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해는 떠오른다

여행 4일 차 /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by 떼오 Theo
띠리링리링---!
오늘따라 더 날카로운 알람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 호스텔에서 진행하는 선라이즈 투어에 제 이름을 적었어요. 조금만 더 뒤척이고 싶었지만, 늦어서 남들에게 피해 주는 게 싫어 10분 정도 일찍 일어나 화장실에서 세수만 하고 로비로 나갑니다. 안 그래도 이름이 SUN 인 사람이 늦으면 안 되지 않겠어요?


아직 어둠이 짙은 아침 5시 30분. 호스텔 로비에 앉아서 기다리니 한 두 명씩 사람들이 나오더니 전날 E-bike를 빌린 대여소 앞으로 나갑니다. 저도 눈치껏 일행에 끼여 밖으로 나갑니다. 기분 좋은 새벽공기가 자연스럽게 들숨으로 가슴속 깊이 들어갑니다. 사람이 꽤 모였네요. 인솔자로 보이는 분이 앞으로 나와 간단하게 브리핑을 합니다. 인솔자가 앞장서고, 그 뒤를 일자로 쭉 따라갑니다. 해가 뜨지 않은 새벽이기에 조심해서 천천히 이동합니다. 숨겨진 일출 포인트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꽤 험했습니다. 중간중간 양발을 이용해 E-bike의 중심을 잡아가며 천천히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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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처럼 보이는 곳 앞에 인솔자가 멈춥니다. 뒤따가던 우리들도 그곳에 멈춰 각자 위치를 알아볼 수 있도록 E-bike를 주차합니다. 적당히 높이의 언덕을 올라갑니다. 몸에 살짝 열기가 올라와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습니다. 점점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변합니다. 해가 뜰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을 보고 각자의 방식대로 일출을 기다립니다.


그때, 저 멀리 작게 보이는 사원들 틈사이로 강한 광선이 뚫고 나오더니 금세 우리가 있는 곳을 오렌지 빛으로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는 기다리던 해가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환호성과 더불어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어 이 순간을 담습니다. 저 역시 풍경을 따로 담기도 하고, 제 모습과 함께 담아봅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장면에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하지만 서양에서 온 분들은 차분하게 앉아서 사색하듯이 고요하게 감상하더라고요. 멋있어 보이는 건 꼭 해봐야 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들처럼 해를 바라보고 앉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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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손길이 바간 전체에 닿아 서서히 날이 밝아집니다. 주변에서 새소리와 함께 잔잔한 바람소리가 들리면서 온몸에 느껴집니다. 밤새 축축하게 젖어 있던 흙바닥이 해에 닿아 건조하게 말라 바람에 함께 날려 흙냄새가 풍겨옵니다. 감히 말하건대 바간에서 본 일출이 그 어디에서 본 일출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단지 해가 아름다웠던 것보다 이 순간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분위기에 흠뻑 젖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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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어느덧 강하게 뿜어내던 광선을 멈추고 존재감을 숨긴 채 이 세상 만물이 오늘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줍니다. 우리도 다시 숙소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다시금 일렬로 줄지어 인솔자를 따라갑니다. 일찍 일어난 탓에 약간의 피로가 몰려오네요. 도착하자마자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휴식을 취해봅니다. 사실 같이 조식을 먹던 친구들이 너무 말이 많아서 기운이 일찍 떨어진 저는 먼저 일어났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조금 눈을 붙이니 그래도 피로가 풀리더군요. 이후에는 딱히 큰 일정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E-bike를 타고 바간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볼 생각이에요. 몸의 힘을 빼고 여유 있게 바간을 둘러보면서 평범한 일상에 들어가 볼까 합니다. 이게 가장 큰 일정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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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에는 버마해로 흘러들어 가는 '이 라와디강'이 있어요. 그 강을 보며 브런치도 하고, 음료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더라고요? 그곳을 목적지로 정하게 오늘도 달려봅니다. (현재는 폐업을 했다고 하네요) 가는 도중에 귀여운 꼬마 아이들이 인사를 건네길래 잠깐 멈춰 그들의 눈높이에서 인사를 나눕니다. 몇 년 전 미얀마 해외봉사에서 만났던 학생들이 기억나네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이들이 순수하지만 미얀마 아이들만큼 순수한 친구들은 본 적이 없어요. 아쉬운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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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스트리트에서 벗어나서 꼬불꼬불한 길을 뚫고 나가면 비로소 드넓은 '이 라와디강'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앞에 자리하고 있는 '판타스틱 가든.' 네 맞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의 목적지예요. 강물 색이 탓한 편이지만, 그래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매력적입니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수박주스 하나와 미얀마 볶음면을 주문합니다. 개인적으로 미얀마 볶음면, 너무 괜찮더라고요. 태국의 팟타이 느낌도 나지만 그거보다 덜 달고 담백하면서 양도 많아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입니다. 너무 배불러서 바로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무리 같아 보입니다. 이를 핑계 삼아 충분히 휴식을 취해봅니다. 살짝 잠이 든 거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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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잠들다가는 그대로 잠들어 저녁에 돼서야 이곳을 벗어나게 될 것만 같네요. 정신을 차리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합니다. 바간에서 가장 오래된 파고다라고 알려진 '부파야 파고다'에 도착했습니다. 황금빛 돔이 인상적이네요. 그곳을 배경 삼아 웨딩사진을 찍고 계시는 커플도 보였습니다. 고전적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니 그분들의 포즈와 옷차림, 그리고 이곳의 배경까지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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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시간에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숙소에 들어가 보려고 해요. '정처 없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바로 옆에 마음에 드는 사원이 있더라고요. 그만큼 바간에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멋진 사원들이 많습니다. 이런 보물 같은 도시는 저만 알고 싶네요. 마음에 들지만 이름 모를 한 사원에 올라가니 타나카(미얀마 전통 선크림 : 타나카를 바른 여성이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한다)의 원재료가 되는 나무와 그 나무를 갈 수 있는, 우리나라로 하면 맷돌 같은 역할을 하는 돌판도 팔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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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이 들어 가까이 갔더니 체험형식으로 직접 갈아서 발라주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홀린 듯 자리에 앉아 얼굴을 갖다 됩니다. 나무를 갈아 가루가 되면 그곳에 물을 부어 진득한 형태로 만들고 적당량을 얼굴에 발라주더군요. 그리고 끝이 아니라 가느다란 막대기로 모양까지 만들어주었습니다. 저는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어주셨는데 타나카를 바르니 미얀마 사람들과 일원이 된 거 같아 좋았습니다. 기념품으로 작은 타나카나무와 돌판도 함께 구입했습니다. 인자한 미소를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어딜 가나 펼쳐지는 끝없는 사원과 함께 어울리는 인자한 사람들의 조화는 바간이라는 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언제까지 바간에 머무를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이곳을 느끼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의미로 내일도 호스텔에서 진행하는 일출투어를 해야겠습니다.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제 이름 'SUN'을투어명단에 적고 오늘 하루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