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량 Jun 14. 2019

지금, 패션쇼는 쓸 데 없다

지난 글에서 패션쇼가 가질 수 있는 의미에 비해 초대객이 한정적이고 배제적이라는 지적을 했었죠. 그리고 패션쇼 시즌의 무의미함에 대해서도 언급고, 드랍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방식도 찾아보았습니다. 전통적인 패션쇼는 고집할 이유보다 변화해야 할 이유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이번엔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합니. 이 또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고 있는 부분이죠.  


패션쇼, 필요한가?

예전에 패션쇼란 아주 필수적인 과정이었습니다. 계절보다 6개월 정도 미리 열리면서 잡지사나 바이어들을 초대해 컬렉션을 미리 보여주고  새롭게 유행할 트렌드에 대해 준비할 시간을 줄 수 있는 예습시간이었죠.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초기 패션위크의 이름은 'Press Week'이었다고 해요. 이름만큼 기자나 에디터와 같이 언론업계가 주대상이었고, 그에 따른 홍보효과를 기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그저 매장에 찾아와 편리하게 구입만 할 수 있도록, 패션쇼에는 패션산업 관계자들만 참여하는 게 아주 당연했고 필요한 수순이었겠죠.

Press week; photo from VOX


그리고 점차 패션쇼는 엄청나게 다양한 홍보효과가 집약된 공간으로 발전합니다. 비싸고 화려한 무대장치와 힙한 음악, 각종 효과를 통해 의 테마를 제대로 담아냅니다. 컬렉션을 소개하기에 탁월한 공간을 만들어내죠.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굉장히 사치스러운 방식으로 변모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공해변을 만들거나 슈퍼마켓을 만드는 등(굉장히 많은 돈이 들었다죠) 창의력을 돋보이기 위해, 럭셔리함을 내세우기 위해 너도나도 그렇게 돈을 부어대나 봅니다. 그리고 각종 셀럽들, 유명인사, 디자이너 등등 초대객의 유명성에 대한 의존도도 훨씬 높아진 것 같고요.


그리고 패션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소비자들이 옷을 소비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거죠. 이제 소비자들은 에디터나 바이어들이 먼저 패션쇼를 확인하고 준비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너도나도 동시다발적으로 컬렉션이 처음 소개되는 순간을 함께하려고 합니다. 나아가 패션쇼에서 소개되는 상품들을 직접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 상품을 사길 원합니다.


즉, 보이는 세상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더 활발히 움직이는 요즘, 패션쇼가 무슨 소용일까요 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만큼 패션쇼 또한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지만, 저는 정말 패션쇼라는 물리적인 이벤트가 브랜드 홍보와 컬렉션 소개에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형태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싶은 거예요. 요즘 시대에 런웨이의 실체에 의존하다니요, 굳이 아니더라도 지금은 다양한 매체와 프로그램, 그리고 능력자들이 있지 않나요. 패션쇼라는 실제적 '행사'에 대해 판매가 가지는 의존도는 약해졌습니다. 쇼의 화려함과 초대객들의 유명성으로 기대하는 '홍보효과'가 얼마나 가치있을까요. 더구나 접 보고 듣는 생생함은 소수의 초대객만 느낄 수 있다는 한계도 있는 만큼 패션쇼가 투자되는 돈과 시간, 자원만큼 가치있다고 생각되지 않네요.


패션쇼는 더이상 필수적인 마케팅의 장이 아니며, 소비자들의 편리한 구입경로도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패션쇼에 사용되는 천문학적인 비용과 인력, 그리고 그 이면의 쓰레기까지 고려한다면 엄청난 비효율을 넘어섭니다. 기술의 발전은 굳이 실제적인 공간을 준비하지 않아도 전세계 몇백만 명의 시선을 잡아끌 수 있는 엄청난 홍보효과와 몇 초 안에 몇십개의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기존 패션쇼가 가졌던 존재의무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죠. 이 디지털 시대에서 패션쇼라는 고전적인 행사를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실제로 몇몇 디자이너들은 고정적인 패션쇼의 형식을 거부했습니다. 


2017년 겨울,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런던 패션위크에 아예 참가하지 않을 것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짧은 영상과 함께 디지털 룩북을 발표함으로써 패션쇼를 대체하겠다고 말하죠. 그리고 미디어에 이 룩북을 공개하고, 바이어들에겐 이메일로 전달합니다. 비비안은 기후변화를 비롯해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알리고, 과소비를 그만 멈추라고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꾸준히 외치고 있는 디자이너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런웨이 대신 디지털 룩북을 선택함으로써 에너지 사용과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발표된 2018FW 디지털 룩북입니다.

Vivienne Westwood Fall 2018 Menswear


그리고 2019SS 룩북이에요.

Vivienne Westwood 2019 Spring Ready-to-wear


베트멍Vetements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도 2017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이 고전적인 시스템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난 지루하다. 새로운 챕터로 나아가야 할 때. 패션쇼는 최적의 수단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의 쇼를 위해 최소 3천만에서부터 몇십 억은 투자해야 한다면서, '낭비 그 자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쇼는 더이상 옷에 대한 이야기하지 않고, 꿈을 팔 뿐이라고요. 사람들은 스마트폰에 남기기만 바쁘고, 자신의 디자인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발표된 2018SS "No show" 룩북입니다.

Vetements Spirng 2018 Menswear; from Vogue




사실 비비안도 베트멍도 다시 런웨이로 돌아오긴 했어요... 크게 아쉬운데. 뭐, 여기서도 할 말은 있죠. 제가 예전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말 패션쇼가 메시지 전달에 필요한 매체라면 불특정 다수에게 티켓을 오픈하라고! 목적은 그냥 그거예요, 사치스럽고 낭비적인 패션계가 스스로 낭비를 자제하는 방향으로 변화는 것. 지금껏 해왔기 때문에 해오는 관습 말고,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말고,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쪽으로, 사람을 위한, 환경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탐구했으면 하는 것. 이미 패션위크의 스케줄은 흔들려왔고 저 혼자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의미보다 사치만 남을 뿐인 패션쇼, 과연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요. 뎀나 바잘리아도, 비비안도, 그로 인해 다른 디자이너들도, 일단은 알고 있는 것 아닌가요, 패션쇼는 낭비라고!


+ 심지어 코로나19로 비대면 진행이 활성화되고, 영상 제작 및 공유 시스템도 더욱 발전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꼭 휘황찬란한 장소에서의 패션쇼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죠. 그리고 요즘엔 가상현실도 많이 주목 받고 있습니다. 발렌시아가는 2021년 FW를 게임 속에서 발표했을 정도예요. 패션쇼, 진짜 필요없음.

https://videogame.balenciaga.com/ko/



Dominic Cadogan, "Vetements creates full DHL look for first 'no show'" DAZED. 2017.6.25

Luca demetriou, "What we can learn from Vivienne Westwood's playing cards" Bricks Magazine. 2018.9.21

Rebecca Jennings, "The decline of fashion week, explained" VOX. 2019.2.8

Sarah Mower, "Vetements is a No-Show ㅡ Demna Gvasalia announces he's stopping away from the fashion show system" VOGUE. 2017.6.2

매거진의 이전글 6개월 미리 사는 패션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