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지쳐가는 사람(1)

by 이레 Ireh

내 친구 건후는 연애뿐 아니라 인간관계 전체에서 절대 화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자 친구가 서운하게 해도, 약속을 몇 번 어겨도, 연락이 늦어도 그는 늘 같은 말을 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건후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모두 인정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문제를 키우지 않았고, 상대가 불편할까 봐 조심했고,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눌렀다. 여자 친구가 짜증을 내도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더 잘할게. 오늘 많이 힘들었나 보다.”

겉으로 보면 다정하고 성숙한 남자였다. 주변에서도 늘 칭찬만 듣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건후가 힘들다고 했을 때 우리는 모두 놀랐다.

“얘들아, 나 요즘 좀 버겁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건후는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우리를 보고 건후는 말했다.

“나도 화날 때도 있어. 서운할 때도 있고… 근데 말하면 걔가 실망할까 봐 겁나. 그래서 그냥 덮어. 그러다 보니까… 이상하게 나만 너무 힘들어.”

그의 말에는 몇 년 동안 쌓여온, 말하지 못한 감정의 무게가 가득했다. 건후는 갈등을 피하려고, 상대를 이해하려고, 늘 먼저 양보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잘하려고 할수록 정작 본인의 마음은 더 고립되고 있었다. 여자 친구는 그를 ‘속 깊은 사람’, ‘배려심 많은 사람’으로 여겼지만 실제로는 건후의 감정이 어떠한지는 알지 못했다.

대화할 때마다 건후는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을 한 번쯤은 골라내고, 서운함을 느껴도 바로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는 진짜 속마음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감정을 꺼내지 않는다고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건후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쌓이고, 굳고, 무겁게 변하고 있었다. 한참을 말하던 건후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나 혼자가 된 기분이야. 나는 이해만 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걔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뭐랄까, 좀 힘드네.”

여자 친구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건후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려고 감정을 억누른 탓도 있었다. 착한 사람이라는 칭찬은 그를 따뜻하게 만든 게 아니라 그를 더 깊은 곳에 가두었다.

건후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나는 그가 왜 이렇게까지 감정을 억누르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감정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심리적 역사가 있다. 우리는 다음 장에서 그의 심리적 역사를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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