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by 이레 Ireh

남들이 말하는 사춘기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괜히 문을 쾅 닫았다. 그러다 할머니의 화가 쏟아질 것 같으면 창문도 안 열어놓고선, 바람이라며 어설프게 변명했다. 그때의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감정에 자주 붙잡혔다. 분명 아무 일도 없었는데 가슴이 답답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말을 많이 한 것처럼 축 늘어져 힘이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폐까지 닿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면 침대에 엎드려 이불 끝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천의 결을 따라 손끝을 움직이는 일만이 유일하게 나를 현실에 붙잡아 주는 것 같았다.


집 안에서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냄비 뚜껑이 닫히는 소리,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바닥을 끄는 발소리까지도 모두 나를 향해 오는 것 같았다. 그 소리들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면, 나는 모든 소리에 압도되어 질식할 것 같아 겁이 났다. 그래서 더 작아지고 싶었다. 말수를 줄이고, 몸을 웅크리고, 가능한 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자주 나에게 묻곤 했다.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만 버거워지는지.


답은 늘 없었다.

대신 질문만 쌓였다.

질문은 쌓일수록 더 무거워졌다.


밤이 되면 생각은 더 많아졌다. 낮 동안 흩어져 있던 감정들이 어둠 속에서 하나로 모였다.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으면, 낮에 하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하지만 아침이 오면 흩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밤에만 솔직해졌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에만, 마음속에서만. 유일하게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사춘기는 그렇게 나에게 왔다. 소란스럽지 않았고,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사춘기가 왔다고 누가 날 이해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집안에서의 매질과 폭언은 그대로였다. 학교에서의 일도 그대로였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외로운 사춘기를 나는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까만 밤에 사춘기란 녀석을 데리고 오롯이 혼자가 됐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왜 사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그려보면서.


사춘기가 왜 오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구는 성장통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호르몬의 장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이유를 알기엔 너무 바빴다. 하루하루를 버티느라, 마음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붙잡을 틈조차 없었다. 분명한 건 하나였다. 나는 그 시절, 여러 갈래의 감정에 동시에 휘말려 있었다는 것.


슬픔, 분노, 두려움, 외로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어느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 속에서 부딪히고 있었다.

감정의 폭풍을 온 몸으로 맞으며 나는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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