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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이제 서서 자각하세요 ㅡ 결국 내가 할 일입니다

by 잎새

어제는 무심코 기온을 확인했다가, 저녁 7시에 15도가 찍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미세먼지가 심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이쪽도 나쁘지 않다. 벼르고 벼르던 달리기의 날이다 싶어 허겁지겁 옷을 입었다. 근 한 달만에 제대로 달리는 날이었다. 2월에는 단 2번 만을 달렸는데, 마지막 달리기에서는 한 번에 채 10분을 채우지 못했다. 숨이 턱까지 차서 5분 뛰고 2분 걷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걸으며 시간을 때웠다. 그 뒤로는 한참 무서워 달릴 생각이 나지 않았다. 30분 달리기는 별 일도 아니게 되었었는데, 겨우내 쉬는 동안 근육도 달릴 용기도 다 사라져 버린 듯했다.


한 달만에 달리기 복장으로 거울 앞에 섰더니 티셔츠 밑으로 드러난 엉덩이와 허벅지가 눈에 띄게 두툼해졌다. 쉬는 동안 붙은 살들이 다 저쪽으로 갔나 보다. 그대로 나가기가 망설여져 자꾸만 티셔츠를 끌어내려본다. 그렇게 한참 거울 앞에서 서성이다가, 달리려면 하는 수 없으니 눈을 질끈 감고 나갔다. 한 번에 30분을 욕심내지 않고 10분씩 나눠 뛰기로 한다. 2월의 달리기처럼 얼마 못 가 포기할 수도 있으니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처음 5분에서 그 날의 컨디션이 판가름 난다. 생각보다 다리에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10분씩 3번에 걸쳐 30분을 뛰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더는 얼굴이 아프지 않고 봄 냄새만 가득했다. 다리가 앞으로 차고 나갈 때마다 짜릿해서 웃음까지 난다. 아직 달릴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 크게 안도했다. 처음에 무겁게 느껴졌던 허벅지도 점점 가벼워졌다. 그리고 달리기를 마쳤을 때쯤 드러난 엉덩이가 부끄러웠던 기분은 멀리 사라져 있었다. 땀에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작년 4월 26일에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해서 어느새 근 1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달린 시간은 총 42시간, 달린 거리는 348킬로라고 한다. 그리고 다시 봄. 다음 겨울이 시작되기 전까지 8개월의 시간이 주어졌다. 얼마 전 본 글에서 '몸을 장식이 아닌, 기능으로 보아야 한다.'는 문장을 봤다. 여전히 나는 거울 앞에서 티셔츠를 끌어내리기 일쑤이지만, 20대의 나보다 더 강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다. 뛰고 버티고 헐떡이는 몸, 땀 흘리는 몸을 욕망한다. 올해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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