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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Aug 11. 2022

<겨울왕국>과 <씨비스트>로 보는 자연에 대한 관점

겨울왕국을 정말 좋아한다. 내 핸드폰 배경화면은 아주 예전부터 엘사다. 얼음파도를 기어오르는 엘사, 마법을 좌우로 내뿜는 엘사. 노트북 배경화면도 엘사다. 소심하지만 용감하고, 나약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이 굉장히 멋있다. 마법 없이도 모든 걸 해결해버리는 안나도 멋있지만, 내가 언니 그런지 마법의 매력 때문인지 내겐 언제나 엘사가 최고다. 이만하면 겨울왕국 사랑은 충분히 말한 것 같다. 그런 겨울왕국에 정말 아쉬웠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엘사가 말의 모습인 물의 정령을 제압하는 장면이다. 정령과의 다이나믹한 싸움은 흥미진진했다. 엘사는 실패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러나 엘사가 물의 정령에 고삐를 씌워서 길들이는 장면이 등장한 순간, 이 싸움은 마법의 존재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되어버렸다. 고삐로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고삐는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고 활용해온 역사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말은 통제를 거부하고 날뛰지만 엘사는 굽히지 않았고, 결국 말은 순종한다. 자연을 인간이 통제한다는 인간중심적인 시각이 짙게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위치한 브로모 화산에 가본 적이 있다. 난생 처음 유황 냄새를 맡아보고, 분화구까지 슬쩍 보고 온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신기한 경험 사이에는 죄책감 한 덩이가 끼어있는데, 화산재가 가득 쌓인 초원에서부터 분화구에 올라가는 계단 앞까지 말을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5분에서 7분 정도 되는 거리였을 거다. 나를 태우고 움직이는 말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는 소리에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우고 오르내렸을까. 심지어는, 저 앞쪽에서 배가 부른 암말을 타고 이동하는 사람도 보였다.


이게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자연을 이용하는 것. 인간은 나약했고, 머리가 좋았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는 방식 또한 친절하지 않았다. 말의 숨이 거칠어지고 힘겨워할 때까지 이용하고, 임신한 암말까지 동원하고, 말이 기동력을 제공함에 고마워할 줄 모는 것. 적어도 엘사는 물의 정령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근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씨비스트(Sae Beast)>를 보았다. <씨비스트>는 말 그대로 바다괴물을 상대하는 이야기인데, 용감한 사냥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대손손 바다괴물을 잡아온 사냥꾼들이었고, 첫 장면부터 엄청나게 큰 바다괴물과 용감하게 싸운다. 초반에는 이들의 물 튀기는 액션을 시원하게 감상했다. 이 괴물은 상상 속 존재였고, 인간의 적이었고, 난 괴물의 죽음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에, 주인공 꼬마 아이 메이지가 바다괴물과 소통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메이지가 '레드'라고 부르는 빨간 괴물은 메이지와 제이콥을 구해주고, 도와준다. 바다괴물을 '악'으로 규정했던 정의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메이지는 '바다괴물은 무조건 죽여야만 하는 악한 존재다'라는 명제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바다괴물이 사람을 먼저 공격한 적이 없다면? 바다괴물이 알려진 것만큼 흉포한 존재가 아니라면?


영화의 끝자락에서 인물들은 바다괴물이 사는 건너편 바다에 배를 끌고 가서 헤집는 일은 그만두고, 그 곳을 미지의 세계로 남겨두기로 결정한다. 괴물을 이용하지도, 죽이지도 않고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씨비스트>는 무심한 공생을 이야기한다. 괴물들도 괴물들의 삶을 살고, 인간도 인간의 삶을 사는 무심한 공생이다.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닐까.




끝없이 펼쳐지는 단일농작, 인간의 입맛에 맞춰 길들이는 가축. 우린 이미 자연을 끝도 없이 이용하는 생활방식에 뿌리 깊이 적응했다. 정말 자연과 함께하려면 구석기 시대처럼 채집과 적당한 사냥으로 먹고 살아야 할 텐데, 요즘 누가 마트 두고 숲으로 산으로 망태기와 작살을 들고 나서겠는가? 우린 이미 늦었다.


하지만, 생각이라도 한번 해보는 게 어떨까? 우린 오랫동안 인간중심적 방식으로 자연을 대해왔고, 감사할 줄도 몰랐다고. 자연과 함께하는 방식을 이제라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이 생각이 별 것 없어 보여도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을 이룬 근간을 뒤흔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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