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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Apr 17. 2023

넷플릭스 드라마 <퀸메이커> : 여성 정치 서사 분석

여성이 주인공인 정치 드라마다. 제목과 예고편에 홀려 이틀만에 모두 감상했다. 다섯 개의 단락으로 이 작품을 찬양하고, 하나의 단락으로 비판해보겠다.



여성의 스토리 점유율

여성이 거의 모든 주역을 차지한 작품이다. 퀸이 되는 사람도(오경숙), 만드는 사람도(황도희), 그걸 막는 최종 빌런도(손영심) 여성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조연일 뿐이다. 특히 선거 대결 구도에서 상대자(백재민)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빌런의 수하로 위치한다. 백재민을 킹으로 만들 킹메이커(칼윤) 또한 여성 빌런의 아랫사람일 뿐이다. 오경숙의 경우 옆에 신체적으로 우수하고 무력을 쓰는 젊은 남성(윤동주)이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오경숙은 그 무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드라마 속에서 재계를 구성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최종 빌런 손영심 슬하에는 두 딸이 있으며, 경영권 승계를 위해 서로를 견제한다. 경영권 승계에는 관심이 덜한 남자 형제가 있다면 그들의 야망이 더 돋보였겠으나, 이 집안엔 우리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주는 사위(백재민)가 있다. 은성그룹 오너 일가의 유일한 남성이지만, 가장 천대 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또, 황도희가 경쟁자 세력을 꺾기 위해 만나는 또 다른 재력가 천 회장도 여성이다. 이 정도면 여성 배우의 화면 점유율이 궁금하다. 분명 이 드라마에서만큼은 남성 배우보다 높을 것이다.



애주가와 애연가로서의 여성

여성이 화면을 차지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첫째, 술을 자주 마신다. 주종은 소주이거나, 양주다. 보통 남성이 자주 점유했던 술들이 아닌가. 황도희는 오경숙과 대화할 때 소주를 마시거나, 누가 봐도 위스키 같은 네모난 힙플라스크 통으로 술을 마신다. 또 그는 사무실 캐비넷에서 ‘레미마틴 XO’처럼 동그랗고 고급스러운 유리병에 담긴 양주를 마신다. 술은 3분의 1 정도만 남아있고, 이미 잔뜩 마신 흔적이 있다. 술을 즐기는 여성이다.


둘째,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여성들은 모두 담배를 피운다. 황도희, 오경숙, 손영심 모두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한 번 이상 등장했다. 보통 거리에서 여성이 흡연하면 문란하고 불쾌하다는 시선을 받는다. 즉, 사회적 지위가 낮고 심지어 성적으로 난잡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주입된다. 반면 이 작품에서 흡연하는 여성들은 사회적 지위가 매우 높고, 지적이며,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 흡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했고, 남성의 전유물인 소품을 빼앗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심지어 칼윤은 손영심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기도 한다. 지금껏 매체에서 보여주었던 구도를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장면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든다. 여성이 기존에 남성의 공간이었던 곳에 뛰어들 때, 꼭 남성의 소품을 활용해야 할까? 각 잡힌 수트를 입음으로써 오히려 기존에 ‘남성적으로’ 여겨진 측면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회의원 류호정이 원피스를 입고 등장했던 날이 떠오른다. 중년 남성의 공간임을 강하게 상징하는 수트를 거부함으로써 국회의 배타성을 드러냈다. (이 생각 또한 수트가 남성성을 상징한다는 고정관념일 수 있으나, 오랜 역사 동안 남성 복식의 형태였으므로... 물론 이젠 수트가 남성의 전유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도 맞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에 '여성적'이라고 여겨진 것들을 우리가 모두 배척해야 할까?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여적여’ 구도로는 설명될 수 없는 적대관계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구도를 감각적으로 비틀었다. 국지연과 손영심을 생각해보자. 국지연은 황도희를 넘고 싶었고, 황도희는 손영심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이들은 오로지 서로를 증오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적대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장면이 있다.


우선 황도희와 오경숙을 응원하는 시청자 입장에서 국지연은 싸가지 없는 소리만 내뱉는 밉상이지만, 황도희는 국지연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는 국지연을 공격하려기보다 걱정하고 보호하려 한다. “걔가 정말 위험한 게임을 하는구나”라는 이차선의 말처럼, 국지연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후배일 뿐이다. 결국 황도희는 국지연을 살리고 올바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


손영심은 황도희를 개로 취급하고, 서슴없이 잘라낼 만큼 그를 크게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황도희가 히아신스를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것을 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관심 있게 여기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만한 것들이 아닌가. 손영심과 황도희가 마지막으로 마주한 날, 손영심은 날이 춥다며 황도희의 스카프를 여며준다. 이 장면은 오경숙이 자신의 동지였던 김화수에게 목도리를 여며주는 장면과 겹쳐진다. 그때 김화수는 오경숙을 배신했고 되려 오경숙을 비난하며 모진 말을 쏟아냈지만, 오경숙의 태도는 따뜻하다. 물론 둘의 감정적 연결은 대조적이지만, 손영심도 자신이 아꼈던 황도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이다. 적대적인 구도지만, 적대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관계다. 어떠한 맥락 없이 무조건적인 적대 관계를 표현하는 ‘여적여’ 구도와는 사뭇 다르다. 이 여성들의 복잡한 관계가 여성이 맺는 인간관계를 더 다채롭게 비춰주는 것 같아 반갑다.



여성의 일과 삶

여성의 삶이 일과 교차하는 모습을 비춘다. 먼저, 오경숙은 적극적으로 일하는 엄마다. 아주 서툰 모습으로 칼질하는 오경숙의 모습은 집안 유일의 여성임에도 일에 파묻혀서 살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엉망이 된 부엌을 익숙하게 정리하는 남편의 모습은 그가 오경숙의 일을 항상 존중하고 지지하며 집안에 남았다는 뜻이다. 언제나 남편과 자식의 삶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이었던 ‘엄마’가 남편과 자식의 지지를 받고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임신과 출산의 후유증에 대한 담백한 언급이 눈에 띈다. 산후조리를 잘못해 다한증이 생겼다는 오경숙의 말. 일하러 바깥에 나서는 활동적인 여성이지만, 동시에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신체적인 경험은 오경숙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은성그룹 막내딸 은채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열정적으로 백화점을 경영해온 인물이나,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탈모를 겪는다. 물론 은채령의 경우 위기를 모면하려는 변명일 수 있으나, 변명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탈모가 산후 후유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탈모와 다한증은 보통의 남성들도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임신과 출산이 갑작스러운 몸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 결과로 일상에서 큰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남성도 공감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장되었다.



‘배신’한 여성을 처벌하지 않는다

배신자가 여럿 나온다. 먼저, 오경숙의 운동 동지 김화수는 오경숙과 겨루는 서민정 후보의 꾐에 넘어가 거짓 증언으로 오경숙을 곤란에 빠트린다. 그러나 오경숙이 그를 탓하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김화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오경숙을 깎아내리는 대사를 던지지만, 오경숙은 그 말에 집중하지 않고 김화수를 두둔한다. 이후 김화수는 오경숙이 국민적 비난을 받을 때 운동 동지를 이끌고 선거 캠프를 지킨다. 분노는 재생산되지 않고, 더 강한 연대가 생겼다.


다른 배신자, 선영은 오경숙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지만 은성그룹 코스메틱 파트에 자리를 약속 받고 칼윤에게 중요한 정보를 넘긴다. 선영 때문에 토론에서 활용할 히든카드가 유출되며 계획이 꼬이지만, 선영의 존재는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오경숙과 황도희는 배신자를 축출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문제해결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가 하루이틀 남은 시점에서 스파이를 뽑아내는 게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선영의 이후 행보를 상상해보자. 칼윤의 장면은 죽음을 암시하는 대사로 마무리된다. 아마 선영은 자신이 한 일을 오경숙에 고백하고, 결국엔 스파이도 감쌀 아량이 있는 오경숙을 위해 일하지 않을까. 선영은 스파이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선거캠프에서 참여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며 열심히 일했다.


이 드라마는 연대를 열심히 강조하지만 그 연대에는 구멍이 있다. 하지만 그 구멍도 안고 가는 모습이 연대를 유지한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랬다. 연대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끊어지더라도 이어붙이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마지막, 이 서사의 비현실성이 아쉽다.

드라마를 감상하며 여성의 활약과 연대에 환호했지만, 동시에 피로했다. 악역이 지나치게 악하여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악역의 사악함이 지나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 되려 픽션이라는 점이 도드라진다. 황도희와 오경숙의 활약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임이 강조되는 것이다. 여성의 능력과 활약을 보여주기 위해서 상대 남성은 형편없는 도덕성과 무능함을 지녀야 하는가?


오경숙과 백재민의 대결은 정치의 본질에서 벗어난 싸움이었다. 아니, 오히려 현실과 닮아있는 싸움이라 씁쓸했다. 정치적 능력과 사회문제에 대한 가치관을 확인하며 건설적인 논의를 구성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도덕성만을 들추고 깎아내리는 것에 급급한 싸움. 물론, 정치인에게 도덕성은 중요한 문제가 맞지만, 왜 유독 선거기간에만 더 중요해지는가?


만약 백재민이 훌륭한 정치새싹이자 건실한 청년이었다면 어땠을까. 백재민의 사악함과 잔인함으로 오경숙과 황도희가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백재민의 충분한 능력과 도덕성으로 건강한 겨룸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 동시에 한국 남성으로서 가지는 가치관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들의 충돌이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백재민은 남성의 입장을 대표하고, 오경숙은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만들어나갈 수는 없었을까.    






이 드라마는 히어로물이다. 노동자의 편에서 울고 웃고 분노하는 정치인 오경숙은, 세상을 구하는 아이언맨과 다를 바 없는 히어로다. 비현실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 비현실 속에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있다. 예를 들어, 오경숙의 포스터와 당색은 모두 보라색 톤이다. 서민정과 단일화하기 전에는 분홍색으로 활동했으나, 유일한 여성 후보가 된 이후로는 보라색이 눈에 띄게 등장한다. 보라색은 페미니즘의 상징인 색이다. 또한 빨간색과 파란색의 혼합색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오경숙에 선거 유세 대사 중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남과 여, 강북과 강남 등 모든 걸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구도에 지치지 않았냐는 물음이 등장한다. 보라색은 화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에도 보라색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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