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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Dec 11. 2020

뿌리와 싹과 꽃

남겨지는 것


오늘은 튤립 구근  개가 소포로 도착했다.  담은 유리병 위에 구근을 올려두면  뿌리를 내리고 싹도 틔울 거라는 엽서와 함께였다. 아기 주먹만 한 구근 속에 뿌리가 있고, 싹이 있고, 선명한   송이가 들어있다니, 도시 사람은 당연한 이치에 새삼 놀란다. 단단하고 하얀 그것을 가만가만 만져봤다.

갑자기 무직자가  3주 차의 첫날은 낮잠을 3시간 자고, 점심과 저녁을 집에서 차려먹는 것으로 보냈다. 9시가 되기 전에 따릉이를 타고 20 달려 케이크도   포장해 왔다. 달리고 걸으며 말을 주고받고, 번갈아 고개를 끄덕였다.

닫으라 하면 닫고, 열라 하면 여는 일을 하게 되면서 세상이 자꾸만 다른 게 보인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만 남겨놓은 세상에서는 무엇이 남고, 무엇이 사라질까. 구근 뿌리에 닿은 물은, 그래서 싹을 틔우는 물은, 꽃의 색깔을 정하는 물은, 누가 정하는 걸까. 무엇이  물이   있을까.

음악을 지우고, 공간을 지우고, 커피를 지우고, 그래도 살아지는  인간일까. 밥과 직장만 있으면 살아지는  일상일까. 밥벌이의 문제를 떠나, 살면서 진짜 필요한  뭘까. 닫고 지워지는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뭘까. 이미 모든  넘쳐나는 세상에서, 넘쳐나니까 문제가 생기고, 넘쳐나니까 경쟁하고, 넘쳐나니까 제한해야 하는 세상에서, 내가  하나 만들고 싶은  뭘까.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소포로 꽃을 실어 나르는 마음을 생각한다. 작디작은 봄이 꾹꾹 눌러 담겨있는 단단한 마음.

남을 ,  .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는 작은 사치라 생각했던  단어가 뿌리에 사무친다. 잃고 나서야 보이는 일상의 작은 . 한치의 낭비 없이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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