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꽃피우기까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by 함영석 변리사

나태주 시인의 '나태주의 풀꽃 인생수업'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문학이나 이런 쪽은 도무지 관심이 잘 가질 않았는데, 최근에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특강이라는 책 내용에서 시를 해석한 내용을 읽으면서, 정말이지 전율이 느껴졌다. '시'라는 게 그냥 '시'가 아니구나라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시를 쓴 시인의 생각과 마음을 시를 통해 생각해 본다는 것과, 그 시대에만 알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을 함축한 단어들을 느끼고 해석해 본다는 것은, 글을 읽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 것 같았다.


<풀꽃>


자세히 보야아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아이들의 미술 수업에서 나태주 시인이 꽃을 그리라고 하니. 아이들이 제각각 그림을 그려가지고 온다고 했다. 꽃을 바라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그려진 자신들만의 꽃의 관념으로 바라보며 그린 그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았다. 내 앞에 꽃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것.

우리는 얼마나 그렇게 자세히 보지 못하고, 오래 보지 못하고, 그저 나의 고정되고 편협하기도 한 생각에 갇혀 바라보고 판단하게 되는지 말이다.


눈앞에 대상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을 바라볼 때에도 얼마나 잘못된 시각으로 바라볼 때가 많은지 새삼 느끼게 되는 대목이다.

나를 얼마나 자세히, 그리고 오랫동안 보아 왔는가? 그래서 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는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내 앞에 당신도 그렇게 사랑스럽다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다.


[마태복음 25: 15~18]

15 그는 각 사람의 능력을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고,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다.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17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와 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숨겼다.


세 사람에게 주인이 각각 돈을 주고 떠난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또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준다.


왜 각각 준 돈이 다른 걸까? 단순히 금액적으로 보면 큰돈이고 작은 돈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의 화폐 가치로 본다면 1 달란트도 20년 치의 임금에 해당한다고 하니 적은 금액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세 사람 중에 마지막 사람은 가장 '작은'금액의 돈을 받았다고 느낄만하다. 비교에 익숙한 우리의 삶처럼 말이다. 가장 작은 돈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가장 하찮은 것이라 느꼈는지,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달리 이를 이용해 돈을 벌지 않고, 그저 숨겨놓음으로 주인이 돌아왔을 때 어떠한 변화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과 아래의 마태복음의 말씀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은데, 한동안 이 두 내용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나는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내가 생각한 나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가진, 내가 받은 이 한 달란트를 남들과의 비교에 빠져 너무도 하찮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 말이다.


그렇게 내 삶에서 피워야 할 나의 꽃에는 물을 주지도, 햇볕을 쬐어주지도 못한 채,

나의 관념 속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지금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바라기가 제비꽃 보다 키가 큰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바라기가 더 예쁘다고 할 수도, 제비꽃이 아름답지 않다고도 할 수 없지 않은가?


두 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서로의 키를 재고 있으니,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꽃을 피우느냐 피우지 못하느냐는 중요하지만,

꽃이 화려한지, 소박한지, 아니면 큰 키를 가졌는지, 작은 키를 가졌는지는,

비교하기 위한 우리 삶에 습관화된 고정된 생각일 뿐이다.


각자 삶의 꽃을 피우자.


나는 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꽃은 시간이 지나면 활짝 피게 된다. 이는 정해진 자연법칙이다.

굳이 이를 거슬러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어떤 이유와 근거로, 혹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꽃은 피게 되어 있다. 내가 스스로 꺾어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저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처럼,

나의 꽃을 자세히, 오래도록 관심으로 바라보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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