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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Oct 27. 2020

그날 00가 입고 있던 옷

이슬아 글감노트 중에서

y가 그 줄무늬 옷을 입고 나온 날이 기억에 선명하다. 신기한 옷을 자주 입는 사람이지만 그 날은 유독 신기했다. 발목까지 오는 브이넥 반팔 원피스가 분홍, 빨강, 파랑, 노랑, 흰색, 옅은 녹색, 옥색, 짙은 녹색, 갈색, 베이지색의 세로 줄무늬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위에 나열한 모든 색이 한 벌에 들어있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또 그 옷이 겉돌지 않고 잘 어울려서 내 눈에는 쉽지 않음x쉽지 않음 콤보로 보였다. 그래도 이제는 y를 만난 짬바가 찬 덕분에 별 말없이 동네를 걷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눈 앞에 y의 옷이랑 똑같은 무늬의 벽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분홍, 빨강, 파랑, 노랑, 각종 녹색, 기타 등등 다른 색이 가로로 섞였다. 별 말 없던 나도 그 벽 앞에서는 웃음이 터져 한참 허리를 펴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y를 벽 앞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었다. 벽과 똑같은 옷을 입은 y가 특유의 표정으로 이를 잔뜩 드러내고 웃었다.


어느 여름날은 y가 짧은 분홍색 반바지를 입고 나왔다. 다리와 피부를 드러내는 일에 영 자신이 없는 내 눈에 y의 손바닥만한 바지가 자유롭게 보였다. 서대문 근처를 정처 없이 걸은 날이었다. 걷는 내내 y의 다리가 여름 볕에 반짝였다. 


y가 입었던 옷만큼이나 y의 얘기들은 내 기억에 남아 오래오래 숙성된다. 밥을 먹거나 산책을 할 때, 문득 y의 말이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훅 하고 피어나는 냄새에 많은 날을 기대어 살았다.


하루는 y가 네 재능과 기술, 돈, 시간, 나이 혹은 능력을 아무것도 따지지 않으면, 그 모든 게 아무 상관없이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면, 너는 진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이력이 없는 질문이라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고민에 머리가 핑핑 돌았다. 선뜻 답이 나오지 않아, 먼저 답을 물었다. 이 얘기를 처음 했던 y의 친구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단다. "가수요??" 내 선택지에는 절대 오르지 않을 직업이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러니까 재능과 돈과 시간과 나이와 능력을 따지지 않으면, y의 친구는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단다. 그리고 y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운동선수요??" 다시 선택지에 오르지 않을 대답에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운동선수가 되고 싶다는 y의 선택은 정말 타당했다. 한 번은 y와 여행 일정이 겹쳐 하루를 같이 보낸 적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수다를 멈추지 못한 덕에 아침에 약한 나는 역시나 늦잠을 잤다. 집이었다면 내내 침대에 웅크린 채 있었겠지만, 여행지인 탓에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뭉그적 옷을 꿰어 입고 밖으로 나가니 y와 다른 일행이 낯선 곳에서 맞이한 아침을 구석구석 탐색하고 있었다. 이미 동네 한 바퀴를 훌쩍 걷고 온 y가 상기된 얼굴로 저쪽에 가면 연못이 있고, 집 뒤에는 어제 발견하지 못한 술이 쌓여있고, 이 집은 오리와 양도 키운다며 갖가지 정보를 쏟아냈다. 


연못이 있다는 말에 구경을 나섰는데, y가 갑자기 "나 좀 뛰고 올게!" 하고는 후두둑 숲 속을 향해 달려갔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나도 달리기를 하는 사람인데 내 달리기와 y의 달리기는 어쩐지 종류가 다른 것 같았다. 내 달리기가 기초체력증진 혹은 체중조절 가끔은 스트레스 해소와 같은 딱딱한 목적을 하고 있다면, y의 달리기는 서로를 간지럽히는 일종의 놀이 같았다. 걷다가 간질간질 웃음이 터지면, 나 좀 뛰고 올게!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툭 툭 툭 달려간다. y의 달리기에는 아무 목적도 없는 듯 했다. 달리고 싶어서 달리는 사람이었다. 


또 하루는 y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쓰고 싶은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다시 익은 냄새를 풍기며 코끝에 맴돈다. 나는 나로 출발한 글쓰기를 어디에서 끝마칠 것인가. 


y가 조카의 돌반지에 새긴 '용기를'이라는 문구는 내 마음에도 같이 새겨졌다. 백설공주 동화처럼 내가 요정이 되어 한 살짜리 아이에게 축복을 줄 수 있다면, 나 역시 오직 용기를. 그 외에 어떤 큰 사람이 되는 것도 아이에게 바라지 않을 것 같았다. 


회사에서 울고 싶어 질 때마다, 답이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삶의 고비고비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때마다, y의 지혜에 기대 위기를 벗어났다. 다짜고짜 늘어놓는 하소연과 질문에 y가 싫은 체도 하지 않고 심사숙고를 거듭한다. 내 머리에서는 나오지 않는 그 답들을 아무 체면치레 없이 넙죽 받아먹었다. 


얼마 전에 용기 내는 일에 인이 박혀 그 용기를 나눠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일기를 썼다. 용기 내는 일에 인이 박힌 y가 자신의 용기를 나눠줬기에, 그 용기를 먹고 자란 내가 내 용기의 넉넉함을 믿게 되었다. 앞에서 후두둑 뛰는 사람의 경쾌함이 무거워지기 쉬운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손톱 같은 용기가 자라고 자라, 굵은 뿌리로 불안한 마음을 움켜쥔다. 할 수 없다는 마음 대신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오늘도 존경하는 나의 친구가 이를 활짝 드러내고 웃는다. y가 웃는 한 아마 나도 괜찮을 거라 믿는다. 오늘치의 기운을 나눠주는 사람. 너른 어깨로 앞서 걷는 사람. 나는 근사한 영웅을 가졌다. 아니, y를 아는 사람은 모두 근사한 영웅을 가졌다. 우리는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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