 입말처럼 쉬운 글로 풀어낸다. 크게 망한 사업 탓에 자판기 음료 하나  돈이 없는 젊은 사업가 앞에  노인  명이 나타나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남자가 풀어내는 사연을 들으며 엉뚱한 듯 진지한 조언을 이어가던 노인이 어떤 부분에 가서는 처음으로 집중력을 놓치고 깜짝 졸기까지 한다.  대목을 그대로 옮겨본다.


“아, 미안. 깜빡 졸았네.”

“네?”

“나이가 들면 성공한 이야기는 지루해서…”


짧은 저 한마디가 담고 있는 통렬함에 웃음이 씩 지어졌다. 그 밤, 은인 같은 노인을 만나 돈의 본질을 깨닫게 된 주인공은 큰돈을 쥐게 되었을까? 이 책은 가게 하나를 착실하게 운영해 근방의 명물이 되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극적인 해피엔딩이 아닌 부지런한 일상의 시작이다. 성공한 이야기는 지루하다고 말하는 글을 읽으니, 망한 이야기를 더 많이 보고 싶어 졌다.


망하고 망하다가 끝내 성공한 이야기 말고, 아직 망함 진행 중인 이야기. 망해도 죽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이야기. 여전히 사는 일에 재미를 느끼는 이야기. 성공한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는, 자기만의 밀도로 행복을 소유한 이야기. 안으로 단단히 여물어가는 이야기.


망한 사람. 실패하고 있는 사람. 한 줄의 깔끔한 명함을 가지지 못한 사람. 빛나는 경력이 없는 사람. 프로필을 채우려면 구구절절해지는 사람. 알려지지 않은 사람. 무명의 사람. 이름 붙여지지 않은 지혜. 이름 붙여지지 않은 경험. 이름 붙여지지 않은 노력. 구질구질해 보이는 하루와 다시 힘을 내는 하루를 반복하는 사람.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한 이야기. 깨지고 깨지고 벗겨진 이야기. 남의 말, 남의 조언, 남의 방법으로 고민하다, 내 안에 든 것을 천천히 길어 올리는 이야기. 어제보다 딱 반 발자국 앞으로 걷는 이야기. 그 모든 망하고 깨지고 실패한 가운데 여전히 사는 게 재밌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더, 더 크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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