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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r 18. 2023

천선란, 『노랜드』

어김없이 재밌게 읽었다. 갓선란.


단편집인데, 모든 탁월한 작품 중 내 심금을 울렸던 작품은 다섯 개. 갓선란 님의 작품은 고르고 골라도 내 손가락 다섯 개는 꼬박 채운다.

흰 밤과 푸른 달

바키타

푸른 점

우주를 날아가는 새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노랜드'는 점점 터전을 잃어가는 우리가 맞이할 미래의 면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곳엔 더 이상 인간의 모습이 아니게 된 인간이 있었고, 상황에 따라 진화한 인간도 있었고, 우주 밖으로 향하는 인간도 있었다. 그리고 외계의 존재와 싸우는 인간도 있었고. 


그 여러 상황 속에서도 빛나는 건 하나의 존재와 또 다른 하나의 존재가 함께 인연을 맺고 교감하는 이야기들이다. 사람은 사는 곳이 없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고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한창 열심히 공부하던 그때 세월호가 침몰했다. 나와 동갑인 아이들이 차가운 바닷속에 스러지는 참혹한 아픔 속에서 나는 덧없음을 달래야 했다. 인생의 덧없음을, 내가 앞둔 수능의 덧없음을. 그래서 생존의 목적과 이유를 찾아야 했다. 이 세상 모두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아이들까지 모두가 평등하게 찾을 수 있는 인생의 진리를. 내가 찾은 정답은, 세상에서 가장 형평성 있는 가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삶은 그런 순간들로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존재가 서로 이어지는 순간들 말이다. 내가 당신이 절대 될 수 없듯 우리는 서로 끊어진 존재인데, 굴하지 않고 서로 교감하며 이어지고 있지 않나. 서로 지독하게 엮인 명월과 강설도, 진화하지 않은 인간과 진화한 인간이 만났던 찰나도. 멀어지는 지구에 경례하는 사람들은 지구에서 누군가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것이고, 효원은 효종스님으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살았고. 이인은 두려움에 떠는 외계생명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 존재를 정면으로 직시했고, 그것은 이인에게 보라색 꽃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바쁜 생활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요란하게 코를 고는 사람에게 눈을 흘겼고, 식당에서 만난 퉁명스런 직원에게는 덩달아 퉁명스럽게 대했다. 『노랜드』에서 본 여러 미래는 어느 정도의 폐허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 폐허 속에서도 빛나는 교감은 내가 일상에서 놓치는 부분을 비췄다. 다정한 교감이 주는 소소한 행복에 최대한 신경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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