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랑아리랑 Nov 23. 2023

지금은 가족의 다양성을 존중받을 시간입니다(3)

그럼, 아빠 빼고 우리끼리 가면 되잖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캠핑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원대로 캠핑군단과 함께 다녀오니 또 다른 관문이 다가온다.

큰 아들

엄마 또 캠핑 가고 싶어,

이제 우리끼리 캠핑 가자

나   

응? 글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남편 없이 해야 하는 운명을 직감했다)

큰 아들

왜 안돼?

큰 외삼촌이 쓰시던 텐트도 주셨잖아

내가 다 도와줄게

아빠는 캠핑 싫어하잖아

큰 아들

그럼, 아빠 빼고 우리끼리 가면 되잖아!



사실, 엄마는 두렵고 무서워

간질간질 아지랑이처럼 울렁이던 생각들이바람결에 흩날리며 사라진다. 열 살, 여섯 살 아이들 앞에서 변명만 늘어놓고 있는 스스로가 치사스럽고 부끄러워진다. 가느다란 폴대에 끼워진 얇디얇은 천을 치고 막상 남편 없이 두아이를 데리고 캠핑할 생각을 하니 가마득하다. 큰 아이 태어나고 산 승용차가 10년 동안 20만 킬로미터가 되도록 국내여행을 다녔지만 아기돼지 삼 형제에 나온 지푸라기집마냥 바람에 날아갈까, 늑대가 나타나 해코지할까 두렵고 무서웠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마음은 좋고 나쁨이 없음에도 부정적인 마음 앞에선 표현이 서툴고 입을 닫게 된다. 나를 대하듯 아이를 대하자고 굳게먹은 마음도 중요했지만 문제를 직면하고 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용기도 필요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떠한 선택을 하던지 그 책임을 지며 살아가면 된다. 스스로에게 묻고 결정한 과거의 경험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게 해 주고 분명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준다.


잘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좋은 엄마이자 아내로 딸과 며느리가 되고자 용쓰며 노력한 시간이 뿌리 깊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둥근 고리 하나씩 남기며 마흔이 넘었다. 어둠에 잠식된 터널 안을 더듬거리며 걸었던 서른 즈음의 성장통을 지나니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고 멈춰버린 배와 같다. 검은 파도가 일렁이며 바다의 생명을 유지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마다 나의 에너지로 가족의 안녕을 기도한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존재만으로 이미 충만하다. 아이들 일이라면 언제나 지지하고 전적으로 맡겼던 남편도 캠핑 얘기만 나오면 극혐이다. 어릴 적 가족과 함께 간 첫 캠핑에서 텐트를 버리고 올 만큼 너무 힘들었단다. 오히려 제발 안했으면 좋겠다며 나와 아이들에게 간곡히 부탁할 정도다. 남편의 그 눈빛과 표정에서 느껴지는 스산함이 아직도 선하다. 더 이상 말 할 수 없었다. 남은 건 포기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피하지 않고 어떻게 솔직하게 말할 것인가


우리 캠핑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

아이들

왜?

희재가 충분히 잘 도와줄 거라 믿어,

하지만 엄마 혼자서 어린 너희 둘을 데리고 가기엔 두렵고 무서워서 용기가 나질 않아.

아이들

우리가 있잖아, 그리고 그곳은 캠핑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무섭지 않을 거야

나 …



그 작은 입에서 간결히 나오는 말을 가만 듣고 있자니 할 말이 없다.

순간 강하게 한 대 맞은 기분이다. 그 누구 때문이 아닌 무의식에서 느껴지는 감정이었구나. 남편이 어릴 적 첫 캠핑에서 느낀 과거의 경험처럼 일하시는 부모님 빈자리에서 혼자 외롭게 자랐던 어린 시절 안전에 대한 불안과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의지하고 싶었던 결핍된 마음이 느껴졌다. 30년 전 기억은 없지만 정서는 남아있고 아이들 덕분으로 마음의 구멍을 발견했다. 캠핑을 갈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면을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편은 아이들의 원을 어떻게 다 들어줄 수 있냐며 본인 없이 시작할 캠핑을 말려보지만 이 감정을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일주일 내내 사색에 잠겼다. 현재 두 아이 나이즈음 어렴풋이 기억 넘어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늘 그리움으로 공허했던 소용돌이가 불어온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엄마의 사랑. 함께 했을 때 채울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 앞에서 일하시는 내내 나를 그리워했다는 친정엄마의 말씀을 듣고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서야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해보자, 가보자

내면 아이를 직면하여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니 소용돌이치던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진다. 투박하고 거친 손을 잡을 수있음에 감사하고 다 큰 자식을 무심으로 지켜봐 주시는 영롱한 눈빛이 마음의 구멍을 메워준다. 불안과 긴장은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 안에서 좀 더 괜찮은 나로 성장시켰다. 캠핑을 하며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발견하게 될지 기대된다. 두 아이에게도 그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그래, 해보자, 가보자

너희들과 함께라면 분명 즐겁고 신날 거야

아이들

…(우레와 같은 환호성)

아빠의 취향을 존중하자. 우린 모두 달라, 가족이지만 각자 생각도 다르고 취향도 다양해. 다름은 서로를 존중하고 다양한 생각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지

아이들

맞아 우린 캠핑을 좋아하지만

아빠는 캠핑을 싫어하는 것처럼

캠핑은 싫어하시지만

너희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실 거야

아이들

어디로 갈까?

당장 이번주 주말에 가자 엄마

그래,

해보자, 가보자




photo by i-rangarirang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는 없다, 서른 명의 캠핑 군단(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