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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Nov 17. 2019

한계투성이의 해피뉴이어

이제 서서 자각하세요 ㅡ 결국 내가 할 일입니다

타인과 나 자신에게 나의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오랜 시간 괴롭혀왔다. 증명의 기준은 막연하기만 하다. 예를 들면, 창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어디론가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 직장이든 사생활이든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 누구의 생각인지도 모르는 기준에 맞춰 내가 쓸모 있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다. 보일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인생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보여주려 노력했다.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앞으로도 거창한 일을 해내는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을 진작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두려움에 아집을 섞어 눈을 가리고, 증명하기 위한 시간을 길게도 보냈다. 그럼 이십 대를 지나, 서른을 지나, 하루씩 더 늙으며 내려놓게 되는 생각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남은 인생도 이렇게 소소한 대화만 나누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 놀이기구에 대한 설명같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다녀온 친구가 그곳 놀이기구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다가 말했다. 


나의 한계를 끌어안고, 대단치 않은 사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그 놀이기구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얼마나 높이 올랐고 빨리 내려왔는지, 몇 개의 물방울이 튀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얼떨떨했는지, 몇 번을 웃었는지, 설명하는 말들 조차 머쓱한 그 사소한 감정 앞에 당당해진다. 옅은 죄책감들은 훌훌 던져버리고, 한계투성이의 나를 마주한다. 증명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보여줄 사람도 없다. 쓸모 있어도, 쓸모 있지 않아도, 나는 결국 같은 사람이다. 사소한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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