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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r 18. 2023

마키아벨리,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인간, 특히 대중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다. 인간은 규칙이 없다면 악행을 일삼을 것이기 때문에 군주의 잔혹함이 상황에 따라 꼭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적당히 덕 있고 유능한 모습을 보이며 존경받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군주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최선보다 차악을 주저없이 선택하는 결단력이 군주의 자질이라 보는 것 같다. 다른 사상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과연 인간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을까?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인간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가'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내 머릿속엔 꽃밭만 있는데, 그래서 세상에 감탄하고 인간에 대한 기대를 갖고 싶은데, 이 현실적인 조상님(?)이 냅다 물을 뿌렸다. 그런데 수긍은 간다.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단 한 번의 잔인한 처벌도 비도덕적인 일이 되겠지만, 군주이기 때문에 다수를 살리기 위한 소수의 처벌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의 통치를 맡은 사람이 짊어져야 할 책임을 단호하게 짚어준다. 


이 비관적인 조상님은 세상이란 원래 하나의 어려움을 피하면 또 다른 하나가 찾아온다고 말한다. 우린 그저 가장 나은 선택을 해야할 뿐이라고. 최선보단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 말하는 것 같다. 근데 지금 내 상황에 너무나 공감이 된다. 일에 허덕이고 압박감을 느껴가며 일정한 금전을 수혈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자유와 여유를 만끽하되 수입 없는 불안정함을 감당할 것인지... 눈앞에 놓인 선택지가 둘 다 무자비해서 차마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직장생활을 하며 나를 지키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이 뻔뻔함과 책임전가라는 사실에 회의감을 느껴왔다. 마키아벨리식으로 해석하면, 내 세상에서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해, 즉 나를 잘 다스리기 위해 나는 가끔의 악함도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거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지 않았나... 마키아벨리라면 선량한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끔은 남을 탓하고 바보 취급하고 비웃는 것 정도는 쉽게 옹호할 듯하다. 믈론 이것도 속으로 몰래몰래 꺼내겠지만.


군주론에는 군주가 충성스런 신하를 어떻게 대우해줘야 하는지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걸 읽으니 더 묘해졌다. 마키아벨리는 부와 명예를 갖춰주어야 한다 말했지만, 그게 보장되어도 사람을 굴려도 너무 굴리면 없던 충성심도 사라지는 게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를 살리겠다는 숭고한 의지를 담아 무려 군주에 대한 이론을 펼쳐갔는데, 이걸 읽고 정말 개인적인 상황에 빗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나라를 통치하게 위해 치열하게 사는 군주나, 삶을 이뤄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개인이나 다를 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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