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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Nov 29. 2020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우리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를 읽고

앞선 글에서, 기업의 무책임을 힐난하고, 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럼 우리는? 기업들에게 모든 행동을 맡겨놓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가?


우리는 세상의 모든 공장과 발전소, 유통회사 등등을 거쳐 만들어진 모든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소비란, 요즘엔 물 쓰듯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모든 행동을 기업들에게만 맡겨놓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호프 자런의 「우리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우리의 역할을 비중 있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호프 자런은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를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한다. 바로 우리가 전세계 모든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세계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큰 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OECD 국가, 즉 선진국에 거주하며 깨끗한 물과 맛있는 밥,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호프 자런이 제시하는 데이터에 따르면, OECD 국가 국민들은 전세계 인구의 15%에 지나지 않지만 사용하는 연료는 전세계의 40%, 사용하는 전기는 전세계 생산량의 50%를 소비하고 있다. 그리고 배출하는 배설물이나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유기 폐기물의 경우, 전세계의 30%를 차지한다. 또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분의 1, 전세계 육류 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미국인이 육식 섭취량을 절반으로만 줄여도 1억 5천만 톤의 곡물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하니, 다름 아닌 '우리'가 절약하는 것이 전세계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서 꼬집는 건, 우리가 풍요로운 시대에,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마르지 않는 샘인 것처럼 여기며 펑펑 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소비하고 있고, 우리가 적당히 사용하면 꽤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호프 자런은 풍요를 나누지 못하는 우리를 책망한다. 문제는 지구의 유한함이 아니라 나눌 줄 모르는 우리의 무능함이라고. 미국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의 20%가 먹을 수 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2018년 전세계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기아의 수는 8억 2천만 명에 달했다는 이 대조적인 상황에서 통감할 수 있다. 특히 기후변화의 피해는 우리가 자원을 펑펑 써댄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피해가 더 클것이며, 고소득층보다는 저소득층한테 더 치명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지구를 사용하는 사람 다르고 대가를 받는 사람 다른 상황이다.


미래가 더욱 걱정되는 건, 우리가 위기 앞에서 뭉칠 줄 아는 존재라기보다는 불안해하며, 싸우고, 죽이고, 빼앗는 나약하디 나약한 존재들이란 것이다. 지금 이 풍족하고 평화로운 시대에도 나눌 줄 모르는데, 그 때라고 공존이라는 단어를 생각이나 할까.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르고, 나눌 줄도 모르고 펑펑 쓰고 버리면서 살고 있다. 우리가 이것만 멈춰도 지구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을까.



우리가 보통 지구를 지켜야 한다고 말할 때, 이 지구는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를 의미한다. 갑자기 땅이 뒤집히고 난리가 나서 인간이 멸종해도 지구는 지구다. 지금 우리가 외치는 지구를 위한 노력은 곧 우리를 위한 노력,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임을 실감해야 한다.


경기도에너지센터의 한 연구원분이 쓴 2035년의 미래 예측 보고서를 보았다.[1]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갈등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격화된 모습에 지금 이 모든 게 우리의 '책임'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신세대가 겪는 미래의 결핍과 재해는 지금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무엇이든 펑펑 써댄 우리의 잘못 때문일 테니까.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살게 된다면 그 결과는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직격탄으로 맞게 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우리를 원망하는 일밖에 없을 거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시도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때는 정말로 정말로 늦었을 테니까.



물론 기업의 광고 하나, 정부의 정책 하나면 우리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소비자의 힘을 믿고 싶고, 그러기 위해 글을 쓴다. 기업을 움직이고 정부를 움직이려면 더 많은 우리가 외쳐야 한다는 것, 그거 하나만 생각할 뿐. 우매한 대중이 되지 않고 똑똑한 소비자가 되자. 무엇이 문제인지, 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그리고 우리에게 얼마나 위험한지. 의류폐기물이 얼마나 많이 쌓여있고,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합성섬유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이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게 얼마나 우리 인체에 유해한지 알고 왁자지껄 떠들어보는 거다. 나무젓가락 100개가 모이면 부러뜨릴 수도 없지 않나.


어디서 본 아주 인상깊은 글이 있는데, 아무리 다시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 출처를 명확히 제시할 수가 없다. 어떤 멋진 말이냐면, 개인이 뭘 한다고 해서 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참여 없이는 그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결정적인 역할은 아니지만 배제할 수 없는 역할이다. 우리도 충분히 관심 갖고 움직여줘야 한다는 의미다.


업이 지속가능한 산업 구조를 형성하고 지속가능한 선택지를 확대하며, 정부의 현명한 환경 정책과 함께, 선진국의 소비자가 덜 사고, 덜 먹고, 덜 버린다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의 모습은 조금 더 연장될 수 있을까. 중요한 건, 함께 힘을 합쳐서 극복해야 한다는 것. '소비자가 해야 해', '제품을 만든 기업이 나서야지', '아니, 정부가 나서야지'와 같이 서로에게 책임 전가하는 말을 하려거든, 입을 닫고 지금 당장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자. 신이 실천할 수 있는 변화를 단 하나만이라도 실행해보자.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우리의 힘이 생각보다 클 거라는 것이다.






[참고자료]

호프 자런,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김영사. 2020년 9월

[1] 김성욱, "2035년 대한민국, 기후 디스토피아 미래 예측 보고서" 프레시안. 2020년 9월 16일

[2] "2018년 세계기아인구 8억2000만명 돌파…유엔보고서" 동아일보. 2019년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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