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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Jul 18. 2019

지금, 샤넬은 가짜다

샤넬, 누구나 한번쯤은 매장에 들어가서 가격표도 안 보고 가방이며 옷이며 쓸어담아 와보고 싶다고 상상해봤을 그런 브랜드겠죠.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샤넬은 코코 샤넬이라는 아주 멋있는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입니다. 샤넬이 유명해지기까지 코코 샤넬은 아주 독창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디자인을 용감히 시도했고, 그 결과 '패션 혁명가'라고 불릴 정도로 패션계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당시의 여성복은 치렁치렁한 레이스와 한껏 강조된 퍼프소매와 길고 풍성한 치마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잘록한 허리와 풍성한 치마라인을 강조하기 위해 코르셋으로 허리를 힘껏 옥죄고 치마 속에 고래뼈 등으로 만든 단단한 속치마(크리놀린, 페티코트 등)도 입어야 했죠. 이 옷들은 무척 무거웠고 활동하기에 매우 불편했으며, 코르셋은 너무나 단단한 나머지 갈비뼈에 변형을 줄 정도로 입기에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불편하고 잔인한 복식으로부터 여성들을 벗어나게 해 준 패션의 선구자가 바로 샤넬입니다!


먼저 샤넬은 당시 거리의 청소부라 불릴 정도로 바닥을 쓸고 다녔던 드레스 치마를 발목 위로 올라올 정도로 짧게 라버립니다. 당시엔 아주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해요. 이제 여성들은 훨씬 깔끔하게 거리를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죠. 또, 남성용 속옷으로만 사용된 값싼 저지를 활용해 드레스를 만드는 등 혁명적인 디자인을 발표합니다. 기존의 옷보다 훨씬 실용적이고 활동성이 강조된 디자인이었죠.  저렴한 소재의 도입으로 여성복은 더욱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졌습니다.

샤넬 저지 드레스(좌) 발목 위로 올라온 드레스(우)


또한, 승마에 빠졌던 샤넬은 불편한 여성복을 벗어던지고 당시 남성들만 입었던 셔츠와 바지, 부츠를 착용합니다. 남성용 승마복은 그에게 아주 잘 어울렸고, 샤넬은 남성복을 본따 여성용 승마복을 개편하게 됩니다.

Gabrielle Chanel with Etienne Balsan in Royallieu, 1909. by elle.co


또 1920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작업공간에서 바지를 입기 시작한 여성노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샤넬은 바지 혹은 남성용 수트를 빌려 입는 것을 즐겨오던 참이었기 때문에 그는 여성을 위한 세련되고 편안한 바지를 디자인합니다. 그렇게 팔라초Palazzo 바지(와이드 팬츠)가 탄생합니다. 덕분에 바지는 기능성이 강조되는 작업복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죠!

Coco Chanel in 1930, with her don, Gigot(좌)


그리고 샤넬은 남성용 수트에서 착안해 여성들을 위한 수트를 개발합니다. 그게 바로 샤넬의 시그니쳐 아이템, 투피스 수트죠. 남성용 수트의 형식에서 칼라를 없앤 가디건 스타일의 재킷과 슬림하게 무릎 길이까지 떨어지는 스커트에 심플한 메탈 장식을 더했습니다. 이는 당시 전후 시대에 남성중심적이었던 권력구조에서 새롭게 커리어를 쌓아나가려 하는 여성들의 욕구를 완벽히 충족하는 디자인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여배우 Romy Schneider의 옷을 점검하는 코코 샤넬 in the 1960s(우)


단순하고 심플한 라인을 살린 디자인으로 세련된 동시에 편안한 디자인을 선보인 샤넬. 그는 불편하기만 하고 수동적인 상태를 강요했던 기존 여성복으로부터 탈피하고 여성들에게 활동의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남성복에서만 점유하던 바지, 수트 스타일을 여성복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죠. 여성들은 패션을 통해 죄어오던 코르셋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더욱 다양하고 편안하 세련된 옷차림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샤넬은 당시 여성의 해방과 독립에 앞장섰습니다.


 I gave women a sense of freedom.  
나는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

- Coco Chanel

 

영화 'Coco Before Chanel' 중 한 장면(우)




하지만 지금의 샤넬은 그녀의 가치관, 지금의 샤넬이 있기까지 샤넬이 추구했던 가치를 여전히 잇고 있을까요? 여성의 활동성을 보장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요?


Chanel 2015SS Collection

2014년 칼 라거펠트는 2015년 SS컬렉션에서 작은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유명한 모델들이 피켓을 들고 확성기에 대고 외쳤죠. "He for She(여성을 위한 남성)", "History is her story(역사는 여자의 역사다)", "Ladies First", "Boys should get pregnant too(남자도 임신해야 한다)"와 같은 로고들이었습니다. 샤넬도 페미니스트였다며, 패션쇼에서 샤넬이 추구하는 페미니즘을 보여준 거죠. 하지만 이 패션쇼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옷과 가방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마련한 패션쇼에서 아무리 외쳐보았자 수익을 위한 마케팅일 뿐이라거나, 그렇게 빼빼 마르고 진하게 화장한 모델들이 여성의 자존감을 높이자고 외쳐도 그들은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한 대상일 뿐이었고, 심지어는 그 모델들이 페미니즘이 뭔지, 페미니즘의 역사가 뭔지 알고서 페미니즘을 외치는 거냐 등등의 비판이 쏟아진 것입니다.





그래요, 여성의 자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던 샤넬은 틀림없는 페미니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단순한 문구 몇 개로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외칠 뿐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녀는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옷을 디자인했고,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틀을 부수며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꿨습니다. 샤넬의 이러한 노력 덕에 코르셋은 지금 역사적 유물일 뿐이고, 우린 편하고 예쁜 치마와 바지를 마음껏 입을 수 있게 되었죠.


여전히 코르셋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샤넬은 과연 여성의 독립과 주체성을 응원하는 데 앞장설까요? 여전히 존재하는 코르셋을 탈피할 수 있도록 젠더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나요? 패션에 내재하는 이분법적인 성적 구분을 극복하려 하나요? 최소한 란제리 사업에라도 뛰어들어서 브래지어의 철심을 빼고 그 대단한 샤넬 로고가 박힌 니플 패치라도 디자인해야 마땅하지 않은가요?? 샤넬 빅사이즈를 만들든 통통한 모델을 고용하든, 마르고 가슴 큰 몸매와 같이 여성의 신체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준을 부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하지 않나요? 젠더리스 디자인 요소 하나라도 더 가미해야 하지 않나요?? 샤넬이 살아있다면 현재의 코르셋을 부수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을 끊임없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지금의 샤넬은, 샤넬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비싸면 다인가요.




Eleanor Dunne, "Seven wonders: How Coco Chanel changed the course of women's fashion" Wonderland, 2013.9.4

Semra Eren-Nijhar, "Chanel fashion show and fake feminism: do women really need to see that" T-vine, 2015.10.6

Rhiannon Lucy Cosslett, "Chanel: co-opting feminism at Paris fashion week:" The Guardian. 201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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