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안시를 여행하다.
인기척이란 우리의 발자국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새벽녘. 부지런히 택시를 부른다. 고요한 찻길 덕분에 5분도 안돼서 택시가 도착한다. 리옹역까지는 대략 20분. 창밖으로는 올림픽 준비로 한참인 파리와 러너들이 보인다.
리옹역에 도착하고, 역의 고풍스러움에 대해 감탄하고 나서야 우리는 깨닫는다. 신혼여행 때 스위스에서 파리로 넘어왔던 기차역이 바로 리옹역이었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역의 모습이 이제는 보인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
간단한 주전부리와 커피를 사서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아뿔싸, 우리 좌석은 역방향이었다. 더불어, 마주 보고 가는 좌석인데 우리 앞, 우리 옆 어머니들이 모두 동행인가 보다.
'자면서 조용히 가긴 글렀다.’
하지만 이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음악 듣기 30분, SNS 보기 30분, 독서 30분, 멍 때리기 30분... 이렇게 시간을 죽이고 죽인다. 그리고 창 밖을 보면 어느새 푸른 초원이 펼쳐진다. 파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중세 프랑스 사람들도 이 풍경을 보면서 감상에 젖곤 했을까?’
잠시나마 그들의 흉내를 내본다. '이동수단이 다를 뿐 생각하는 건 똑같지 않을까?'
안시에 도착했다. 안시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푸른 호수를 보며 피크닉을 하는 것’ 나의 위시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근처 케밥 집에서 포장을 하고 곤장 호수 쪽으로 달려갔다. 호수가 가까워질수록 햇빛에 비치는 호수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자유롭게 뛰어노는 강아지, 다양한 모양의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삼삼오오 점심을 먹는 젊은이들, 음악을 들으며 독서에 빠져 있는 사람들. 모두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이케아에서 산 패브릭을 깔고, 우리가 가져온 가방으로 패브릭이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시킨 뒤 신발을 벗고 앉는다. 이어서 그녀는 포장해 온 케밥을 세팅하고 먹을 준비를 마친다.
완벽한 하모니.
최고의 호흡이다.
케밥을 한 입 배 어물고, 안시의 햇빛과 바람을 즐긴다. 이렇게 얼굴피부와 햇빛의 기분 좋은 따끔함과 바꾼다. 그땐 몰랐지. 선글라스 주변만 빼고 빨갛게 익었다는 것을.
배가 불러오면서 슬슬 나른해질 즈음, 내 눈 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페달보트. 이것이야 말로 안시호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기구 아니냐면서 그녀를 설득한다. 서둘러 패브릭을 접고, 짐을 챙겨 페달보트 쪽으로 향했다.
30분에 16유로.
좋다! 이런 건 돈이 아깝지 않다.
멀리서 본 안시호와 안시호 위에서 보는 호수 풍경은 또 달랐다. 일렁이는 물결을 직접 느끼며 호수와 하나 됨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복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숙소 체크인 시간까지 안시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안시호를 따라 이어진 작은 운하는 이곳을 더욱 신비롭게 만들었고, 운하를 헤엄치는 백조와 오리들은 여기가 동화로 착각하게 했다. 이래서 프랑스인들이 은퇴 후 안시에 가장 살고 싶어 하는 것인가? 그리고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지역이 어딜까?’
시간이 지나면서 날씨가 꽤 쌀쌀해졌다. 하지만 나는 안시에서 하고 싶은 게 남았다.
바로 안시호에서 수영하기!
숙소 체크인을 하고 수영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미리 체크해 둔 수영스폿으로 이동했다. 해가 구름에 가려져 온도는 급격하게 내려갔다. 수영스폿 역시 몇몇 여행객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겐 ‘역시 나와 같은 동지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들이 너무 반가웠다.
옷을 주섬주섬 벗고 먼저 한 발자국을 안시호수에 발을 담갔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조금 더 과감하게 앞으로 향했다. 그리곤 배, 가슴까지 물에 담갔다. 마지막으로 다이빙! 알프스의 물은 너무 시원했다. 자유형과 평형을 번갈아가며 짧은 수영을 즐긴 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깨닫게 되는 현재날씨. 추웠다.
날씨가 더 좋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마저도 너무나 좋고 감사하다. 안시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안시를 사랑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가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안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잠시 내가 프랑스인이 된 거 마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