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바네바는 일본어로만 맛있다
요즘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일본에 사는 초등학생 딸을 위해
새벽마다 도시락을 싸는 영상이다.
정갈하게 정리된 계란말이,
반듯하게 썬 채소,
손바닥만 한 도시락통이 늘 등장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주 등장하는 재료가 있다.
'마'로 만든 계란말이, 낫또, 오쿠라.
묘하게 끈적이다.
초등학생이 저걸 좋아한다고?
음, 맛이 없을 것 같진 않은데 쫀득한 것도 아니고…
뭔가 ‘끈적’해서 조금 낯설다.
비슷한 질감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쫀득한 건 반가우면서,
끈적한 감각은 왜 내겐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일본에서는 이 끈적임(ねばねば, 네바네바)을
그다지 어색해하지 않는다.
낫또, 오쿠라, 오조니, 토로로.
이름도 질감도 줄줄 흐른다.
그리고 놀라운 건, 그 끈적함을
맛의 언어로 정확히 표현한다는 거다.
네바네바.
그 감각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귀엽게 말하고, 공유하고, 사랑한다.
생각해보면, 영어권에서는 끈적한 질감이
종종 부정적인 맥락으로 사용된다.
sticky, slimy, gooey —
이런 표현들은 대개 음식보다는
벌레, 이물감, 실수 같은 상황에서 더 자주 떠오른다.
물론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끈적하다’는 말에 좋은 기억이 덧붙는 일은 흔치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미국에 머물 때 남편이랑 마트 트레이더 조에 갔다가
냉동 코리안 떡볶이를 발견한 적이 있다.
“헐 여기 떡볶이도 팔아?” 하고 구경하던 찰나,
옆에 있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이건 좀… 끈적해서 애들이 싫어할 수도 있어.”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맛이 아니라 질감이 기준이 되는 느낌.
그리고 ‘끈적하다’는 그 말이,
딱 거기까지만 설명이 끝난다는 것도.
반대로 한국은 쫀득함에 후하다.
쫀득쫀득, 말랑말랑, 탱글탱글, 꾸덕꾸덕.
식감 하나를 설명하는 말이 줄줄이 나온다.
이건 부드럽고, 저건 쫀쫀하고,
그건 탱글하고, 얘는 꾸덕하다.
그런데 끈적함을 묘사하는 말은... 거의 없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거다.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싫은 건 또 아닌데
‘좋다’고 말하기엔 뭔가 불분명한 그 감각.
그래서일까.
그 질감을 맛있다고 말하는 언어 자체가 낯설다.
그러니까
네바네바는 그냥 일본어로만 맛있는 것 같다.
나는 아직도 낫또를 먹을 때마다 한 번쯤 멈칫하게 된다.
이게 맛있다는 감각이 어딘가엔 있다는 게,
좀 신기하고, 좀 부럽고,
아주 가끔은… 살짝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냥,
쫀득보다 끈적이 먼저였던 사람도 있는 거니까.
입에서 시작된 감각은,
때로 기억과 구조로 이어집니다.
‘씹다가 멈칫’은 감각의 흐름을 기록합니다.
이 시리즈는 1편부터 읽을수록 더 맛있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