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기준을 적기 시작했다

8화

by 이민주

나는 더 이상 기술 앞에서 중립적인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AI를 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쓰느냐의 문제가 내 앞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기준을 갖지 않는다는 선택은 생각보다 무거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기준이 없다는 건, 결국 기술이 만들어주는 방향에 몸을 맡기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꽤 늦게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기준이 없었다. 그저 더 빠르고, 더 편리하고, 더 그럴듯한 답을 주는 도구를 잘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다는 만족감도 분명히 있었다. 선택지가 많아졌고, 결정은 쉬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충분히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선택하고 있는 게 아니라, 선택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AI가 제안한 답을 그대로 쓰는 일이 반복될수록, 판단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생각하는 시간보다 고르는 시간이 길어졌고, 질문은 줄어들었다. 그 변화는 아주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그래서 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AI는 언제나 친절하다.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보여주고, 가장 합리적인 답을 추천한다. 그 추천은 대체로 틀리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무난하다. 문제는 바로 그 무난함이었다. 무난하다는 건 누구에게도 크게 틀리지 않지만, 누구의 삶에도 깊이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점점 더 자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이 선택은 정말 내가 한 선택인가, 아니면 기술이 만들어준 경로를 그냥 따라간 것인가. 답을 쓰기 전보다, 그 질문이 먼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질문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중심으로 되돌려놓았다.


기준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기준은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감각,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 같은 것에서 자라난다. 처음에는 그 감각을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그 불편함은 무시할 수 없는 신호가 되었다.


AI가 제안한 답을 그대로 쓰기 직전, 나는 종종 손을 멈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문장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선택이 실패했을 때 나는 어떤 설명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답은 아무리 완벽해 보여도 내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부터 선택은 느려졌지만, 훨씬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적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아니라, 실제로 글로 남겼다. 생각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만, 적힌 문장은 나를 다시 붙잡아주기 때문이다. 기준을 기록하는 행위는 나 자신과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그 문장들은 판단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기준들은 거창하지 않다. 법이나 윤리처럼 추상적인 선언도 아니다. 아주 구체적인 문장들이다. 설명할 수 없는 선택은 하지 않는다, 빠른 답보다 관계를 해치지 않는 답을 고른다, AI의 제안은 참고하되 결정의 이유는 내 말로 정리한다. 이 문장들은 기준이라기보다 경계에 가까웠다.


이 기준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나는 처음으로 기술 앞에서 다시 중심을 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준은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선에 가까웠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생기자, 선택은 오히려 쉬워졌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기술은 언제나 방향을 만든다. 그 방향을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장 쉬운 길로 흘러간다. 그 길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는 기준이 없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기준은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것이 가능해졌을 때,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이제 기술을 쓸 때마다 내 기준과 기술의 제안이 어디에서 어긋나는지를 먼저 본다. 그 어긋남이 바로 내가 개입해야 할 지점이다. 그 순간, 일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AI는 효율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사람의 삶은 효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관계, 신뢰, 감정 같은 것들은 언제나 계산을 벗어난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기준을 기술보다 앞에 둔다. 기술은 도구이고, 기준은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 없다. 각자의 삶과 일에는 각자의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준이 없다는 상태는 누구에게나 위험하다. AI 시대에 기준을 갖는다는 건, 무엇을 할지 정하는 일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정하는 일에 가깝다. 일부러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 나를 지킨다.


나는 이제 모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답을 쓰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지도 않는다. 그 대신 나에게 맞지 않는 선택을 분명히 거절한다. 이 거절은 기술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기술을 더 오래 그리고 더 건강하게 쓰기 위한 태도에 가깝다. 기준 없는 수용은 결국 소모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종종 AI에 대해 묻는다. 이제는 써야 하는 건지, 아니면 거리를 둬야 하는 건지.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중요한 건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이 기술을 통해 어떤 선택을 내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는 걸. 기준이 없는 기술 사용은 편리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순간,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기준은 일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놓는다.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아준다. 나는 여전히 AI를 사용한다. 하지만 더 이상 AI의 속도에 맞춰 나를 재촉하지는 않는다.


기준이 속도를 조절해 주기 때문이다. 이 기준들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수정되고, 경험에 따라 바뀐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기준을 가진 채 기술과 마주하고 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기술을 쓰고 있다는 느낌과, 기술 위에 서 있다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AI 시대에 인간이 할 일은 더 많은 기능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한 기준을 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기준을 적는다. 기술보다 먼저, 내 이름으로 남길 수 있는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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