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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o 떼오 Jun 09. 2024

파리에서의 한 달, 이사 가다.

현지인 모드에서 관광객 모드로!

  날씨가 좋을 때면 간혹 러닝을 했다. 주변에 뛸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냥 발길 가는 대로 뛰었다. 파리 여행을 하다 보면 러닝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도 강가, 공원, 체육관 등 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장소가 아닌 도심을 달린다. 발길 가는 대로 달리고, 곧 그게 우리들의 달리기 코스이다. 

(이제는 우리라고 표현해도 되겠지?^^)



나는 몽빠흐나쓰 묘지 Cimetière du Montparnasse 를 지나 뤽상부르 공원 Jardin du Luxembourg 쪽으로 자주 뛰었다. 그럼 길을 따라 수없이 바뀌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라틴계 인종들이 사는 길을 지나 아랍계와 아프리카 분위기를 띄는 곳을 지나고, 관광지와 현지 시장을 지나,,, 나는 어느새 몽빠흐나쓰 묘지에 다다른다. 


신비할 만큼이나 고요하지만 현지인들은 익숙한 듯이 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만한 표정과 제스처를 지으며 지나간다. 나는 이 길이 좋다. 양 옆으로 묘지에 둘러싸여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지금 이렇게 달리면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오묘한 조화, 묘지 주변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듯한 온기.


그리고 비로소 뤽상부르 공원 Jardin du Luxembourg 에 다다르자 ‘살아있음’이 폭발한다. 


미각, 시각, 촉각 온 감각이 총동원되는 이 순간이 사랑스럽다. 관광객과 현지인의 놀라운 조화.

누가 관광객이고, 현지인이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이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연령, 모두 하나 되는 순간이다. 땀 한 방울이 눈 속으로 떨어지고 나서야 정신이 들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간다.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을 주었든, 좋은 기억을 주었든 익숙해진 장소를 떠난다는 것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도 그 장소가 '파리에서의 첫 장소'면 더 그렇다. 사람들은 사는 방식이 다 다르다. 하건대 한국에서도 동네마다 사는 방식이 다른데 파리같이 다양한 문화가 함께 사는 곳이면 오죽할까! 그들의 동네를 차별하면 그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과 같다. 존중하고, 이해하자.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내가 생각하기에 여행을 가장 즐겁게 하는 방법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 안에 ‘새로움’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쉽진 않을 것이다. 채우는 과정에서 걸러지는 것도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더 좋아서 내 것이 되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도 있다. 나는 그 과정이 좋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


  큰 캐리어 3개를 가지고 이사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올림픽 기간에 파리에서 그럴싸한 숙소를 구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전날 짐을 미리 싸두었지만, 이삿날까지 계속해서 짐을 쌌다. 아침은 집 앞 블렁제히 Boulangerie (빵집)에서 바게트와 크루아상으로 때웠다. 한국인인 나는 이 행위를 ‘아침을 때웠다’라고 표현하는 게 참 웃기기는 하지만. (그들은 바게트가 주식이기 때문에)


캐리어 3개를 미리 집 밖으로 꺼냈을 때야 드디어 “준비완료!”


우버만 부르면 되는데,,, 우버가 안 온다. 짐이 많아 우버 밴으로 불렀는데 근처에 밴 차량이 많지 않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우버 comfort를 불러본다. 설명에 조금 더 넓고 쾌적한 차량이라고 하기에. 바로 차량이 정해졌고 테슬라 차량이었다. 우리 짐을 다 넣을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하기 전에 ‘도착 3분 전.’ 바로 짐을 길가 쪽으로 옮겼다. 


차를 보자마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짐 다 못 넣을 거 같은데..’ 하지만 태연한 척. 그녀에게 그러한 염려를 들키기 싫었지만, 나의 어수선한 행동으로 바로 들키고 말았다. 5번의 시도 끝에 겨우 트렁크에 하나, 뒷좌석에 두 개의 캐리어를 싣고 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버에서 ‘차량대기비’라고 3유로 정도가 빠져나갔다. 우리는 ‘우버 드라이버를 보호하는 좋은 장치’라고 긍정적으로 넘어갔다.


  

  새로운 집은(숙소라기보다 집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다) 7 구지만 거의 15구에 붙어있다. 그래서 15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우리는 에어비앤비로 집을 구했지만, 그 에어비앤비는 따로 회사에서 관리하는 공간인 거 같았다. 예약하자마자 개인이 아닌 회사랑 연락을 했었다. 그리고 체크인을 하기 전에 따로 짐을 맡길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도 회사 소속인 우리 집 담당자(?) 랑 연락을 했다. 


우리는 개인이 아닌 회사 측에서 관리해 주는 집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집에 도착했을 때 그 담당자분은 우리를 환하게 맞아 주었고, 영어와 프랑스어가 미숙한 우리를 위해 구글번역기를 사용해 가며 하나하나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어째 점점 0개 국어가 되어가는 거 같다,,,


번역기를 돌리는 그 짧은 순간의 침묵과 어색함. 그리고 그 침묵을 깨는 신통한 한마디, ‘세탁기’

우리는 크게 웃었고, 그는 이게 어떻게 번역되는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는 뿌듯함 이 느껴졌다.



그렇게 친절한 환대를 받고 나서야 일찍 체크인을 마칠 수 있었다.


  새로운 집은 5층이다. 그리고 햇빛이 직접적으로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들어온다. 한마디로 낮에는 낮처럼 밝다! (당연한 말인가? 전 집에서는 낮에도 어두웠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일이럄! 


신나는 노래를 틀고, 밝은 빛을 받으며 낡은 나무바닥을 닦고 있는 이 순간, 너무 행복했다. 

바닥을 걸레질할수록 나무 바닥은 더욱더 삐그덕 거리고, 먼지들이 나무 틈 사이로 끼어 들어가지만.



그리고 감기에 걸렸다. 사실 감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행복한 나머지 걸레질을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럴 수도 있다. 목이 아프더니 이젠 콧물이 말썽이다. 몽롱하고 면역력이 약간 떨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집에 있는 거보다 카페에 와서 바람을 쐬는 게 더 낫다. 



이렇게 새로운 곳에서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전에 살던 동네가 현지인들이 모여사는, 어쩌면 그들의 생활모습을 담은 곳이라고 하면, 지금 여긴 확실한 관광지다. 다양한 인종들이 보이고, 활기차고 여행자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이런 에너지를 받아 다시 힘차게 시작해 보자! Bon coura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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