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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un 13. 2019

6개월 미리 사는 패션계

시즌 구분, 정말 필요한가?

패션쇼는 1년에 두 번 진행됩니다. Spring/Summer 그리고 Fall(Autumn)/Winter 쇼가 있죠. 보통 9월에서 10월즈음 SS 패션위크가 열리고 봄여름 상품은 1월에서 3월 사이에 매장으로 이동합니다. FW 패션위크는 2월에서 3월 즈음 열리고 상품은 각 매장에 7월에서 9월 사이에 입고되죠. 리조트Resort 컬렉션이나 프리폴Pre-fall 컬렉션의 경우 한여름이나 한겨울에 매장으로 입고되구요. 이런 순환구조 덕분에 패션업계 사람들은 항상 미리 살고 있습니다.


2월에 열린 뉴욕패션위크 Fall2017 마이클코어스Micheal Kors


1년에 두 번, 사실 굉장히 짧은 주기입니다. 실제로, 이 주기는 과생산과 과소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시스템이에요. 이 주기는 어떻게 결정되었을까요? 그 시작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까지 거슬러갑니다. 루이 14세는 당시 국가 재정을 늘리기 위해 직물산업의 스케줄을 아주 타이트하게 짜놓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직물을 생산해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사가게끔요. 실제로 아주 효과적인 경제계획이었다나봐요. 당시 프랑스사람들은 멀쩡한 옷이 수두룩해도 6개월마다 새로운 패턴의 소재와 옷을 사들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매년 계절별로 새로운 스타일을 소개하고 매년 새로운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 패션계의 시계는 쉴새없이 빠르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정적인 시즌은 일부 국가에만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패션업계의 주무대인 뉴욕, 런던, 파리, 밀라노가 위치한 북반구의 계절에 따라 흘러가는 거죠. 분명하게 나뉘어진 북반구의 사계절과 같이 시즌을 나누고, 북반구 계절의 흐름대로 시즌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로 지나가죠(그래서 멜번 패션위크는 9월에 열리긴 하더라구요) 계절의 구분이 없는 나라도 있고. 무엇보다도 패션쇼를 열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면 소비자는 전세계에 분포합니다. 전세계 사람들이 주문하고, 상품은 전 지구를 넘나드는데 이런 상황에서 SS니 FW니 계절을  패션쇼를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See Now Buy Now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줄 수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패션쇼가 6개월 미리 열리는 덕에 소비자들은 패션쇼에서 확인했던 상품을 매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4-6개월 뒤에 매장에 입고된 상품을 만나 이미 '지난' 것처럼 여겨졌죠. 패션쇼와 구매시점 사이의 6개월이라는 간격은 길었고, 이미 빨라진 소비습관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ee now Buy now'라는 개념으로 방금 런웨이가 끝난 직후에 쇼에서 등장한 옷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으나, 아직 추운데 여름옷을 사야하거나 더운데 겨울옷을 사야하는 구조였습니다. FW컬렉션이 열리는 2-3월 즈음엔 산뜻한 봄옷이 눈에 들어오는 시기인데 코트가 눈에 들어오겠나요. 또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니 한 해 가을이 유독 따뜻하면 겨울옷 판매는 지지부진한 경우도 있었고요. 여러가지 이유로 재고는 쌓여갈 뿐이었죠.  




그래서 이렇게 무의미한 시즌 구분을 거부한 디자이너들도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은 2018Fall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패션위크 스케줄을 버리고 브랜드만의 새로운 스케줄을 차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월과 9월에 열리던 기존의 패션쇼와 달리 6월과 12월에 패션쇼를 선보임으로써 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접근성을 훨씬 높이겠다고요. 한여름에 봄여름옷 소개하고 한겨울에 가을겨울옷 소개한다는 점에서 구매 자체는 수월해지겠네요. (하지만 6월에 소개된 상품은 10월부터 3월까지, 12월에 소개된 상품은 4월부터 9월 사이에 구매가 가능하다고 하니 또 계절이 어긋나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실제로 2018년부터 19SS는 6월, 19FW는 12월에 소개됐고, 지금 6월이죠! 얼마전에 20SS 쇼도 열렸습니다.


톰 포드Tom Ford는 2016년 FW 컬렉션을 9월에, 즉 SS 패션위크에서 선보이기로 발표했습니다. 즉, 매장에 입고되는 때와 동시에 런웨이에 올리는 거였죠. 포드는 소비자들이 상품을 직접적으로 구매하는 시점으로부터 아주 일찍 열리는 패션쇼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패션위크의 고전적인 흐름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그 뒤, 다시 원래의 방식으로 돌아오네요... 생산-유통과정이 매우 빠듯해서 그런걸까요)


그리고 같은 날 2016년 2월, 버버리Burberry는 시즌 구분을 없애고 '시즌리스Seasonless' 쇼를 열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리고 쇼와 동시에 전세계의 매장에 상품을 입고시켜 온오프라인으로 즉각 구매가 가능하도록 합니다. 버버리의 수장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이 변화를 통해 패션쇼와 구매시점 사이의 괴리를 좁혀나갈 거라고 말합니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했고 우리는 빠르게 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은 방금 내 눈에 들어온 옷을 당장 입고 싶어합니다. 빠르게 사는 만큼 빠르게 사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패션계가 지금껏 유지해오던 방식이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아요. 생산과 유통의 한계일까요 혹은 기존의 방식에 대한 아집일까요. 계절을 나눠 일년에 두번씩 한정해두고 패션쇼를 여는 건 오히려 브랜드 스스로 한계를 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계절의 구분과 정해진 스케줄로부터 벗어난다면 생산과 유통, 판매까지의 흐름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즉각적인 소비가 가능하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과소비를 더욱 양산하지는 않을지 걱정도 됩니다. 사실 제가 외치고 싶은 건, 1년에 두 번으로 나눠진 시즌은 과소비도 유도하는 구조고, 굳이 나눌 필요도 의무도 없으니 최소 1년에 한번 하는 쪽으로라도 줄여볼 수 있지 않겠냐, 하고 말하고 싶은 거거든요.(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패션쇼 자체가 아예 필요없다고도 말해볼 예정!) 뭐, 어쨌든 굳어진 패션관습을 지적하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나가는 게 중요한 거겠죠. 이미 여러가지 많은 디자이너들이 지적한 패션위크의 스케줄.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변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 Carrie Parry, "Traditional fashion calendar fuels overconsumption and waste" The Guardian. 2014.9.17.

- Karen Kay, "Is the traditional runway show dead?" VIVA. 2016.2.15

- Kimberly Chrisman-Campbell, "Is this the end for fashion week?" The Atlantic. 2016.2.11

- Kristina Rodulfo, "Burberry introduces the 'Seasonless' fashion calendar" 2016.2.5

- Sam Reed, "Alexander Wang is the latest designer to ditch the traditional NYFW schedule" The Hollywood Reporter. 201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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