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맘껏 좌절하세요
퇴근길, 멍하니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앞을 보니 저만치 앞서 가는 사람이 있었다. 작업복에 장화 차림. 옅은 하늘색의 옷은 때가 꾀죄죄하고 여기저기 흙물이 묻어 있다. 어디서 읽었더라. 육체노동자들은 작업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갔을 때 그 속에서 천국을 느끼는 자들이라 했다. 몸을 움직여 하루의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에게서 머리와 손가락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흉내도 낼 수 없는 뒷모습을 보곤 한다.
퇴근 후 마트에서 서성이다 보면 튀김요리와 맥주 한 캔을 손에 든 채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볼 때가 있다. 돌아가 샤워를 하고 맥주를 손에 든 채 등을 기대면 일단은 다 괜찮은 것이라 여겨지겠지. 하루의 끝을 보며 숨을 고를 것이다. 장바구니도 없이 손에 맥주 한 캔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볼 때 내가, 사람이, 짐승임을 동물임을 기억해낸다. 한껏 잘난 듯이 고개를 쳐들고 살지만 품위를 지킬 수 없는 상황이면,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상황이면, 피부를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면 나도 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머리 누일 곳을 찾는 짐승일 것이다. 사람이 이해되지 않을 때면 맥주 한 캔을 이해해야지. 갈증 난 짐승 한 마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