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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r 18. 2023

김희준,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2022. 11. 29


고 김희준 시인의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드디어 다 읽었다! 근데 시집을 다 읽었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팔랑팔랑 종이를 다 넘겨보았다는 뜻에 지나지 않을 듯. 페이지를 넘기는 데 순서가 없는 유일한 장르가 아닐까. 나름대로 문장을 깊이 감상해가면서 읽으려했는데, 나는 원체 조급한 사람이라 금방 와닿지 않는 표현들은 재빨리 삼키기도 했다. 그래서 더 완독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뒤적여보면서 또 다시 감상하면 되니까! 책갈피를 꽂지 않은 바람에 읽었던 시를 다시 읽게 될 때도 되게 새로웠다. 마치 읽지 않았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이 시인을 알았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 영어로 번역이 되어서 노벨문학상을 탔으면 좋겠다. 그만큼... 표현 하나하나가 주옥 같다. 우리는 세상을 단면만 보고 살고, 이분은 한 칠차원의 세계에 사는 듯... 아름다운 표현도 많고 마음이 저릿하게 되는 표현들도 있고. 기껏해야 사람 사는 이야기일 텐데 어떻게 이렇게 특별해지고 애틋해질까?


미친듯이 감탄했던 몇 개의 구절을 적어놓아보겠다. 

    잘 때만 가벼워지는 몸을 모서리라 부르자 (48)  

    반지하는 오후의 결이 불온한 곳이었다 (68)  

    둘러앉은 식탁에서 우리는 비어버린 가족과 허기진 소통을 나누어 먹지 (70)  

    소나기는 광기를 동반한 서정이다 (90)  

    무거워진 마음은 목도리를 벗게 하고 / 우리는 함께 겨울 바다에 갇혀야 할 명분을 얻기도 했다 (94)  

    붓끝으로 시대를 쓰고 싶은 충동을 섞는 당신 (106)  

    한 음절씩 아껴 부르다가 내 안을 모두 내어주게 되는 일 (112)  


그런데 이렇게 토막 내서 가져다놓으니까 김이 팍 샌다. 이 자체로도 너무 감탄이 터져나오는 문장이지만, 시를 통째로 보았을 때, 특히 종이에 활자가 인쇄된 질감으로 감상했을 때 더 제대로, 깊숙이 다가올 것이다. 제발 통째로 읽어줘...


아직 책꽂이에는 『행성표류기』도 남아있긴 하지만, 새롭게 이어지는 작품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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