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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량 Mar 23. 2019

패션쇼, 티켓이 판매된다면?

언제까지 '그들만의 리그'를 유지할 거야?

Chanel 19SS fashion show

먼저 패션쇼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패션쇼.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해외 유명 브랜드까지, 매 시즌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는 곳입니다.  브랜드는 단순한 런웨이를 떠나 독창적인 무대 세팅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를 창조하죠. 그리고 막대한 자금이 투자됩니다. 하다못해 대학교 의상학과 졸업패션쇼만 하더래도 8천만 원 정도는 소비돼요. 그럼 유명 브랜드 패션쇼는 어떨까요. 2011년 마크 제이콥스는 뉴욕타임스에 당시 패션쇼에 백만 달러를 소비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환율로 11억이 넘는 규모예요. 뭐, 어디는 아예 해변을 갖다 놓기도 하던데 그 지출 규모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대규모의 지출을 하면서 그들이 얻는 것은 뭐죠? 패션쇼는 무엇을 위해서 열리는 걸까요????????


브랜드의 궁극적인 목표는 판매입니다. 패션쇼에서 색상과 소재, 스타일, 디테일 등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디자인을 3차원으로 보면서 실제적인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 구매의지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패션쇼의 목적이겠죠. 그래서 실제로 패션쇼장에서 직접적으로 옷을 확인하고 바로 구매하는 "See Now Buy Now"라는 용어가 등장하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판매를 이루기 위해 패션쇼는 그렇게 필수적인 방법은 아니죠. 옷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라면 매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더욱 확실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굳이 왜? 그 돈을 들여가며? 패션쇼를 하는 거죠?


사실 패션쇼는 1910년대 고급의상점에서 VIP만을 따로 '모셔놓고' 고가의 특별한 작품을 소개했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소수의 상류계층만 향유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 그들을 초대하고 그들만 점유할 수 있는 '특별함'을 선사했던 거예요. 상류층만 타겟으로 한 홍보죠. 지금도 이렇게 몇 명의 VVIP만 모아놓고 소규모로 상품을 선보이는 패션쇼가 진행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트렁크 쇼라고도 하죠. (https://www.youtube.com/watch?v=G7brchJy5t8 이 영상에 아래 사진 외에도 20세기 초반 당시 '시즌 컬렉션'이 소개되는 다양한 모습이 나와요)

과거 오뜨꾸뛰르가 컬렉션을 소개하는 모습

 

이렇게 패션쇼는 부유층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일부로써 기능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패션쇼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혹은 명품이라는 역사와 가치를 이어오기 위한 관습적 행위의 일환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트렁크쇼는 소수의 VVIP를 공략한 마케팅 전략이라고 한다면 패션쇼는 여러 사람을 상대로 홍보효과를 기대하는 공간 아닌가요? 하지만 패션쇼는 초대받은 셀럽들과 패션인사들, 상류층의 사람들만이 향유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일반인에게도 공개하기도 하나 이벤트성을 띠고 있거나, 매우 적은 자리를 두고 많은 사람이 몰리죠. 물론 거리에서 공개되는 패션쇼도 있구요. 그렇지만 '프론트 로우'가 가지는 상징성을 두고 말하고 싶어요. 사실 지금의 패션쇼가 가지는 목적은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는 명목 아래 명품브랜드로서 가지는 구조적 위치와 브랜드 가치를 끊임없이 재확립하기 위한 유지장치에 그치는 게 아닐까요? 정말 패션쇼는 지금 명품이 가지고 있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요? 진짜 홍보가 목적이라면, 지금과도 같이 미디어가 발달된 시대에 전통적인 패션쇼가 정말 홍보에 필수적인 개념인가요? 그렇게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 노력을 투자하면서까지?


버버리 16SS 런던 패션쇼: 케이트 모스, 카라 델레빈 등 프론트 로우의 셀럽(Celebrity Style Front Row)


저는 패션의 예술성을 좋아합니다. 물론 상업을 기반으로 하지만 패션은 예술성 또한 제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술성 속에서 패션은 사회적 메시지와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데, 상업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패션의 이중적인 특성상 사람들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효과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패션은 진입장벽이 높은 순수예술과는 달리 누구나 관심 갖는, 보편적인 예술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목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분야죠. 패션은 정말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패션은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가장 파급력이 높은 예술장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디자이너들이 패션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합니다. 사실 그 의미들을 듣기 전까지는 런웨이에서는 괴발개발한 옷들만 등장한다며 이해 못할 무언가로 하이패션을 정의하기도 했는데, 정말 심오한 의미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한 결과들이었어요. 발렌시아가가 이 꼬아지는 이상한 영상들을 아무 생각 없이 올리지는 않을 테니까.

 

출처: VOGUE FALL 2017 READY-TO-WEAR MOSCHINO


2017년 모스키노의 FW 레디투웨어 패션쇼에서 제레미 스캇은 종이가방, 상자, 박스테이프, 에어캡, 비닐가방 등 버려지는 모든 것들을 재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항상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고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패션계에서 아주 굵직한 메시지죠!) 그 패션쇼의 바닥은 종이상자와 박스테이프로 덕지덕지 꾸며졌어요. 이렇게 디자이너들이 패션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패션쇼는 그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이지요! 우리는 패션쇼가 쇼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구성을 통해 그 메시지를 강조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때는 패션쇼가 패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콘텐츠를 전달하는 하나의 퍼포먼스로 기능하는 거죠.  


만약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혹은 철학적인 메시지를 패션을 통해 표현하고 전달하고 싶다면, 그 메시지가 소개되는 패션쇼는 소수만 '점유'하는 것이 아닌, 어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하나의 공연으로서 소비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디자이너가 아무리 혁신적인 의미를 전달하려 해도 패션쇼는 여전히 닫혀있는걸요. 티켓을 오픈하고 관람할 자격을 구입하는 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입니다. 이때 비로소 대중에게 디자이너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전달될 거고, 패션쇼는 하나의 공연작품으로서, 즉 현대의 대표적인 예술장르로서 자리 잡게 될 겁니다. 관람은 예술적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할 것이고, 그 의미는 더욱 큰 사회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겠죠. 브랜드는 인지도를 포함해 사회적 가치를 고민하는 브랜드로서 브랜드 가치 또한 상승하지 않을까요?


패션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자본주의 구조에 의해서 폐쇄적으로 소비되는 게 안타깝습니다. 패션은 예술장르로서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를테면 구독자가 매우 많은 유튜버랄까요. 이 할 말 많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외치고 싶다면 패션은 정말 제대로 외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많은 디자이너들이 외치고 있고요. 더 많은 사람들이 브랜드의 이름 아래에 등장하는 깊은 메시지들에 대해 파헤쳐보려는 자세를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사치적이고 낭비적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는 패션도 이 기회에 새로운 이미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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