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ong for the Ride
종종 상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감이 안 잡힐 때가 있다. 분명 이름을 아는데도 말이다. 결국 직업이나 직책에 따라 기사님, 사장님, 선생님과 같은 명칭을 찾아낸다. 우리의 이름보다도, 우리의 역할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니. 우리는 역할에 갇혀 있다. 그래서 역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더 선명하게 나누는 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벅차오른 장면은 빅토리아와 하이디의 대화였다. 주인공 오든의 입장에서는 친모와 계모가 된다. 오든의 아빠 로버트의 입장에서는 전 아내와 현 아내. 빅토리아와 하이디만 놓고 보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친밀한 대화가, 친모와 계모 사이, 전 아내와 현 아내 사이가 되는 순간 요상해진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두 여자의 만남은 왜 생소해야 하는 걸까.
하이디는 홀로 육아에 파묻혔다. 무심함을 넘어서 무책임한 로버트 때문이다. 하이디는 고통스러워했고, 오든은 엄마 빅토리아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하이디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빅토리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이디와 같은 고통을 먼저 겪고, 싸우고, 극복한 빅토리아는 하이디에게 조언과 격려의 말을 잔뜩 건네주었다. 로버트를 사이에 두고 어정쩡한 적대감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빅토리아와 하이디는 그렇지 않았다. 전 아내와 현 아내 사이의 적대감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껍질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한 꺼풀의 껍질만 벗겨내면, 그 안에 다채로운 개인이 숨어있는데. 빅토리아와 하이디는 껍질을 신경쓰지 않고, 그 안의 개인을 직시했기 때문에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었다.
이 영화의 골자도 착실한 학생, 의젓한 딸이라는 역할에 파묻혔던 오든이 그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다. 오든은 규칙과 의무에서부터 벗어나는 일탈을 조금씩 시도하고, 유연한 세상으로 나아간다. 해방이다. <나의 해방일지> 덕분에 한동안 유행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던 단어였는데, 이 영화는 ‘해방’이라는 단어를 한번도 언급하지 않고도 ‘해방’을 이야기한다. 역할과 지위로부터의 해방, 의무로부터의 해방, 명칭으로부터의 해방. 여름밤 바닷가 마을이라는 영화의 배경과 어우러져, 시원한 공기가 해방감과 함께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