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더는 버틸 수 없을 때 나는 할머니에게로 도망쳤다.
“할머니. 제발 우리 좀 살려줘! 살려주세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 말이 가장 맞는 말 같았다.
멈춰달라는 말보다 살려달라는 말이.
할머니는 나를 보지 않았다. TV였는지, 벽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나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선이 내게 머무르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너무 길어서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생각할 정도로.
그때 할머니가 말했다.
“말을 안 들으니 맞지.”
담담한 목소리였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말하듯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뭘 잘못했더라. 내가 왜 맞고 있더라. 어떻게 뭘, 더 말을 잘 들어야 할까.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하지만 하나는 알 수는 있었다. 우리 편은 없다는 걸.
곧 머리채가 잡혔다. 두피가 당겨지며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시야가 흔들리며 천장이 대충 보였다.
“이게 도망을 가?”
아빠의 거대한 손이 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방으로 향했다. 내 몸은 바닥에 끌렸다. 발은 닿았다 떨어졌고 장판에 살이 스쳤다. 발버둥은 의미가 없었다.
나는 할머니를 봤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을까 해서. “그만해라” 그 한 마디를 혹시라도. 하지만 할머니는 그대로 있었다. 가끔 ‘쯧쯧’하는 혀차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방 안으로 끌려가면서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울어도 소용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잊기 시작했다.
어른에게 말하는 건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구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하루는 아빠가 실컷 나와 동생을 때리고 있었다.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아빠는 자신의 숨이 씩씩거릴만큼 매질을 했다.
그러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빠 이제 오지 말까? 아빠가 사라지면 너희 좋겠다? 다시는 아빠 안 보고 싶어?”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빠가 안 오면 할머니가 슬퍼할 것 같다는 생각.
뒤이어 아빠가 안 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슬퍼하는 할머니를 보는 게 마음아플 것 같다는 생각.
그래서 나는 울면서 말했다.
“저희가 잘못했어요. 청소 열심히 할게요. 설거지도 열심히 할게요. 아빠 가지 마세요.”
모순, 모순. 지독한 모순.
나를 때리는 사람을 잡아야 하는 아이의 마음은 설명할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질은 끝났지만
내 안에는 수치심이 남았다.
지워지지 않는 종류의.
그날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살기 싫다고.
안녕하세요, 이레 작가입니다.
역시나 이번 편도 조금 무겁네요. 쓰면서 늘 독자분들이 읽기에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장 큰 고민이면서도 동시에, 글을 너무 미화하면 사실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여 최대한 감정보단 상황위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