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그날은 특별한 일정이 있던 날이 아니었다. 회의도 없었고, 마감이 임박한 사건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 메일을 확인하고, 자료를 정리하고, 다음 문장을 고민하던 평범한 하루였다.
클라이언트에게서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초안 한번 써봤습니다”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파일을 열었다. 문장을 몇 줄 읽자,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그런데 어딘가 낯설었다.
이건 사람이 쓴 글이 아니었다. 정확했고, 깔끔했고, 구조가 잡혀 있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이 차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AI가 작성한 특허 명세서 초안이었다.
형식만 놓고 보면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니, 아직 정제되지 않은 청구항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문장은 맞았지만, 판단이 필요한 지점들은 비어 있었다. 구조는 있었지만, 책임이 머물 자리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놀랍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늦게 왔다. 먼저 느껴진 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었다. 마치 누군가 내 자리에 먼저 앉아 있는 걸 본 기분에 가까웠다.
나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틀린 부분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문법은 정확했고, 구성도 무난했다. 심지어 내가 자주 쓰는 표현과 비슷한 문장도 있었다.
그 순간, 묘한 감각이 들었다. 이건 단순히 ‘잘 쓴 초안’이 아니라,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온 방식과 표현을 이미 익힌 어떤 존재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 어깨너머에서 내가 하려던 말을 먼저 말해버린 것처럼.
나는 12년 동안 이 일을 해왔다. 처음 명세서를 쓸 때의 막막함도, 수십 번 고쳐가며 구조를 익히던 시간도, 의뢰인의 사업을 이해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자료를 읽던 순간도 모두 이 일의 일부였다. 그 시간들이, 지금 이 파일 한 장으로 요약된 느낌이었다.
AI는 나보다 빠르다. 이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빠르다’는 것과 ‘옆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기술은 늘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고 생각해 왔다. 도구는 책상 위에 있고, 사람은 의자에 앉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날, 기술은 분명히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파일을 닫지 못한 채,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무엇을 수정해야 할지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더 어려웠다. 이건 위기일까. 아니면 진화일까. 아니면, 그저 새로운 일상일까.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스쳐갔다.
‘이제 이런 초안 정도는 누구나 만들 수 있겠구나.’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내가 해오던 일의 핵심은 어디에 있었을까?’
이 질문들 중 어느 것도 지금 당장 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조용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파일을 열었다. 이번에는 틀린 문장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문장을 그대로 제출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기 위해서였다.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문장은 맞았다. 하지만 이 문장이 만들어질 맥락과, 이 문장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결과를 AI는 책임지지 않는다.
그 책임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조금 안도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더 무겁게 만들었다.
AI가 내 옆에 앉았다는 건, 내 자리를 빼앗으려는 일이 아니라 ‘내 자리가 왜 필요한가’를 되묻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일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문장을 쓰기 전에 멈추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게 맞는가’보다 ‘이걸 내가 감당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AI는 앞으로도 더 매끄럽게 쓸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정할수록,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선명해졌다.
AI가 문장을 만드는 동안, 나는 그 문장이 놓일 자리를 고민해야 한다. AI가 구조를 제안하는 동안, 나는 그 구조가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날, AI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같이 일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문서 창에는 여전히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 커서는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대신, 묻고 있었다. 나는 이 문장을, 이 선택을, 이 일을 어떤 마음으로 이어갈 것인가.
AI 시대에 전문가로 산다는 건 어쩌면 더 많이 쓰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이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그 답을 찾는 중이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혼자 일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더 사람답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