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엄마는 무너지지 않는다 (13)

#13. 나를 설계하는 3가지 질문

by 이민주

출근길,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짧은 순간. 밤늦게 노트북을 열었다가 다시 덮는 새벽의 고요. 그 사이사이에서 나는 자꾸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매일 선택하고, 일하고, 말하고, 감정을 소비한다. 하지만 정작 그 모든 움직임을 결정하는 중심축, 즉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육아를 하면서도, 명세서를 쓰면서도, 기록을 남기면서도 나는 종종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 삶을 살고 있지?”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있지?”


그리고 그 질문들은 어느새 지금의 나를 설계한 도구가 되어 있었다.



연결: 나는 어디서 에너지를 얻는가


육아는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일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이 아이의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일 역시 마찬가지다. 지적 노동과 감정 노동이 동시에 몰아치는 하루 속에서 나는 늘 번아웃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하던 육아가 어느 순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쌍둥이를 보며 무너졌던 감정은 밤마다 글을 쓰며 회복되었고, 업무에서 느낀 피로는 아이의 짧은 한마디에 금세 녹아내렸다.


그때 깨달았다. 삶은 분리하면 버티기 어렵다. 연결될 때 회복된다. 출근할 때는 업무의 언어를, 퇴근하면 엄마의 언어를 쓰려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균형’이 아니라 ‘단절’에 가까웠다.


지금은 안다. 나의 에너지는 조각난 시간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어진 흐름 속에서 생겨난다는 걸. 그래서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이 나를 지치게 하고, 무엇이 나를 살게 하는가?”

이 질문 하나로 삶의 버팀목이 달라졌다.



지식: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변리사로 일하는 나는 매일 기술과 법 사이에서 정보를 다룬다. 하지만 오래 일하다 보니 깨달았다. 지식의 가치는 축적보다 ‘해석’에 있다. 아이를 관찰하며 쓴 육아 기록은 명세서를 구성하는 논리의 골격을 더 명확하게 보게 해 주었고, 특허 실무에서 훈련된 관찰력은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 경험은 단순한 진실을 말해준다. 공부는 책상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의 경험은 교과서가 되고, 기록은 인생의 해설서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얼마나 아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이다. 이 질문은 방향을 준다. 삶의 진도를 점검하게 한다. 그 질문이 생기는 순간, 나는 다시 삶의 학생이 된다.



의미: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하루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하지만 10분이라도 글을 쓰고 나면 감정이 가라앉고, 하루가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낀다. 기록은 단순한 저장이 아니라 ‘해석’이다. 아이가 이유식을 거부한 날도 있었다. 그날은 그냥 ‘지친 하루’ 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이가 새로운 감각에 자신만의 경계를 세우는 중이다.” 그 문장이 남겨지는 순간, 그 하루는 감정의 날이 아니라 ‘관찰의 날’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는 늘 묻는다.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은 나를 피해자로 만들지 않는다. 나를 해석하는 사람, 설계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결국 의미를 묻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조형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반복해서 이 세 가지 질문을 한다.

나는 어디서 에너지를 얻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질문이다. 삶은 저절로 설계되지 않는다. 고민하고, 관찰하고, 질문하고, 그렇게 방향을 잡아가는 사람만이 조금씩 ‘자기다운 삶’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들이 내일의 나를 또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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