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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y 27. 2021

영화 <밤쉘> : 직장 내 성희롱의 폭로

※스포일러 주의



밤쉘Bombshell은 '폭탄선언, 몹시 충격적인 소식' 또는 '금발 미녀'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이 영화는 이 중의적 의미를 제대로 보여준다. '밤쉘'들이 나와 아주 충격적인 소식을 폭로하고 전달하기 때문. 특히 샤를리즈 테론은 '밤쉘'이라고 불리는 배우 중에서도 아주 상징적인 배우다. 제목의 의미와 상징이 이 영화를 더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메긴 켈리' 역, '케일라 포스피실' 역, '그레천 칼슨' 역



이 영화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다. 폭스뉴스의 창립 멤버인 로저 에일스 회장은 직장에서의 권력을 무기로 많은 여자 직원들에게 성희롱과 성폭력을 일삼아왔다. 로저 에일스는 여성 앵커의 다리를 드러내 시청률을 높인 걸로 유명하다. 여성 앵커의 가치를 다리에 둔 사람이었다. 커리어에 진심이었던 많은 여성들이 당했고, 참아야 했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 중, 그레천 칼슨은 참지 않았다. 해고를 당하자마자 로저 에일스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소했고, 숨어있는 많은 피해자들이 양지로 나와 함께하기를 바랐다. 용감한 움직임이었다.


한편,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인 메긴 켈리는 트럼프가 농담으로 남발하는 성희롱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대해 폭스뉴스의 지지를 받아 TV쇼에서 트럼프와 설전을 벌였는데, 돌아온 건 보수적인 대중의 조롱과 비난이었다. 생리 기간이라 예민한 거라고 비웃었고, 집을 염탐하기까지 했다. 폭스뉴스도 정치적 이유로 메긴 켈리를 지지했던 거라 메긴이 받는 부당한 비난은 나 몰라라 한다. 메긴은 점점 여성 앵커로서 받는 부당한 조롱과 위협, 부여된 역할에 불편해졌다. 심지어 메긴도 과거에 로저 에일스에게 성희롱을 당했던 전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리어를 위해 참았던 것이었다. 메긴은 그레천 칼슨의 고소를 보고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한다. 간판 앵커라는 자신이 이룬 노력이 헛되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이뤄놓은 게 많아 조심스러워 했다. 로저 에일스가 자신의 경력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해서 특히 더 그랬다. 하지만 사내에 피해자가 더, 그것도 아주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나서서 과거의 성희롱 피해를 밝히고 로저 에일스를 고소한다. 메긴의 고소 기사를 보고 그레천 칼슨은 환호했다. 그레천은 언제 좌절했냐는 듯 기운을 차리고, 결국  승소한다.


영화가 메긴 켈리와 그레천 칼슨을 통해 과거의 성희롱에 대한 반격을 보여준다면, 케일라라는 인물은 현재진행형인 사건을 보여준다. 케일라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의 (다듬어진) 민낯을 볼 수 있다. 이 끔찍한 상황에서 여성이 마주하는 굴욕, 수치, 분노, 죄책감, 좌절, 억울함, 괴로움, 자기혐오가 그대로 느껴진다. 케일라는 자신의 미래를 쥐고 있는 권력에 무너졌다.




영화에서 흘러가는 성희롱 사건을 보면서 여러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모두 한 데 뒤엉켜 시커먼 타르 덩어리 같았다. 감사하게도 직장 내 성희롱 경험이 없기에, 그 부조리함에 대해 구체적으로는 생각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감사한 일이다. 영화를 보며 직장 내 성희롱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기록해보려 한다. 


1. 마치 피해자가 자주적으로 성폭행 당하는 걸 선택한 것처럼 만들다. 커리어를 위해서 내가 선택한 거라고. 선택지를 부당하게 제한했다는 근본적인 원인은 생각하지 않는다. 왜 성희롱을 당하지 않고 커리어를 추구하는 선택지를 배제하는가? 다른 보통의 남자들처럼. 게다가 수직적인 상하관계에서 은근하게 (강압적으로) 건네는 제안을 쉽게 거절하고 판단력을 유지하기가 어디 쉬울까. 그것도 미래와 생활과 진로가 얽힌 커리어를 조건으로.

2. 심지어 피해자가 행실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탓한다. 커리어 아니면 성희롱 당하기 두 가지 선택지만을 들이밀어놓고, 나중에 따지면 피해자가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피해자를 성욕도 주체 못하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격하시키는 것 아닌가. 평소에는 성욕이 남성성의 상징인 양 자랑스럽게 드러내면서도 이 경우에만 발을 뺀다.  성희롱 피해를 외쳤을 때 피해자가 받는 이러한 시선과 낙인, 험담은 또 다른 가해다.


성별 떼고 다른 일로 생각해보면 명백하다. 회사에서 누가 내 지갑을 가져갔다. 근데 심지어, 그게 CEO다(현실성은 차치하고). 아주 상습적이다. 그런데도 어떤 불이익을 걱정하느라 털어놓지 못한다. 심지어, 계속 회사를 다니고 싶고 계속 이 자리를 유지하고 싶으면 지갑을 줘야 한다고 강요한다. 지갑을 훔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심은 덤이다. 그래서 용기를 그러모아 잘못을 폭로했는데,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회사에서 잘 봐달라고 지갑을 가져가달라고 했다는 거다. 또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격려와 동정은커녕 비웃음만 보내고 가해자 편만 든다. 이게 정당한가?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꼈으면 그건 장난이 아니라 성희롱이다. 인과관계에 직장이나 커리어 등등의 다른 조건이 끼어들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강요했을 때, 둘 중 한 사람이 무지하게 불편하다면 그건 잘못이다. 당한 사람이 스스로에 대해 의문을 가지도록 만들지 않았으면. 


3. 특히 안타까운 건, 이 부당한 기득권의 흐름에 너무나 적응을 잘 한 나머지 자신이 겪는 차별도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 로저의 아내가 그렇고, 로저의 덕분에 방송국에서 한 자리 꿰찰 수 있었다는 직원도 그렇다. 그리고 그 권력을 쥐고 있기에 메건 또한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미 성희롱을 당한 전적이 있었고, 트럼프와 대중의 성희롱에 분노하고 있었음에도 고민했다. 자신의 권력도 그들의 권력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업적이 그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이뤄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과 귀를 막기도 한다. 


4. 추가로,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이 검열의 목적으로 쓰인다. 메긴이 트럼프의 성희롱에 대해 방송에서 지적하려 할 때, 팀 동료는 묻는다. 너 혹시 페미니스트냐고. 이 질문, 꽤 많이 나온다. 왜 이 시점에서 페미니스트냐고 묻는 질문이 나오는 것이며, 왜 아니라고 '해명'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질문하는 거지? 보통 정치 성향을 묻는 질문은 일말의 적대감, 경계심, 긴장감이 어려있기 때문에 무례할 수도, 예민할 수도 있는 질문이다. 하물며 페미니스트냐는 질문에 어린 그 부정적인 시선은 얼마나 대놓고 적대감이 느껴지는지. 맞다고 하면 큰일날 것 같은 질문이다.





시대적 배경상(2016년일 뿐이지만), 또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엔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시원한 결말이 등장하진 않는다. 그레타는 성공했고 폭스뉴스는 피해자에게 배상했지만, 폭스뉴스는 여전히 남성 중심의 권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많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정말 감탄했던 장면이 몇 있다.

 



1. 니콜 키드먼이 운동하는 장면에서 겨드랑이에 땀이 흥건하다. 우아한 운동 따위는 없다. 예쁘게 레깅스 입고, 몸매가 강조되는 모습이 아니다. 투박한 머신에 목이며, 겨드랑이며 땀범벅인 운동하는 모습 그대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 보여주는 시선이 좋았다. 우리는 보통 여성의 겨드랑이, 여성의 털, 여성의 땀을 없는 취급하지 않는가? 깎고 밀고 뽑고 닦느라 아주 고생이다. 영화는 자연스러운 신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 마지막에 그레천과 메긴이 서로를 응시하는 장면이다. 그레천은 레스토랑 안에서, 메긴은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과 있다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각자 잔잔한 미소를 걸치고 서로를 바라보는데, 그 말없는 인사가 참 좋았다. 딱히 친밀한 사이 같지도 않고 반갑게 인사하지도 않지만, 같은 적에 맞서 싸웠던 동질감이나 유대감이 물씬 풍긴다. 이 느슨한 연대. 위 사진,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나란히 서있는 모습에서도 단단함이 느껴진다.


3. 마지막으로, 메긴이 성희롱 사건이 대해 고민하다 자신의 딸을 빤히 바라보는 장면이다. 울컥했다. 그 장면만으로도 메긴의 결심이 전해졌다. 자신의 커리어와 이미지 때문에 나서기 고민되지만, 바뀌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답을 알고 있고, 그게 분명하다. 나서야 한다. 지금과 같은 현실을 딸에게 물려줘서는 안 되고, 그러려면 자신처럼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 나서줄 필요도 있다고. 케일라와 같은 어린 직원들은 여전히 고통 받고 있고 딸의 미래도 순탄치 않을 것이 보이니까.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숭고하다. 




얼마 전, 5월 17일은 강남역 살인사건 5주기였다. 이 사건 이래로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대두되고 이에 대한 논란도 싸움도 얼마나 많았는가. 나도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싸우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고, 평소 알아채지 못했던 불평등이나 고정관념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맞지만, 뒤돌아보니 꽤 많이 걸어왔다는 생각도 든다. 예전에는 나도 정말 무지했기에, 함께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처럼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가는 세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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