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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Apr 26. 2020

엄마는 중학생

격리 시대의 온라인 학생

올해부터 중학생이 된 엄마도 온라인 개강을 시작했다. 평균 연령이 68세쯤 되는 학교에서 온라인 개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모든 학생의 핸드폰 기종을 조사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학생에게는 카톡으로 그 날의 수업내용을 보내주고, 2G 폰을 사용하는 학생에게는 문자로 연락이 간다. 한 장 짜리 학습내용을 보고 각자 집에서 그 날의 분량을 소화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아들딸의 도움을 받거나 선생님이 함께 있는 단톡방에 질문을 한다. 삼십여 명이 넘게 들어있는 단톡방이니 모두가 한 마디씩만 해도 서른 마디라,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되도록 대답은 하지 말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만 질문하며 꼭 필요한 말만 하시라 요청했다는데, 엄마는 선생님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네 선생님~~, 알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출석했습니다 선생님~~ 같은 말들이 우후죽순 올라온다며 한심해했다. 우리 엄마는 대답하고 싶은 순간에 꾹 참으며, 공과사를 가릴 줄 아는 훌륭한 학생. 이 정도면 반장감이 아닌지 학부모는 학교의 반장 시스템에 자꾸만 참견하고 싶어 진다. 


얼마 전에는 "잎새야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문자가 왔다. 그 날의 학습목표는 소인수분해. 개념 알기에 <소인수분해는 어떻게 할까?>라고 쓰여있었다. 인수도 소인수도 소인수분해도 너무 오랜만에 보는 단어들이라, 내 머리에도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게, 소인수분해는... 어떻게 하지...? 


학교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내가 아직도 뚜렷이 기억하는 순간이 있는데, 때는 바야흐로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개학 후 첫 번째 수학 시간. 선생님은 인수분해인가의 개념을 처음으로 설명하셨고, 나는 뇌리에 스치는 영감이랄까 예지의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 나는 이대로 수학을 놓겠구나...' 예지는 정확히 들어맞아 나는 그렇게 수학을 놨고, 그 뒤로 잡은 적이 없다. 그런데 그 예언의 날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학부모의 입장으로 수학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놓게만 하고 뒷수습은 해주지 않은 예지의 소리를 원망하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중학교 1학년 수학을 마주했다. 흔들리는 동공을 바로잡으며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아직 1학년 내용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전화기를 붙잡고 30분 동안 소인수분해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는 아~~ 이제 조금 알겠다. 그런데 전화 끊으면 또 까먹을 거 같아. 라고 우는 소리를 했다. 중학교 3학년 내용까지 엄마를 가르쳐주려면 지금부터라도 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할까. 나는 서점의 문제집 코너에서 진지하게 고민한다. 


엄마가 중학교 입학원서를 내고 왔던 날.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서 신청비 3400원만 낼 뿐이었다며, 2년간의 교육과 책값까지 모두 공짜라고 엄마는 자랑하듯 말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고등교육 의무화라는 뉴스를 보고 엄청 신이 났는데, 엄마가 다닐 수 있는 학교에는 아직 적용이 안 된다고 한다. 일단 중학교 수업을 열심히 받아보기로 했다. 


그 날 엄마는 입학원서만 접수하고 집에 올 줄 알았는데, 3400원을 접수해주신 선생님이 이제 담임 선생님과 면담이 있다고 해서 잔뜩 긴장했다. "근데 글쎄 선생님 첫마디가 뭐였는지 아니?" 


쭈뼛쭈뼛 지정된 면담실로 갔더니, 나이가 나 정도 되는 남자 선생님이 엄마를 맞이했다고 했다. 그 앞에 엉거주춤 앉는 것으로 면담이 시작됐는데, 선생님이 물어본 첫 질문은 "어머니, 드시는 약 있으세요?" 


엄마는 그제야 자기가 어떤 학교에 왔는지 실감이 났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암환자인 엄마가 입학원서를 내는 곳이다. 지병이 없는지, 평소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혹 입원할 예정은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학교. 


엄마가 입학을 실감함과 동시에 다음 질문이 이어졌는데, 그럼 그 질문은 뭐였을까? 내가 이 얘기를 친구에게 해주며 질문이 뭐였을 거 같아? 하고 물어보면 다들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꿈이 뭐세요? 

좋아하는 과목이 뭐세요? 

자녀분은 있으세요? 

어떻게 이 학교에 오게 되셨어요? 


나도 엄마 얘기를 들으며 같은 생각을 했다. 뭐라고 질문했을까? 어떤 공부를 하고 싶으신지? 친구는 몇 명이나 사귀고 싶은지? 이 학교는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집이 어디인지? 


그런데 선생님의 다음 질문은 "한 달에 집안 대소사가 몇 번이나 있으세요?" 였다고 했다. 엄마처럼 60 먹은 젊은 할머니부터 80 넘은 현역 할머니도 다니는 학교에서는 집에 제사가 있으면 학생들이 자꾸 결석을 한다. 13살 때 학교에 가지 못해, 60이 넘어서야 중학교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깟 제사가 뭐라고 학교를 빠지게 해. 나는 울화통이 치밀었다가 꾹 참는다. 그래서 이 학교는 그런 학교. 지병을 확인하고 대소사를 세는 학교. 선생님이 학생의 딸과 비슷한 나이인 학교. 


서무과의 직원이 신청을 받아주며 "벌써 반은 오신 거예요"라고 했다고 한다. 엄마는 이제와 하는 공부에 머리가 열릴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는데, "어머니, 자녀분들 키우실 때 선생님 말 잘 들으라고 하셨죠? 어머니도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고 선생님 말씀만 잘 듣고 따라오시면 돼요~" 


그래서 엄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3월 2일 입학식과 함께 학교에 다닐 예정이었는데, 개학이 미루고 미뤄져 엄마는 격리 시대의 온라인 학생이 되었다. 어제는 수학을 물어보고, 오늘은 한문을 물어보는 엄마. 공부가 너무 어려워서 제발 수업 빠질 핑계 좀 생겼으면 한다는 엄마. P가 왜 ㅍ인지, Q가 왜 ㅋ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엄마. 걸음마하듯 하루에 한 장을 공부하며, 이제부터 꼬박 2년을 중학생으로 살아간다. 엄마가 다니는 학교는 정규 중학과정을 2년만에 졸업하느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수업하고, 중간중간 현장학습에 수학여행까지 있다고 했다. 엄마가 친구 엄마들과 함께 수학여행을 간다니, 나는 삐죽삐죽 올라가는 입꼬리를 참을 수가 없다. 엄마가 선생님 말 잘 듣고 예습 복습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나는 엄마의 좋은 학부형이 되어야지. 엄마의 기습적인 질문 앞에 의연하려면, 나도 국영수 중심의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가 중학생이 되었다. 연필로 꾹꾹, 필기를 한다. 오늘은 소인수분해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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