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이 모여 대화한 후에 적는다.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부당한 구조를 통찰력 있게 제시했다. 평소에 쉽게 느껴온 것뿐만 아니라, 미처 자각하지 못한 것까지 꼼꼼히 드러냈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당함의 깊이와 너비를 실감했다. 사회 체제라는 건 이렇게 소리소문 없이 흡수되고 수용되는 거였다.
다만, 우리가 공통적으로 느꼈던 아쉬운 점은 구체적인 대안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공감할 만한, 그리고 깨달을 만한 문제점들은 구체적으로 서술했지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혼란에 대한 답을 찾고자 책을 들었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저자가 지리학자인 만큼 연구와 실무를 통한 힌트를 얻을 수 있길 기대했기 때문에 대안의 부재가 유독 허전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강점을 꼽자면,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다. 저자가 북미 국가에서 백인으로서 살아간 덕분에 얻은 안전과 편리는 분명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평소에 뚜렷하게 떠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거리에서 튀지 않았고, 덕분에 (여성성을 제외하고는) 불편한 시선을 받지 않았다.
독서모임에서는 각자의 다양한 경험을 나눴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독서모임이라 당연히 여성으로서의 부당한 경험을 열정적으로 나누었다. 다섯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주제고, 평소에 치밀하게 느껴온 불편과 분노였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술한 여성으로서의 경험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겪은 일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주입된 공포, 우정으로 다져진 자연스러운 연대, 불편한 화장실까지.
색다른 건 우리가 기득권에 속하기 때문에 얻는 이득 또한 들춰보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잠깐 휠체어를 타게 되었던 경험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들을 갑자기 마주하게 되었고, 비장애인으로서의 비가시성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 교육을 잘 받은 사람으로서의 혜택은 문제를 인식하고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는 경험의 결이 달라진다는 것을 뜻했다. 또 수도권은 지방보다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더욱 적극적이었고,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 또한 다수였다. 지방에서는 페미니즘을 언급하면 눈에 띄었고, 이는 논의가 소극적으로 이루어지는 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무렇지도 않게 애인을 ‘남자친구/여자친구’라고 언급할 수 있는 이성애자의 편리 또한 권력구조였다.
이렇게 우리가 약자로서 겪은 경험과 강자로서 겪은 경험을 모두 꺼내놓고 보니, 작가가 글 전체에서 강조하는 ‘교차성’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드러났다. 우리는 항상 약자의 위치와 강자의 위치가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고, 우리의 경험은 모든 성질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여성에 대한 논의만 해서는 이 복잡다양한 사회구조를 제대로 뜯어볼 수 없다. 페미니즘이 다양성에 대한 논의로 확장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여성이 주변화된 집단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난 모든 소수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미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도시를 어떻게 바로 세울 수 있을까. 우리가 주목한 개선점은 “여성을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을 위한 도시가 없는’ 건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에서 여성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여성이 정부기관, 기업,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 분포하고, 점차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안은 아니지만, 천천히, 아주 깊은 곳까지 여성이 침투할수록 단단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여성이 일터로, 사회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