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사랑하지만 외로운 관계_정서결핍 (1)

by 이레 Ireh

함께 일하던 선생님과 점심을 먹으러 나간 날이었다. 오랜만에 여유가 난 시간이라, 근처 카페에서 천천히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은 결혼한 지 이제 8개월 차가 되었고, 주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결혼식 사진을 볼 때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아 보였고, 함께 찍은 일상 사진에서도 안정감이 묻어났다. 주말마다 남편과 여행을 다니고, 작은 기념일도 챙기고, 서로의 가족과도 자연스럽게 잘 지내는 듯해서 좋아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선생님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이레쌤… 나 요즘 좀 이상해. 남편이랑 잘 지내는데… 근데 외로워.”

허공을 멍하게 응시하며 선생님은 말을 이어 나갔다.

“남편이 나쁜 사람도 아니고, 진짜 성실하고… 나 챙겨주려고 하지만… 음… 그냥… 내 마음을 모르는 느낌? 같이 있는데도… 혼자인 것 같아.”


나는 선생님의 눈을 보았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실망한 것도 아니고, 딱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 같은 감정이었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지만, 마음 어디가 여전히 공허한 부분으로 남아 있는 사람의 표정.

“남편은 나한테 잘해. 근데… 감정 얘기를 하면 대화가 금방 끊겨. 내가 속상한 일 있으면 ‘그렇게 신경 쓰지 마.’하거나 해결책만 말해주고… 나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데, 그게 안 돼. 내 말을 들어주고, 내 불편함을 이야기하면 달래주는 게 부부 아니야? 나는 솔직히 내 마음이 공허한 걸 남편이 채워줬으면 하거든. 그러려고 누구를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하잖아? 근데 함께인데도 외로워.”

선생님은 정서적 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정서적 결핍은 사랑받고 있음에도 ‘감정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라는 느낌이 드는 상태다. 상대에게 과도하게 의존하거나 결핍된 부분을 배우자에게서 채우려고 한다. 이런 경우 외부의 부정적인 요인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

정서적 결핍은 상대가 실제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서 교류 자체가 빈약하거나 단절되어 있을 때 생긴다. 말은 하는데 공허하거나, 대화를 하는데 공감보다 해결책만 나올 때 그 관계에서 정서적 결핍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하루의 일과는 함께하지만, 속마음은 서로 점점 멀어진다.

그런 관계 속에서 사람은 어느 순간 이렇게 느낀다.

“사랑받는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허전해.”


정서적 결핍은 같이 있는데도 외로운 관계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정서적 결핍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사실 상대가 그저 무심해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사랑이 부족한 것보단 상대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을 수 있다. 정서적 결핍을 느끼는 사람은 부모에게 기대하는 것들을 부부사이, 연인관계에서 바란다. 그들은 상대가 그들의 모든 감정을 받아주고, 그들을 무조건 이해하고, 아픈 부분을 다 받아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는 부모가 아니다.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정서적 결핍이 결혼생활이나 연인, 친구관계에서 위험한 이유는 상대에게 내 부족함을 채워달라고 갈구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정서적 지지나 수용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어른이 되어 연인, 또는 부부관계에서 그것을 채우려고 한다. 어린 시절 감정을 충분히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일수록, 성인이 되어 관계 안에서 정서적 공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전에 울어도 달래주지 않는 어른들 사이에서 컸거나 감정을 표현하면 “그 정도 가지고 왜 그래?”라고 했던 환경,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며 지냈던 경험이 있다면 성인이 된 후에도 관계 속의 작은 정서적 단절을 크게 느낀다. 정서적 결핍은 결코 현재만의 문제라고는 볼 수 없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부모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관용과 이해로 베푸는 것인데 반해 부부나 연인의 관계는 성인과 성인이 만나는 관계이다.

즉, 한 사람이 무조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주기에는 그 사람이 힘들어진다.

이런 경우 상대가 버거워하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결핍을 받아주지 않으면 쉽게 실망하고 불필요한 갈등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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