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헌팅이란, 저녁시간이 다가오면 일몰을 볼 수 있는 파고다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행위를 일컬어 부르는 말. 흡사 헌팅과 비슷하여 붙어진 말.
그렇다. 나는 현재 미얀마 바간에 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e-bike를 타고 일몰헌팅 중이다.
"오늘은 헌팅이 잘 안되네. 어디서 보지...
대부분의 파고다들이 잠겨있어."
원래는 바간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파고다에 올라갈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일몰시간이 다가오면 아무 데나 올라가서 보면 됐지만, 최근 지진으로 몇몇 파고다가 무너져 안전상의 이유로 대부분의 파고다를 잠가둔 상태.
우리는 계속되는 헌팅 실패로 낙담해있었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오늘 일몰은 날아가고 말 것이다. e-bike를 타고 무의미한 흙먼지만 날리고 있던 중 한 젊은 미얀마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내가 괜찮은 파고다 알려줄까?
뷰가 아주 기가 막힌 파고다를 2군데나 알고 있어."
분명히 우리에게 돈을 요구할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려
거절의 의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 청년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선 돈은 필요 없어.
하지만 나는 미술을 공부하고 있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
나중에 그림을 보고 괜찮으면 하나만 사주면 돼!"
그 말에 나는 흔들렸다. 왜냐하면 나는 전부터 그림을 살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림도 사고 파고다에서 멋진 일몰도 볼 수 있다면 일석이조 아닌가?
가격은 둘째치고 우선은 파고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첫 번째 파고다와 두 번째 파고다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길도 복잡했고 우리끼리 찾아가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현재 우리가 있는 두 번째 파고다에서 일몰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림을 골랐다. 그 청년은 거의 10,000짯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도 10,000원이 조금 안 되는 큰돈이었다. 조금 깎아보기도 해지만 오히려 불쌍한 표정을 짓는 청년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나이도 어려 보이고 사람도 괜찮아 보이던데... 그래 그냥 사자..!!
그런데 우리가 그림을 구매하고 있는 사이에 어디선가 사람들이 계속 오고 있었다.
'아니 여기 아무도 모른다며?'
벌써 괜찮은 자리까지 차지한 상태.
이 그림 청년도 난감해하는 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지 말라는 제스처까지 취하며.
조용히 일몰을 보고 싶었던 우리는 첫 번째 파고다로 장소를 옮기기로 결정했고, 길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를 데려다 달라고 했다.
다행히(?) 여기는 조용했고, 신발을 벗고 조심히 파고다 위로 올라갔다. (미얀마의 모든 파고다에 들어갈 때는 신발과 양말을 벗어야 한다)
드디어 조용히 일몰을 볼 수 있겠구나.
아니 근데 어디서 일몰냄새(?)를 맡았는지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몇몇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마 멀리서 우리를 보고 왔나 보다. 그렇게 한 두 사람이 몰리니 꽤 많아졌다. 이게 화근이었다. 파고다보완관(내가 지은 이름) 이 와서 당장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10,000짯을 내고 어떻게 알아낸 곳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내려오라고? 너무해...'
하지만 규칙은 규칙이니... 아쉬운 마음이 표정과 축 쳐진 행동으로 다 드러났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근처 거의 다 무너진 벽돌 위에 앉아 일몰을 감상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일몰헌팅은 이렇게 실패로 끝이 났지만 많은 이야기가 생긴 하루였다. e-bike를 타고 다니며 나만의 파고다를 찾는 단순한 하루의 반복이지만 그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는 그 어떤 여행지에서 보다 다채롭다.
나는 이게 바간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날리는 흙먼지들이 비록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나만의 파고다를 찾았을 때의 작은 기쁨. 살아간다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생기는 작은 기쁨. 그 기쁨 때문에 우리는 무의미함도 감수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 같다.
그리고 그러한 작은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비록 무의미한 것들이라고 해도. 어렵지. 하지만 어쩌겠어.
그게 우리 인생인걸.
그렇게 바간에서의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