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피티의 세계는 뱅크시로 끝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벽에 낙서하고 혼났던 기억이 있는가? 벽은 별도의 허락 없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낙서해서는 안 되는 공간이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리에서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거리에서 종종 마주하는 그림이 있다. 바로 ‘그래피티’다. 그래피티는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이젠 익숙한 개념인데, 그래피티가 전달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금지의 구역인 벽에 그려진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뱅크시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기 위해 글을 시작한다.
'그래피티(graffit)'의 어원은 '벽면을 긁어서 새긴 그림이나 문자'로, 현대의 그래피티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벽에 그린 그림 또는 문자를 의미한다. 그래피티는 불법적인 낙서에서 출발했다. 반달리즘(vandalism)으로, 좁게는 문화재, 넓게는 공공재산이나 타인의 사유재산을 훼손하는 행위에 해당했다.
그래피티는 196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가, 1970년대 뉴욕 브롱크스 거리에서 널리 확산되었다. 주로 공공장소나 사유지에 무분별하게 그려져 불법행위로 여겨졌다. 미국 갱들의 영역 표시를 위해 쓰이기도 했고, 반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탓에 그래피티가 가득 그려진 거리는 범죄의 온상지처럼 여겨지곤 했다. 심지어 1990년대 뉴욕에서는 그래피티를 지우고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그래피티는 뱅크시의 작품처럼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버려진 도시의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 데 활용된다. 범죄가 발생할 것 같은 으슥한 뒷골목, 또는 범죄 그 자체와 연관되었던 그래피티는 도시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상징이 되었다. 그래피티는 어떻게 이미지를 바꿀 수 있었을까.
그래피티는 이제 ‘거리예술(street art)’이라고도 불리며, 프랑스에서는 ‘도시미술(art urbain)’로 불리기도 한다. 즉, 거리 또는 도시라는 장소와 관련성이 깊은 예술로, 그래피티는 이 관련성을 활용해 도시와 지역에 특별한 맥락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그래피티가 예술의 지위에 오르며 크게 주목 받은 기능은 두 가지다. 첫째, 버려진 공간을 회생시킬 수 있으며, 둘째, 도시와 지역에 얽힌 사회적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다.
우선 그래피티는 키스 해링과 장 미셀 바스키아를 거쳐 어엿한 예술로 인정 받기 시작했다. 여기서 그래피티에 얽힌 부정적인 인식이 한풀 꺾여나갔다. 낙서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대중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그래피티는 도시 미관을 개선하는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버려진 공간을 탈바꿈시키기 위해 낡은 거리에 색을 덧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브루클린이 대표적인 사례다. 낙후된 공장지대였던 브루클린은 그래피티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이 모이고, 그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도시가 다시 성장했다.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에 도시 재생이 시작되고, 그래피티는 예술가를 집중시키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내에도 여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군산 해신동이나 대구 대명동 등 전국 곳곳에서 그래피티를 활용한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했다. 낙후된 건물이나 골목길을 그래피티 벽화로 채우는 것이다. 지역 주민의 동의를 얻고, 거리에 어울리는 그림을 고민해 그래피티를 그렸다. 이는 오래된 동네에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관광객의 유입을 이끌 뿐만 아니라, 지역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하고, 새로운 예술 현장을 마련했다.
인천 중구에서 진행한 개항로 프로젝트가 특히 눈에 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인천의 구도심으로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개항로 일대를 복원하고자 시작된 사업이다. 2020년, 프로젝트의 일부로 특별 전시회를 진행했는데, 광복 75주년을 기념하여 개항로 음식점 10곳에 독립운동가 그림을 설치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14명의 위인을 그린 그래피티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개항로 프로젝트의 전시회는 구도심 상점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고, 청년 예술가의 참여를 이끌어냈으며,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래피티는 하위문화의 한 장르로서, 도시에서 소외된 자들이 목소리를 표현하던 방식이다. 반사회적인 맥락에서 출발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 도시와 지역에 얽힌 사회적 문제,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냈다. 특히 뱅크시를 거치며 그래피티는 사회 문제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대담한 장르로 주목 받았다. 뱅크시의 작품은 현우주 에디터의 글 “Artist of Terrorist”에서 잘 확인할 수 있으니, 이번에는 국내 그래피티 아티스트의 작품을 살펴보자. 국내에도 뛰어난 작품을 그리는 아티스트가 많다. 해외에서 시작한 문화지만, 한국 그래피티 아티스트들도 그들만의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심찬양 작가
한복을 입은 흑인 여성/여아의 그림으로 미국에서 유명세를 얻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심찬양 작가의 작품엔 흑인, 백인, 아시안, 혼혈 등 다양한 인종이 등장한다. 또 한복과 한글, 사물놀이를 비롯한 한국 문화가 등장한다. 흑인과 백인이 한복을 입고, 한글과 함께 배치된 모습은 조화를 강조하는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담고 있다. 심찬양 작가는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릴 뿐만 아니라 동서양 문화를 잇고, 다양성 존중의 의미를 전한다.
LAC 그래피티 스튜디오
그래피티 아티스트 레오다브, 헥스터, 다솔로 구성된 LAC 그래피티 스튜디오는 2019년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광화문 일대에서 독립운동가를 그린 그래피티를 전시했다.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의 얼굴과 이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역사적 위인을 액션 영화의 슈퍼 히어로처럼 멋있게 표현해내며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고 싶었다는 의도가 흥미롭다. 그래피티로 표현된 위인들의 모습이 색달라 눈길이 갔다. 한국의 그래피티는 한국의 깊은 역사적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구헌주 작가
통일촌 벽면에 서로를 꼭 붙잡고 있는 주름진 손들과 철조망 너머로 탁구공을 주고 받는 그림이 그려졌다. 군사 분계선을 앞둔 지역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분단의 아픔과 다정한 교류를 표현하며 평화에 대한 기원을 담았다. 또 영국 셰필드에서는 평등을 노래한 비틀즈의 노래 제목 'Imagine'을 수화로 표현했다. 다양한 피부색으로 청각 장애인을 위한 수어를 나타낸 그림이 평등의 메시지를 더욱 강조한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구헌주의 작품은 지역과 시의성을 고려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불법적인 낙서로 시작한 그래피티. 어두운 뒷골목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래피티는 도시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예술이 되었다. 도시에 그려졌기에 대중에게 금방 가닿을 수 있고, 사회적인 이야기를 촉발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피티의 세계는 뱅크시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래피티의 확장이 놀랍고 반가우며,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참고문헌
임병우, 그라피티의 장소특정성을 이용한 도시재생 방안. 문화예술연구, 2017.
뉴시스, 계명대, 대명동 그래피티로 문화예술 거리 '탈바꿈'(2021. 5. 24)
인천일보, 우리들의 영웅, 힙하게 돌아왔다(2020. 9. 3)
중앙일보, 내가 하는 건 예술보다 힙합...그래피티 작가 심찬양(2017. 6. 29)
투데이군산, 그래피티 아티스트 후디니&제이플로우, 도시재생뉴딜사업 참여(2021. 4. 12)
파이낸셜신문, [포토] 그래피티로 우리 곁에 돌아온 독립운동가들(2019. 4. 8)
헤이팝, 거리를 살리는 예술가, 스트리트 아티스트 구헌주(2022. 9. 27)
이 글은 문화예술 플랫폼 안티에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