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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Apr 04. 2019

드랍?

 지난 글에 패션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너무 돈이 많이 든다고 비판해보았죠. 비싸고, 셀럽과 관계자들만 즐길 수 있는 그들만의 리그라고요. 그 외에도 제가 의문을 가진 부분이 있어요. 너무 잦다는 겁니다. 보통 패션쇼는 1년에 두 번 진행됩니다. 물론 브랜드마다 다를 수도 있지만, 뉴욕이든 파리든 밀라노, 서울 등등 패션위크는 봄/여름과 가을/겨울로 나뉘어 1년에 두 시즌으로 진행되죠. SS, FW 많이 들어보셨죠?


 과제 때문에 이 브랜드 저 브랜드 컬렉션 사진을 뒤지면서 정말 너무 싫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패션쇼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리고 얼마 전에 패션쇼 했었는데 바로 또 패션위크 한다는 소리가 들리구요. 그 때는 그저 과제하기 싫은 마음에 패션위크가 너무 잦다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런데 점점 의구심이 들더라구요. 진짜 1년에 두 번 해야하는 걸까? 안 그래도 패션계의 시계는 참 바쁘게 돌아가는데. 지금 2019년 봄이면 아마 패션업계는 2020년 ss시즌을 준비하고 있을 거라고 배웠습니다. 칼라트렌드 회사는 2년 전부터 트렌드 칼라를 연구하고 선정한다구요. 세상을 미리 사느라 눈코뜰 새 없이 돌아가는 패션계에서 왜 아무도 쉬엄쉬엄 하려고 하지 않죠? 그냥 1년에 한 번, 1년치를 한꺼번에 공개하면 안 되는 건가요?



매주 이루어지는 슈프림의 드랍


 혹시 '드랍Drop'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알만한 분들은 많이들 아실 거 같아요. 보통 스트리트 브랜드나 스니커즈 브랜드에서 신상품을 공개하는 하나의 마케팅 전략인데요, 예고한 날짜와 시간에 소량의 신상품을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확 풀어버리는 겁니다. 사실 드랍은 1980년대 아디다스나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해요. 지금은 많은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드랍에 참여합니다. 슈프림 같은 경우는 많은 사람들이 밤새 기다려서 오픈한 지 15분만에 동이 난다고 합니다. 이런 확실한 구매효과 덕분인지 많은 브랜드에서 드랍을 시도합니다. 킴 카다시안, 제너 자매의 브랜드, 스투시 등등. 다들 드랍을 통해 확실한 판매효과를 보았다고 해요. 왜 지금 드랍이 이렇게 유명해졌고, 엄청난 구매효과를 가져오는 걸까요?

 

킴 카다시안의 아이셰도우 키트 Medium 라인이 오픈 15분만에 팔렸고, 2시간 반에 전 제품 매진


Fast fasion + social media = drop culture

1. 드랍은 희소성의 원리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합니다. 나만 가지고 싶어하는, 나만 특별해지고 싶어하는 요즘 시대 소비자들을요! 실제로 한 기사에 따르만 소비자들이 '좀비'처럼 달려든다고 표현하더라구요. 소량의 신상품을 그 날 그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이 희귀성에 소비자들이 눈을 반짝입니다. Buy now or forever miss out.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놓친다는 거죠. 중고거래를 제외한다면.

 

2. SPA브랜드는 패션상품의 기획, 생산, 유통과정을 통합하면서 나타났습니다. 이에 상품이 소비자들 눈앞에 도착하기까지의 시간이 매우 단축되었죠. 동시에 유행은 빠르게 왔다 빠르게 흘러가고, 많은 전문가들이 소비자들이 상품에 집중하는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빠른 속도에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드랍'인 거죠. 런던예술대학 전략패션마케팅 대학원 지도교수 Ana Roncha는"우리는 언제든지 원하는 게 있다면 즉각적으로 얻을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고, 동시에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독특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SPA가 만들어낸 Fast fashion, 빠른 속도에 소비자들은 익숙해져있고, 드랍은 그 빠른 트렌드변화에 맞춰 상품을 선보일 수 있는 방법인 거죠.


3. 그리고 소셜 미디어를 통한 톡톡한 홍보효과까지. 드랍 날짜와 시간에 대해 빠르게 전달받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뭉칩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브랜드는 손쉽게 드랍을 광고할 수 있고,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드랍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죠. 소비자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높습니다.


kulturehub.com/consignment-shops-wave

 사실 너무 지나치게 광적인 소비를 조장하는 것 같아서 이 판매 방식을 100% 지지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패션 브랜드의 전통적인 판매, 광고방식과 비교했을 때 분명한 장점이 있는 거 같아요. 우선 지난 글에서 살펴본 패션쇼라는 판매방식과 비교했을 때 그 거창한 무대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점. 무대, 조명, 음향, 모델 등등에 들어간 엄청난 비용이 삭감되죠. 단 하나의 상점만 있어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어쩌면 온라인 드랍을 시도한다면 그것도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패션쇼와 비교한다면 경제적으로 엄청난 이득이죠. 그리고 시즌 컬렉션 발표의 주기. 1년의 두 번으로 굳어진 패션위크의 주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죠. 이건 디자이너들과 브랜드 내에서 일하는 모든 분들께 희소식 아닐까요. 물론 슈프림처럼 매주 발표할 수도 있지만요... 어쨌든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거에 초점을 맞춰봅시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이고, 그래서 권력적일 수 있는 방식들을 깰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주목할 점인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드랍은 일찍 오기만 한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아, '돈이 있다면'도 추가해야 되긴 하네요. 어쨌든 상류층과 패션 관계자들만 향유하는 패션쇼의 폐쇄성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특징이죠. 어쩌면 이 폐쇄성은 소수만 향유해야 가치 있는 명품의 위치 때문에 명품 브랜드로서는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을 거예요. 거대한 패션쇼를 열고,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장인정신을 끊임없이 강조해야 명품으로서의 입지를 지킬 수 있겠죠. 그런데 '드랍'은 명품 브랜드에게도 꽤나 괜찮은 대안일 거 같은데요. '리미티드 에디션'이 무엇입니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어차피 값이야 책정하면 그만일텐데(비상경계의 무책임한 발언) 오히려 1년에 한 번 드랍하면서 더 비싸게 굴 수도 있고... 어쩌면 지난 글에서 얘기해보았던 티켓으로 (돈있는) 불특정 다수를 초대하는 방식보다 명품 브랜드가 더 반길 대안일 거 같네요.


런던예술대학 패션마케팅 대학원 지도교수 Natascha Radclyffe-Thomas가 강조한 드랍의 조건은 소비자들이 해당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를 진심으로 추구하느냐는 겁니다. 명품 브랜드라면 이러한 조건을 잘 갖추고 있요. 실제로 구찌, 버버리, 루이비통 등 드랍에 참여한 명품 브랜드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경우, 젊은 세대를 겨냥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큽니다. 브랜드 컨설턴트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장기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현재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기 위해서 명품 브랜드들이 드랍에 참여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버버리의 헤드 디자이너, 드랍 발표


드랍이라는 이 새로운 방식은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주의를 끌고 그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입니다.  드랍의 롱런에 의문을 표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방식이 조금은 바뀌어도 드랍이 가지고 있는 소비자에 대한 '접근성' '한정판매'라는 가치는 마케팅에서 항상 강조되는 가치잖아요. 모습이 조금 달라질지언정 드랍이라는 방식은 잠깐 있다 사라질 유행으로 보이진 않아요. 저는 맨 처음 드랍이라는 방식을 알게 되었을 때 참 반가웠습니다. 모든 브랜드가 패션쇼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드랍이 보여주고 있는 거 같아서요. 그 대안으로서 적합한 것 같았습니다. 정해진 규칙이란 건 없다는 거죠!


물론 어디까지나 패션쇼보다 신제품 발표 주기를 늦출 수 있다는 맥락에서 긍정적인 것뿐, 오히려 더 자주 '드랍'하면서 과소비를 양산하는 건 많이 안타깝네요. 랍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패션계의 낭비를 자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쓰일 수 있길 바랍니다.





참고

Marjorie van Elven, "The business of hype: why so many fashion brands are now doing 'product     drops'?" Fashion United. 2018.10.17

Thomas Chou, "Riccardo Tisci Drops First Burberry T-shirt" L'OFFICIEL. 2018.09.13

Steve Dool, "Will the year of 'the drop' change fashion forever?" Fashionista.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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