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량 Dec 03. 2023

웹 문화 속 '회빙환'에 대한 고찰

'회빙환'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려면 웹툰이나 웹소설과 같은 웹 문학을 즐기는지부터 물어봐야 한다. 나는 십대에 접어들 무렵부터 인터넷 소설을 향유하기 시작했고 네이버에서 '네이버 웹소설'을 처음 런칭하던 때부터 함께한 웹툰 및 웹소설 시장의 오랜 독자다. 이 장르는 이성애 규범에 매몰된 듯 매몰되지 않고, 수동적 여성성에 갇힌 듯 갇히지 않고, 사회적 강요에 흔들리면서도 저항하는 청년들을 표현한다. 클리셰의 반복과 서사의 유치함, 흥미 위주의 흐름과는 별개로 청년을 둘러싼 사회 문제와 이들의 욕망이 은근히 담겨 있다.


'회빙환'은 최근 몇년 간의 웹 문학을 관통한 서사 형식이다. '회귀', '빙의', '환생'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최근 웹 문학 작품들은 셋 중 하나 또는 둘 이상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서로 비슷비슷한 형식을 공유하는 탓에 새롭고 흥미로운 작품을 찾기 힘들어졌는데,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다가 왜 이런 주제가 웹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는지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1. 예측 가능한 미래에 대한 욕망

회귀와 빙의의 대표적인 특징은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흘러갈지 인물이 이미 알고 있다는 점이다. 회귀는 미래의 기억을 모두 갖고 과거로 회귀했기에 미래 예측이 가능하고, 빙의는 이미 읽었던 소설 작품 속 인물에 빙의하는 것이라 결말을 모두 알고 있다. 즉, '회귀'와 '빙의'란 미래에 일어날 사건뿐만이 아니라 인물과 사회에 대한 깊은 정보를 확보한 상태를 담보한다. 이는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현실의 거스를 수 없는 특징을 뒤집는다. 따라서 회귀 또는 빙의한 인물은 전지와 전능의 특징을 모두 가졌으며, 심지어 윤리성(선)까지 갖추며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 존재가 된다. 동시에 자본의 흐름을 예측하며 부를 쌓는 등 현실적인 성격을 가지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예측 불가능성은 미래가 갖는 본질적인 특징이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이를 견디기 힘들어진다는 점에 있다. 현대 사회의 복잡성, 해외 곳곳에서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 가파르게 상승한 집값, 글로벌 팬데믹, 얼어붙은 고용 시장 등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심화되어 간다. 특히 국가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뒤흔드는 소식을 자꾸만 마주치면서 사회적 불안은 청년층을 관통하고 있다. 이때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인물이 예고된 갈등을 모두 피하고, 경제적 수완과 정치적 수완을 동시에 증명하며 부와 명예를 획득해가는 흐름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불안에서 잠시 벗어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인물이 작품 속에서 이뤄가는 성공이 자본주의적 욕망과 닮아있다는 점에서도 특히 그렇다.



2. 손쉬운 갈등 해결에 대한 욕망

최근 독자들 사이에서는 인물이 고난을 겪는 '고구마' 구간을 견디기 힘들어 하고, 시원시원하게 갈등을 해결해가는 '사이다' 구간만을 반기는 경향이 강해졌다. '도파민'이 주목 받는 시대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도파민의 중독은 인내심의 상실을 낳았다. 짧은 쾌락에 익숙해진 현대인은 인물이 숱한 고난을 겪고 끈질기게 성장하여 마침내 대단원에 이르는 대서사를 감당할 수가 없다. 이젠 자취를 감춘 대하드라마, 16부작조차 길어서 점차 짧아지는 드라마 회차 수가 이를 대변한다.


따라서 웹 문학은 이야기의 호흡이 빠르다. 짧은 회차 안에서 충분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해야 하는 웹 문학 구조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드러지는 점은 갈등의 구간이 짧고, 골의 깊이도 얕아졌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인물의 성장보다는 보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때 회귀와 빙의는 독자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심각한 갈등 또는 스트레스를 겪지 않을 거라고 보장한다. 미래에 대한 정보는 인물이 아주 쉽게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치트키다. 정보의 격차는 갈등을 단순화시키고, 인물은 빠르게 갈등을 정리할 수 있다. 덕분에 주인공은 악역보다 우월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갈등의 쉬운 해결은 인물의 계급적 위치를 나타낸다. 그 이면엔 갑을의 권력 구조가 가시화된 사회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있다. 현대인이 인간관계에서 겪는 피로는 사회적 권력 또는 경제적 지위의 차이 등이 발생할 때 특히 극심하다. 웹 문학의 '회빙환'이 주는 치트키는 도파민의 충족과 함께 이러한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를 마련한다.



3. 사회적 거리감에 대한 욕망

'회빙환'은 타인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은밀한 비밀이다. 이는 인물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지 못한 비밀을 품고 있지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외톨이가 아니라 타인을 무시할 수 있는 권리와 위치를 점한다. '세상을 왕따시키는' 격이다. 사람들 사이에 녹여들지 못해도 괜찮다. '다른' 존재이므로.


특히 빙의나 환생의 경우에 주인공은 초현실적인 계기로 다른 인물보다 우월해지며, 이들과의 안전한 거리감을 형성한다. 배타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동일한 존재로 묶이지 않는다는 것은 해당 집단에, 또는 그 세계에 한쪽 발만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퇴로를 열어둘 수 있다. 현대인은 사람들과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위치에서 살아갈 수 있는 웹 문학 속 인물을 통해 인간관계 속의 피로를 해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4. 죽음의 공포에 대한 도피

<밀레니얼의 마음>에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겪은 여러 참사를 짚으며 이 세대가 공유하는 삶에 대한 회의를 말한다. 현대 사회는 수많은 죽음을 여러 번 접하며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흡수했다. 특히 참사 이후의 부실한 대처, 정치적 공방을 지켜보며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도 키울 수 없었다. 회귀와 빙의, 환생은 비현실성을 기반으로 죽음 이후를 이리저리 상상하며 비관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죽음의 현실성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순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평소 일상 생활 속에서 죽음을 의식하며 괴로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웹 문학은 죽음을 가벼운 소재로 전환함으로써 작품의 유희성과 현실도피성을 극대화시키는 셈이다.




웹 문학 아래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나는 그중 일부 장르를 즐겨 보기 때문에 웹 문학의 다양한 특징을 포괄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빙환'이라는 웹 문학의 공식이 현대 사회 그리고 특정 세대의 경향과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웹 문학은 보통 재미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일부 작품 중에는 동시대 사회의 문제를 담고 풀어가는 중요한 이야기가 많다. 또는 오히려 재미 중심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부가 되었든, 다정한 남성상이 되었든 웹 문학의 이야기는 욕망을 (나름) 현실성 있게 구현한 결과물이다. 모두가 완벽한 외모와 넘치는 자본, 강인한 힘(권력)을 갖춘 이 판타지는 너무나 솔직한 나머지 귀엽기까지 하다. 현실을 잠깐 잊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지만, 오히려 현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담아내고 있어 역설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