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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Feb 24. 2023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얼마 전, 혼잡한 지하철 역에서 "나는 이럴 때면 사람들을 다 쓸어버리고 싶어요."라는 말소리를 들었다. 살짝 웃으며 가볍게 꺼낸 말 뒤에 숨겨진 분노와 증오를 느꼈다. 그 웃음에는 군중 속에 본인도 존재한다는 자조도 섞여있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 다 없애버리고 싶다고. 지친 마음에 검열 없이 떠올리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생소했다. 저렇게 혐오감이 짙은 문장이었나. 나도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나. 타자화하던 대상이 내가 되는 순간이었다.

배척이 만연한 사회다. 고함과 짜증이 잦은 지하철은 매일 하루 두 번 이상 마주하고, 소위 말하는 인류애 잃는 순간들은 쉴새없이 등장한다. 정치와 지역과 성별... 우리는 모든 주제에서 둘로 나뉘어 열심히 싸운다. 어디서나 갑을로 나눠진 위계에 자신의 이득만 취하려 서로를 혐오한다. 비난과 비하와 비소가 가득하다. 심지어, 지구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우린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정을 탐구하면 필연적으로 폭력도 탐구할 수밖에 없다. 진화론적으로 다정해야 할 개체가 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느냐는 물음은 인류의 차후 방향을 알기 위해 가장 필요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의 폭력성이 타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로 나타남을 분석했다. 모든 혐오 발언은 비하와 연결된다. 대상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격하시킴으로써 죄책감과 도덕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똑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서로를 낮잡아 보면서 점차 폭력이 정당화되어간다.

그래서 인간이 다정하기에 자연선택되고 진화되었다는 저자의 연구 결과는 흥미로웠고, 희망적이면서 비관적이었다. 우리의 역사는 치열한 싸움의 역사이자 친밀한 협력의 역사였다. 세상의 양면성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내집단에 대해서는 한없이 다정하면서 외집단에 대해서는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존재라, 협력과 폭력이 뒤엉킨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다정이 선택된 이유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협력과 폭력 중 무얼 선택해야 하는지 보인다. 장기적 관점에서 친밀한 협력이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말은 모든 싸움이 무서운 나로선 반가운 명제였다. 착하기만 한 말을 효용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건 중요한 일이다. 순진한 소리 말라는 비웃음을 피하고 이해타산적인 입장으로 다가가며 현실의 언어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아직 인간에 대해 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 모든 싸움을 멈춰야 하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싸우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라 최대한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결론. 교과서적이라 더 어려운 개념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접촉'이다. 타 집단과의 접촉을 통해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교류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자발적 접촉이 아니라, 대중이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는 도시와 제도의 설계를 강조했다. 다양성이 보장되며, 대화와 협력이 활발한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의 면면을 바꾸어 가야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개인의 다정함이 모여 사회의 다정함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일상의 다정함을 실천하겠다 다짐하는 순간이다.

한편으로는 혼란스럽다. 요즘엔 무례한 사람이 될지언정 '호구'는 되지 말라는 세상이다. 세상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말들이 가득한데, 나 혼자 다정한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자기희생적 다정함이 아니라 장기적인 이득을 계산한 전략적 다정함을 말한다. 오늘의 베풂이 내일의 은혜로 되돌아올 수 있음을 상기하는 것이야말로 상부상조의 현실적인 방법론일 것이다. 실제로 친밀한 관계를 통해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기대할 힘이 생긴다. 승리감과 우월감은 얕은 짜릿함을 건네겠지만, 배려와 연대는 깊고 따뜻한 충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생략)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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